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 범퍼카가 12~13km/h로 충돌하는데, 아프다고 하기보다 웃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밖에서는 살짝 닿기만 해도 등이나 목부터 잡고 나와 병원가서 (입원해) 나오지 않는 분이 있다"
허창언 보험개발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말하며 경미한 자동차 사고(이하 경미사고)에도 피해를 과장하는 문화를 지적했다. 병상 환자의 약 90%가 경미사고에서 비롯된 사례라며 해당 환자 수만 줄여도 자동차 보험의 손해율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 원장은 ″경미사고에서 보험금 중 진료비가 과도하게 증가해 보험료 인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공정한 보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쟁 해소 및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 경감을 위해, 사고의 충격 정도 등 공학적 근거가 활용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도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10km/h 전후의 저속 충돌 실험했을 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험개발원은 이와 같은 실험을 바탕으로 상해 위험 분석서를 작성, 자료를 보험사에 배포하며 활용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3년(2021~2023년) 간 경미사고 보험금 관련 소송에서 가해자 측 요청으로 총 50건의 상해 위험 분석서를 제공했다. 이 중 48건이 법원의 증거로 채택되며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 해소에 기여했다.
허 원장은 "스페인이나 영국 등은 법에서 몇 km 이내는 '다친 것이 아니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며 "이는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미쳐 '이 정도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저속 충돌 사고로 보험금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다쳤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미사고와 관련해 입증책임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손해사정사 등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하면 여기에 맞춰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발원은 저속 충돌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화 추진을 위해 국회 입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보험 약관에 특정 경미사고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어 경미사고 피해 과장 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허 원장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분석 기술을 접목해 고의사고 의심 사례를 찾아내고 수리비 적정성 검증으로 보험금 지급 절차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킬 것을 약속했다.
이날 개발원은 보험이 국민의 일상에 더 편리하고, 안전하고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며 주요 사업 추진 과제로 △실손보험 청구전산화 시스템 구축 △운전습관 데이터 플랫폼을 통한 안전운전 혜택 확대 △사용자 중심의 맞춤형 콘텐츠 제공 △저출산, 기후변화 등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상품개발 지원 등을 제시했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