‘차덕후’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을 지칭하는 단어 중 하나예요. 여러분은 어느 정도로 자동차에 ‘진심’이신가요?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모형을 수집하는 행위부터 수억 원대의 희귀 슈퍼카를 소장하는 등 차덕후의 범주는 각양각색인데요.
여기 한 자동차를 동경하다 못해 무려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여 똑같이 만들어 낸 사람이 있어요. 그것도 무려 자동차 태동기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최근의 일이에요. 그 주인공은 바로, 영국의 석유화학회사 ‘이네오스’ 그룹 회장, 짐 래트클리프(Jim Ratcliffe)예요.
오프로드 SUV의 전설
디펜더를 동경한 남자 😍
글로벌 석유화학회사의 회장이자 영국의 대표 부호인 짐 래트클리프가 동경했던 자동차는 바로 랜드로버의 장수 모델이자, 지금의 랜드로버를 만든 디펜더예요. 물론 지금 재규어랜드로버(JLR)가 판매하고 있는 신형 디펜더가 아닌 2016년에 단종된 바로 그 ‘각진’ 모습의 1세대 구형 디펜더를 사랑했던 것인데요.
짐 래트클리프가 사랑한 1세대 디펜더는 1948년 처음 출시된 후 몇 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1971년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으로 무려 약 45여 년의 세월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어요. 디펜더는 약 반세기의 세월 동안 각진 모습을 간직하며 여러 마니아들을 낳기도 했죠. 이후 전쟁과 환경규제 등의 이유로 2016년 단종 수순을 밟은 바 있어요.
짐 래트클리프는 1세대 디펜더의 단종 소식에 재규어랜드로버측으로 안전과 환경규제 등을 충족한 1세대 디펜더를 생산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하였으나 번번히 거절당했다고 해요. 이에 1세대 디펜더를 본인이 직접 생산하고자 지적재산권 매입을 시도하기도 했죠. 그러나 이 또한 실패에 이르렀어요.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1세대 디펜더와 유사한 자동차를, 무려 직접 만들어내고자 디펜더 단종 1년 뒤인 2017년 자동차 회사를 창립하기에 이르러요. 그 회사명은 바로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글로벌 석유화학회사 이네오스그룹 산하의 계열사예요. 하나의 자동차를 좋아하다 못해 그룹 계열사로 자동차 회사를 만든 셈이죠.
그렇게 회사가 설립된 후 착수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당연하게도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해석이 들어간 디펜더와 유사한 형태의 ‘진정한 오프로더’였어요. 하지만 석유화학회사가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요. 이에 BMW, 마그나 슈타이어, ZF, 카라로 등 유명한 자동차 관련 업체들과 협력하여 관련 부품, 장비 등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렇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난 후 2022년 회사의 첫 번째 오프로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선보일 수 있었죠. 무려 회사 설립 후 약 6여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어요. 참고로 자동차 이름은 런던 벨그라비아 지역 소재의 펍, 더 그레나디어(The Grenadier)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요. 바로 회사 창립자 짐 래트클리프의 단골 술집이라고 하는군요.
벤츠, 폭스바겐, BMW가 뭉쳤다 🤝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이 차의 외관을 처음 본 순간 1세대 디펜더의 새로운 페이스리프트를 연상케 했어요. 특히 박스형 차체에 지붕 모서리 사파린 윈도우,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1세대 디펜더와 닮았다는 느낌을 줘요. 만약 모르는 사람에게 현재 판매 중인 랜드로버 신형 디펜더와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나란히 세워 두고 1세대 디펜더의 후속 모델을 고르라고 하면 의심의 여지없이 그레나디어를 꼽을 것 같아요.
참고로 그레나디어의 모습을 보고 G바겐, 브롱코 등의 오프로더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처럼 그 특유의 각진 형태는 이 차가 정통 오프로더의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정통 오프로더답게 모노코크 바디가 아닌 보디 온 프레임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차량의 크기는 전장 4,927mm, 전폭 1,930mm, 전고 2,036mm, 휠베이스 2,922mm으로 준대형급 정도로 분류할 수 있어요. 최저지상고는 264mm, 접근각과 이탈각은 35도~36도이며, 최대 800mm까지 도하가 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어 차체가 험로 주행에 최적화되어 있어요.
실제로 그레나디어는 극한의 조건에서 주행할 수 있도록 모로코 사하라 지역, 스웨덴 혹한 지역 등을 포함 전 세계 15개 국가에서 180만km의 주행 테스트를 거쳤다고 하는군요.
차량의 성능 또한 무시 못하는데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의 엔진은 3.0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터보 혹은 디젤 트윈터보가 장착돼요. 이 엔진은 모두 BMW에서 공급받아 그레나디어에 맞춰 세팅이 됐으며, 여기에 ZF 8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됐다고 해요.
