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촌뜨기들> 임수정이 밝힌 만보춤 비하인드와 현봉식과의 선후배 논란(?)

임수정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임수정이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에서 ‘양정숙’으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선택한 정숙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보듬던 과거 그가 선택한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 자신, 진짜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단호한 정의처럼, 임수정이 연기한 정숙은 돈과 권력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존재다. 인터뷰 내내 임수정은 “이번엔 주체적인 인물을 해보고 싶었다”고 반복했다. 작품 전체의 서사가 ‘관석(류승룡) 일행의 도자기 도굴’로 굴러갔지만, “정숙은 한 장면, 한 장면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역할”이었다며, 매 테이크를 “즐겁게, 그런데도 진심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최근엔 작품을 고를 때 ‘욕망’을 본다고 했는데 이번 작품은 그 욕망을 해소해 줬냐는 질문에 임수정은 자기 기준의 변화를 짚었다. “20대엔 캐릭터에 대한 연민, 공감이 컸어요. 이제는 이야기 전체가 나를 설득하는지가 더 중요해졌고,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에 끌려요. 꼭 선이나 악으로 나뉘지 않아도요” 정숙은 그 지점에서 ‘매력’이었고, 동시에 ‘도전’이었다.

<파인: 촌뜨기들>

정숙의 사랑은 어떻게 해석할까. 천 회장(장광), 오희동(양세종), 임전출(김성오) 사이에서 불쑥 드러나는 진심의 결을 두고 질문이 이어지자, 임수정은 “원작에선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었다고 전제한 뒤 “드라마의 정숙은 사랑에 관해선 조금 서툴고, 아직 순수한 마음의 여지가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밀실에서 스쳐 간 장면은 “해프닝처럼 지나가지만, 뒤로 갈수록 정숙은 희동을 내심 품어온다”는 강윤성 감독의 의도를 받아 연기했다. 극중 정숙이 100만 원을 ‘턱’ 내어주며 “안 갚아도 돼”라고 말하는 순간에 깃든 감정은 그래서 크다. “그때 100만 원은 지금 몇 천만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1원도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인데, 희동에게 예외가 생긴 거죠”

배우로서는 ‘흑화’를 통해 맘껏 놀아본 시간이었다. 천 회장 암살을 공모하고, 의사 앞에서 오열하며, 곧장 표정을 전환해 속셈을 감추는 ‘연기 속 연기’의 장면들. “기술적으로만 해도 되지만, 저는 ‘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목에 핏대가 서도록,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감독님도 처음엔 놀라셨는데, 뒤의 전환이 더 설득력 있어졌다고 하셨어요” 은행 프라이빗룸에서 도장을 찾고 만보춤을 추는 장면도 즉흥에서 빚어진 즐거움이다. “원래 대본엔 없었는데,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주시고 레퍼런스까지 직접 춰서 영상으로 보내주셨어요. 여러 쇼트로 쪼개지 않고 한 쇼트로, 발재간에서 얼굴까지 쭉 타는 동선으로 찍었죠. 미리 연습했다면 더 세련됐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몸의 리듬이 더 어울렸던 것 같아요”

1970~80년대의 질감은 말맛과 외형에서 완성됐다. 직전 작품인 영화 <거미집>에서 70년대 배우의 말투를 익힌 것이 이번엔 자연스러운 바탕이 됐다. “‘뭐 했수?’ 같은 어투가 저도 모르게 조금 남아 있었나 봐요. 류승룡 선배님이 ‘그게 좋다’고 짚어주시고, 감독님·분장·의상팀과 눈썹 위치부터 헤어, 수염, 옷결까지 프리 단계에서 꼼꼼히 맞췄어요” 그래서였을까. 촬영 초반, “감독님이 눈빛이 너무 착하다”는 피드백을 건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양정숙 같다”는 말을 들었다며 “제가 계산한 것보다, 현장에서 몰입하며 나온 표정·발성·근육의 결들이 스스로도 낯설 만큼 확장됐어요. 흑화될수록 감독님이 더 좋아하셨고요 (웃음)”

