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켜자마자 '쿵'... 반려견 떠나보내고 찾아온 분노의 실체

송주연 2026. 6. 1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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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반려동물] 펫로스 후 겪은 감정의 변화... 심리학 연구로 밝혀진 '반려인'의 마음

반려동물은 사람의 마음을 비춥니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 관계 맺는 방식 등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반려동물을 통해 내 마음의 일을 하나하나 알아갑니다. <편집자말>

[송주연 상담심리사·작가]

2023년 4월 14일. 이날 아침을 여전히 꿈속에서 다시 경험한다.

첫 반려견 은이가 동물병원에 입원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에 밤새 잠을 설치다 새벽 일찍 눈이 떠졌고, 마음을 다스려보려 성당에 갔다. 처음 새벽 미사를 했다. 미사 중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입원기간 은이의 또렷했던 눈망울, 꼬리 치며 걷던 모습, 준비해간 특식을 조금이라도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은이가 다시 내 품에 돌아올 증거를 모으며 아침 일찍 면회하러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미사를 마치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은이가 입원한 동물병원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와 있었다. 그 길로 동물병원으로 달려갔고, 영원히 잠들어버린 은이를 만났다.

'분노' 강했던 펫로스
 나의 첫 반려견이었던 '은이'
ⓒ 송주연
그렇게 '펫로스(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때의 슬픈 감정과 괴로움 등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드러내는 표현)'가 찾아왔다. 정신과 의사로 말기 암 환자들을 돌봐온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부정-분노-타협-우울- 수용'의 5단계로 구분했다.

이에 따르면 자신 혹은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은 가장 먼저 현실을 '부정'한다. 그 후 하필 왜 나인지 억울해하는 '분노'의 시간을 거쳐, '좀 더 잘 할 테니 한 번만 다시 기회를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드는 '타협'의 시기가 찾아온다. 이 모든 것이 소용없어질 때쯤 '우울'이 찾아오고 이를 지나 마침내 죽음을 '수용'하게 된다. 이 다섯 단계를 차례대로 겪기도 하지만, 특정 단계를 건너뛰거나 한 단계에 오래 머무르기도 한다.

먼저 '부정'의 감정이 들었다. 병원에서 은이를 데리고 와 장례 전까지 하루 정도 함께 있었는데 한생명이 떠났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은이를 쓰다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면, 마치 은이가 내 옆에서 자는 것 같았다. 그러다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내시경 검사 후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다 패혈증이 와서 이렇게 됐으니 책임을 병원에 묻고 싶었다가 곧 그 화는 나 자신으로 향했다. 왜 더 잘 돌보지 못했는지, 내시경 검사는 왜 시켰는지 화가 치밀었다.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스스로를 향한 강한 분노는 '우울'로 이어진다. 그래서 인지 '타협'의 단계는 건너뛰고 곧바로 우울의 자리에 들어갔다. 은이의 장례를 치르고 몇 주간 제대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었다. 입맛이 사라졌고, 뭘 해도 시큰둥했다. 내담자들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워 상담 약속도 잠시 미뤄두었다. 글쓰기는 불가능했고, 책을 읽어도 드라마를 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빈집에 홀로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상담도 하지 않으면서 상담실에 나가 있다가, 남편과 함께 귀가하곤 했다.

남편 회식이 있어 집에 혼자 귀가해야 하는 날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처럼 '은이야' 라고 불렀고, 은이가 내게 뛰어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장례식장에서보다도 더 많이 운 것 같았다. 그제야 은이가 없는 빈 집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수용'에 다다랐다.

'반려인'이라는 정체감

이후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생기가 돌지 않았다. 개가 없는 일상이 낯설기만 했다.