가솔린 모델의 경우 최고출력 281마력, 최대토크 45.8kgm의 힘을 발휘하며, 디젤 모델은 최고출력 245마력, 최대토크 56.0kgm의 힘을 갖추고 있어요. 그리고 두 모델 모두 상시 사륜구동이며 견인력은 최대 3,500kg이에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외관 및 실내는 모두 비포장주행에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어요. 우선 외관을 살펴보면 루프랙이 없이도 짐과 화물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루프 프로텍션 스트립, 타이다운 루프 레일이 장착되었어요.
그리고 옵션 사양으로는 천장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엑세스 레더, 도어에 여러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 있는 유틸리티 벨트를 장착할 수 있죠. 또한 후면 도어, 즉 트렁크를 좁은 공간에서도 짐을 싣거나 내릴 수 있도록 7:3 비율로 문을 분할한 점도 눈에 띄어요. 이 경우 차량 뒤에 트레일러를 부착한 경우에도 작은 문을 통해 트렁크를 열고 닫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실내의 경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오버헤드 컨트롤 패널이에요. 1열 천장 중앙에 프론트/리어 디퍼렌셜록 등 오프로드 기능을 담은 스위치들이 모여 있어,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 뒀어요. 이는 항공기 조종석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라고 하는데요. 기존의 일반 자동차에서는 보기 힘든 차별화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외에도 센터패시아 상단에 12.3인치 터치스크린이 장착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각종 버튼들을 큼지막하고 넓게 배치하여 장갑을 착용하거나 젖은 손으로도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특징이에요. 아울러 정통 오프로더 답게 5개의 역류 방지 배수 밸브가 기본사양으로 제공되며, 내부의 모든 요소들은 방수처리로 마감했어요.
그리고 2열 시트는 60:40으로 분할이 가능하며, 폴딩 시 2,000리터 이상의 적재공간이 확보된다고 하는군요.
앞선 설명으로만 보면 막강한 정통 오프로더 그 자체지만, 신생회사에서 제작하는 차량인만큼 그레나디어의 성능 및 품질에 의문을 표하는 시선도 있어요. 이에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글로벌 석유화학회사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여러 자동차 업계 회사와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어요.
이를테면 벤츠 G바겐을 생산하는 마그나 슈타이어에서 엔지니어링을, 프레임은 폭스바겐 픽업트럭, 아마록의 설계를 맡은 독일의 게스탐프가, 엔진과 미션은 BMW와 ZF에서 공급받았다고 해요. 따라서 출시 이후 차량에 대한 평가가 기대되는데요, 과연 현시대 내로라하는 자동차업계가 협업해 탄생된 훌륭한 자동차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혹은 만나면 안 됐을 비운의 조합으로 평가받을지 그 결과가 궁금하군요.
한편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그레나디어 출시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정통 오프로더를 생산할 계획 또한 가지고 있어요. 차기 모델은 내연기관이 아닌 친환경 전기 SUV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해요. 이 자동차는 그레나디어의 엔지니어링을 맡았던 마그나 슈타이어와 협력하여 탄생될 거예요.
그 밖에도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현대차와 협력하여 그레나디어의 수소차 버전을 테스트하고 있는 등 내연기관에서 탈피하고 여러 가지 친환경 파워트레인으로 구성된 오프로더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불도저처럼 등장
그레나디어, 한국에서도 빛날까? ✨
지난 3월 22일 이네오스 그레나디어가 국내 공개됐어요. 이는 아시아 지역 중에서는 최초 공개라고 하는데요. 이윽고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그레나디어의 실차가 전시되면서 국내 자동차 전문 매체는 물론 일반 대중들도 이 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도 하였죠.
전시 기간 동안 SUV 동호회에서 실물을 보기 위하여 정기 모임을 열었던 곳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정통 오프로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바 있어요.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올해 3분기 중 사전 계약에 돌입하여 이르면 올해 4분기, 늦어도 내년 1분기에는 국내 고객 인도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요. 가솔린과 디젤 모델 중 국내에서는 우선 디젤 모델이 먼저 출시될 예정이라고도 하죠.
가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는데요. 영국 기준으로 8천만 원부터, 북미시장에는 약 1억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시장 또한 약 8-9천만 원대 가격으로 책정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짐 래트클리프'는 이네오스 그룹의 회장이자 1세대 디펜더의 열렬한 팬이에요.
✌️ 능력자(?) 팬답게, 직접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 디펜더와 거의 유사한 차량을 제작했어요.
👌 올해 3분기에는 국내 출시도 앞두고 있답니다.
자신이 애정하던 자동차의 단종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무려 자동차 회사를 차려 단종된 자동차의 ‘정신적 후속작’을 탄생시켜버린 짐 래트클리프 회장의 열정은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는 말과 같이, 석유화학회사 이네오스 그룹의 자동차 업계 진출이 단순히 회장님의 취미생활에서 그칠지, 아니면 또다른 글로벌 오프로더 업체의 탄생의 시작일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될 듯싶어요.
이미지 출처 - 제조사 홈페이지,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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