정숙과 천 회장의 ‘서열’은 발 마사지 신으로 상징된다. “원작에선 무릎을 꿇고 발을 주무르는데, 드라마는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관계의 위계를 분명히 보여주려 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선생님 발을 잡고 연기했죠. 이후 금고 앞에서 호통치는 천 회장 앞에서 정숙이 ‘깨갱’하는 순간엔 눈에 번지는 붉은 기운, 떨리는 호흡 같은 디테일을 더했어요. 그 관계가 명료해야 다른 장면에서 정숙이 스스로 꼭대기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설득되니까요”

열린 결말에 대한 해석은 단호하게 열어뒀다. “엔딩은 다양한 버전으로 감독님과 윤태호 작가님이 많이 논의하셨어요. 생존·부활 여부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게 의도였고, 저도 특정 방향으로 마음을 못 박지 않으려 했어요. 시즌2가 나온다면 배우로선 당연히 기쁘죠. 다만 정숙이 다시 등장할지는 저도 모릅니다 (웃음)” 혹시나 다음 시즌의 정숙에 대해 묻자, 그는 “같은 새로움이 두 번 이어지면 새롭지 않다”며 “더 서늘하고, 빈틈이 허용되지 않는 악역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정숙의 뿌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전사를 만들 수도 있지만, 세상엔 그냥 본능적으로 돈·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집착 자체를 본질로 두고 연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정숙에게 느끼는 묘한 연민을 숨기지 않았다. “천 회장과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전출에겐 배신당했고, 희동의 사랑도 얻지 못하죠. 알고 보면 참 짠한 인물이에요. 감독님이 악행을 저지르는 소시민들의 허무를 시대와 함께 그리고 싶어 했고, 그래서 <촌뜨기들>이라는 부제가 붙었구나 싶었어요”

자신의 얼굴에서 가장 낯선 표정을 발견한 순간을 묻자, 임수정은 후반부를 떠올렸다. “관석에게 ‘돈 준다더니!’ 소리치다 분노를 못 이기고 유산하는 장면이요. 제 전략이 전부 무너진 벼랑 끝의 정숙. 현장에서 류승룡 선배님이 ‘진짜 무섭다’고 하셔서 ‘됐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가장 수줍은 얼굴은 밀실에서였다. “사랑은 아니지만, 분위기와 흐름에 휩쓸린 선택. 이후엔 희동이 인간적으로 안쓰러움을 갖게 되고, 정숙은 몰래 마음을 키워가죠”

작품 바깥의 이야기들도 이어졌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백에 대해 “제 연기를 보면 부족한 것만 보여요. 지금의 경험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할 수 있겠죠”라고 담담히 말했다. 예능에서 화제가 된 현봉식 배우 ‘선후배’ 해프닝도 유쾌하게 풀었다. “차기작 tvN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연출 임필성, 출연 하정우·김준한·정수정 등) 대본 리딩에서 처음 뵀는데, 제가 ‘선배님 팬이에요’라고 했다가 ‘제가 후배입니다’라는 답을 듣었다”며 “하정우 오빠가 ‘수정아, 얘가 네 동생이야’라고 정리해 줬죠(웃음)”

임수정은 지금 연기가 너무 재밌다고 했다. “20대엔 영화밖에 몰랐고, <장화, 홍련>으로 청룡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이후 10년 지나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청룡 여우주연상을 받았죠. 그 다음엔 일상과 작업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었고요. 다시 불이 붙은 건 2019년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배타미’였어요. 그때부터 작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연기가 계속 재미있더라고요. <거미집>에서 ‘친정’처럼 영화를 다시 느꼈고, <파인: 촌뜨기들>도 신나게 했어요. 지금 찍는 드라마도 그렇고, 당분간은 천천히지만 꾸준히, 재미있게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의 끝에서, 그는 정숙을 “빈틈 많고 그래서 귀엽기까지 한 사람”으로 불렀다. “무언가를 가지려고 아등바등 소리 지르지만, 주변에서 뒤통수를 맞고도 모르는 그 모습이 짠해요. 그렇지만 다음엔,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서늘함으로도 만나고 싶어요” 사랑받는 얼굴에서, 욕망의 얼굴로. 임수정은 스스로 확장한 반경을 줄일 생각이 없다. “확장하고 나서 줄이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그 말이 주는 여유와 의지가, 지금의 임수정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글 ·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
사진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