은이의 뒤척임에 자다 깨는 일도 없었고, 은이의 짖는 소리가 민폐가 될까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됐다. 은이의 식사와 산책 시간을 고려해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됐고, 은이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서둘러 귀가하지 않아도 됐다. 사료 등 반려동물 용품 정보를 검색하지 않아도 됐고, 여행할 때 '펫동반' 여부를 살펴보지 않아도 됐다. 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이상하기만 했다. 한번은 고속도로 휴게소 실내에서 밥을 먹는데 (은이와 함께 할 땐 늘 야외분식 코너만 이용했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편안한 식사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이 감정들에 머물러보니 알 것 같았다. 내가 잃은 건 은이 만이 아니었다. 반려인으로 10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변해 있었다. '반려인'이라는 정체감이 내 안에 자리 잡았고, 은이를 잃음으로써 내 정체감의 일부도 상실한 셈이었다. 그러니 '내가 나'라는 생생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느낌은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심리학에서도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IWAM(Identification With Animal Model)이다. 동물에 대한 동일시를 의미하는 말인데, 동물을 자신의 삶에서 어느 정도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개념이다. 동물과 어느 정도로 유사하다고 느끼는지, 심리적으로 '우리'라 느끼는지, 동물에 대해 어느 정도로 공감하는지 등을 연구하는 분야로, 이를 측정하기 위한 심리학적 척도도 개발되고 있다.

또한 동물이 자기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자기관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인데 관계와 관련된 자기관으로는 주제성 자기와 대상성 자기가 있다.

주체성 자기는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대상적 자기는 타인에게 영향받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정예헌(2025)은 '반려동물 양육여부가 주체성-대상성 자기관, 스트레스 대처방식 및 주관적 안녕감에 미치는 효과분석' 논문에서 '반려인이 비반려인보다 주체적, 대상적 자기가 모두 유의미하게 높다'고 분석했다. 반려동물이 단순히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반려인과 심리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처럼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사람의 정체감 형성에 관여하기도 한다.

다시 개와 살기 시작하다
 지금 내 곁에 함께 하고 있는 '라온'
ⓒ 송주연
그래서일까. 펫로스를 경험한 다른 반려인들보다 쉽게 은이의 동생을 맞아들였다. 은이를 보내고 몇 달 후, 은이와 인연 맺게 해준 보호소로부터 장애로 해외 입양을 고려 중인 라온의 임시보호(이하 '임보')를 제안받았다. 라온이 내게 오자, 반려인이라는 정체감이 되살아났고, 일상은 몰라보게 생생해졌다. 임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임보실패'를 선언하고, 라온을 삶에 받아들였다. 라온과 함께한다고 은이에 대한 그리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좀 더 나 다운 느낌이 들었다.

'반려인'이 '정체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한 사람의 심리적 역동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만만치 않을 터였다. 상담심리사로서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라온과 함께하는 내 마음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았다. 정말로 나의 중요한 심리적 요소들이 라온에게 투사되고 있었고, 또한 라온의 영향을 받아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산책하다가 사귀게 된 다른 반려인과 대화 속에서도 반려동물과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한 내담자는 상담 신청서의 '가족'란에 고양이를 적었다. 그 내담자와의 라포(상담자와 내담자간에 형성되는 친밀한 관계)는 고양이로부터 시작됐다. 고양이와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우리는 좀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고양이와의 관계는 이 내담자의 마음 깊은 곳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사람의 마음은 단지 사람끼리만 주고받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생명의 일부로서 우리 곁의 동물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은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비춰주고, 반대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앞으로 써 갈 이야기는 나의 반려견 라온과 내 반려인 이웃들, 그리고 반려인 내담자들에게 허락받은 '마음'의 이야기다. 나를 포함한 반려인들이 반려동물과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변화해가는 마음의 모습들을 포착했다. 이 이야기들이 우리 마음의 영역을 확장해 주길, 그래서 보다 다양한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이 삶에 더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 송주연 상담심리사(한국 상담심리학회 1급)는 ‘루트 심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루트 심리상담소’는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펫 프렌들리’상담소입이다. 저서로는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2020),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2021), <개와 살기 시작했다>(2023), <질병과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을 때>(2025)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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