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앵무새 영상 보던 소년, 세계가 주목한 새 박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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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시대 한중봉]
▲ 박진석 군이 고등학교 시절인 2013년 7월 첫 사진전을 열면서 본지와 인터뷰를 했을 때 모습이다. |
ⓒ 남해시대 |
소년 박진석이 새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건 경남 남해 해양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앵무새 영상을 본 것이 계기였다. 매일 앵무새 영상을 봤다. 자꾸 보다 보니 앵무새의 습성까지 알게 됐다. 앵무새는 물론 닭까지 키우며 알을 이웃에 분양도 했다. 인터넷과 책을 통해 새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소년 박진석과 새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소년 박진석의 새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2년 해성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조류 연구가이자 생태사진작가인 장성래씨가 조류 연구에 관심을 보인 이 소년의 멘토(조언자)가 됐다. 장성래 작가와 진석군은 함께 팔색조 서식지 등을 찾아 사진을 찍고 현장 활동을 했다.
팔색조 어미 새가 새끼를 돌보고 먹이를 물어다 주며 성장시키는 것처럼 진석군 곁에도 장성래 작가가 있어 조류학자의 꿈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갔다.
알을 깨고 나오다
진석군은 고등학교 2학년인 2013년 경남과학전람회에서 '알라꼬리마도요 새의 행동 및 이주에 관한 연구'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해 7월에는 삼동면에 있는 나비생태공원에서 첫 새 사진전을 열었다.
▲ 박진석 군이 고등학교 시절 『새와 함께 꿈을 꾸다』와 『팔색조의 육아비밀』 두 권의 책을 썼다. 이 중 『팔색조의 육아비밀』은 장성래 작가와 함께 썼다. |
ⓒ 남해시대 |
진석군은 전문적인 새 공부를 위해 2015년 중앙대 생명과학과에 진학했다. 그해 4월 장성래 작가와 함께 공동으로 '황금새의 번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경남 남해군 상주면 두모마을에 머물고 온 황금새의 육아 패턴, 번식 과정, 주변 환경 등을 관찰한 결과를 담고 있었다. 이 논문은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아 2015년 상반기 한국조류학회지에 정식 등록됐다.
학업에 허기를 느낀 박진석군은 201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명과학부 석·박사 통합 과정에 들어가 연구에 매진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24년 8월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박사의 주요 논문의 제목은 'Escape behaviors in prey and the evolution of pennaceous plumage in dinosaurs'. 한국어로 번역하면 '피식자의 탈출 행동과 공룡에서의 깃축형 깃털의 진화'다. 이 논문은 '공룡은 새와 비슷한 깃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날지 못했을까? 공룡의 깃털은 처음에 왜, 어떤 용도로 생겨났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박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이 소형 공룡이 깃털 달린 앞발을 곤충 같은 작은 동물을 놀라게 한 뒤 튀어 오르면 잡아먹는 '탈출 유도 후 추적(flush-pursuit)' 사냥에 활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로봇 공룡으로 이를 검증했다.
▲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학위를 받은 박진석 군과 지도해 준 피오트르 야브원스키 교수와의 한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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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석(왼쪽 두 번째) 군이 지난달 28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수여식에는 할머니 이점순 씨, 아버지 박치홍 씨, 어머니 박민정 씨가 참석해 진석 군의 노고를 격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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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꿈꿨던 새 박사가 된 '박 박사'에게는 알을 깨고 나오고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조력자가 많다.
박 박사는 "조류학자의 꿈에 큰 영향력을 주신 장성래 작가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장성래 작가님은 제가 궁금해하고 찾아보기 어려운 자료를 서슴없이 내어주셨다. 영원히 감사드려야 할 분"이라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박 박사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꿈을 응원해 준 스승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당시 사진 전시회를 챙겨주신 최성기 해성고 교장 선생님, 책 교정을 도와주신 문정련 국어 선생님, 과학전람회 연구를 이끌어 주신 김민정 생물 선생님, 한국조류학회지 영어 초록을 다듬어 주신 한샛별 영어 선생님, 항상 상담해 주시면서 도와주신 박영출, 정은주 선생님 그리고 임종운 담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께서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저의 꿈에 대해 한 번도 뭐라고 하지 않으시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마움을 전했다.
박진석 박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어린 시절 닭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 닭장을 직접 만들어 주시고 자동온도조절기를 달아주시는 등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주셨다"면서 "부모님도 제가 새 관찰을 위해 가는 곳마다 차량으로 이동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자식은 부모가 믿는 만큼 성장한다'는 격언이 박 박사 가족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더 멀리 날기 위해
박사 박위를 취득한 진석군은 앞으로 독일로 유학 갈 계획이다. 3년 정도 공부를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조류학'을 가르치는 학자가 되고 싶다고.
오직 '새' 한 길을 걸어온 박진석군이 2013년 7월 <남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조류학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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