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랬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다.
야구에서도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
괜히 분석 미팅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약점을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기 위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보고 상대를 읽는다.
그런데 아무리 상대를 잘 알아도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다.
나를 먼저 알고, 나의 강점을 드러내야 경쟁의 무대에 오를 수 있고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
나를 알기 위해 나를 보고, 나를 찾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트레드 어틀레틱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위치한 야구 전문 트레이닝 센터가 어느샌가 KIA팬들에게는 익숙한 곳이 됐다.
KIA는 지난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프런트를 이곳에 파견해 인연을 맺었다. 앞선 겨울에도 이곳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한 이들이 있다.
기대감으로 막을 연 2025시즌, 기다렸던 1군 무대가 아니지만 뒤에서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최근 기아 함평 챌린저스 필드에서 만난 유지성, 이승재 그리고 오규석.
자아발전 시간, 이들 손에는 핸드폰이 있었다. 서로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주고 함께 영상도 보고, 조언도 하면서 이들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1군 무대를 그리고 있는 세 선수는 ‘트레드 어틀레틱스 동기’다.
미국에서 ‘방향성’을 찾아왔다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한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KIA에 좋은 코치들이 많다. 훌륭한 분석팀도 있다. 이들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경쟁자이자 동료인 이들은 누구보다 가장 좋은 코치이자 분석팀이다.
먼 타국에서 함께 도전의 시간을 보냈고 서로의 방향을 보고 왔기 때문에 봐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도 많다.
개성도 경력도 다른 이들이지만 보는 것은 같다.
“최고의 나를 찾아 상대를 이기는 것.”
이승재는 한 때 KIA에서 ‘뜨거운 이름’이었다.
2021년 강릉 영동대를 졸업하고 KIA 유니폼을 입은 그는 프로 첫 스프링캠프에서 강속구로 제대로 자신을 알렸다.
대학 시절 150㎞가 넘는 공을 뿌렸던 이승재는 스프링캠프에서도 150㎞가 넘는 공을 던지면서 윌리엄스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투수로서는 큰 체격이 아니었던 만큼 그의 매서운 공은 더 화제가 됐었다.
그리고 이승재는 4월 7일 키움을 상대로 한 프로 데뷔전에서 3이닝 퍼펙트 피칭을 선보이면서 연장 12회 승부의 승리투수가 됐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프로 첫해 25경기에 출전해 1군 무대를 경험했던 그는 2022년에는 1경기 출장에 그쳤고, 이후 군복무를 위해 팀을 떠났다. 2024년 예비역이 돼 돌아왔지만 아직 복귀전은 치르지 못했다.
지난해 어깨가 좋지 않아 재활군에 오래 머물렀던 그는 트레드에서 확실한 그림을 그렸다.
이승재는 “테이터가 많다. 메이저 선수들 데이터도 엄청 많으니까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비교하면서 알려준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좋았던 것 같다. 받아들이기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승재가 이곳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역시 스피드다.
이승재는 “스피드가 150㎞ 이상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또 “팔이 낮다고 했다. 그게 어깨 부상하고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건 꼭 고치고 가야 한다고 했다. 뒤에서 90도는 올라와야 하는데 팔이 낮으니까 부상 위험이 있다고 했다”며 가고 있는 방향과 목표를 이야기했다.
2020년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KIA 선수가 된 좌완 유지성은 프로 5년 차였던 지난해 ‘꿈’을 이뤘다.
프로 첫해를 보낸 뒤 현역으로 입대해 일찍 군복무를 마친 그는 지난해 8월 29일 기다렸던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 시즌 유지성의 기록란에 쓰인 숫자는 3경기 2.1이닝 5피안타(1피홈런) 4실점 2자책점(평균자책점 7.71)이다.
부족할 수도 있는 성적이지만 유지성에게는 다음 꿈을 꾸게 하는 큰 기록이다.
유지성은 “데뷔라는 목표를 이뤘으니 90점을 줘야 할 것 같다”고 자신의 첫 기록을 평가했었다.
잊을 수 없는 팬들의 함성을 안고 유지성은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유지성은 “보완해야 할 게 무엇인지,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갔다. 문제점을 잡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 방안은 다 나왔다. 몸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 부분 더 신경 써서 안 좋은 것은 빨리 버리고 좋은 습관 들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운 것을 익혀서 만들고 싶은 목표는 스피드다.
유지성은 “144~145㎞ 꾸준히 나오면서 최고 148㎞, 150㎞이상까지 바라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부분이다. 밸런스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유지성은 자신의 단점도 확인했다. 하지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보기로 했다.
유지성은 “단점까지 생각하면 생각이 엉키게 된다. 되던 것도 안 된다. 단점은 알고는 있되 장점을 극대화 시켜서 단점을 덮는 쪽으로 해야 할 것 같다”며 “하체를 쓰는 법을 몰랐다. 과학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선수와 그렇지 못했던 선수를 비교하면서 보여준다. 하체에서 상체로 옮겨가면서 손끝에 힘을 전달해야 한다”고 스피드 업 방안을 이야기했다.
휘문고 출신의 우완 오규석은 내야 고민에 빠져 있던 KIA가 2020 신인드래프트에서 야탑고 박민, 강릉고 홍종표 두 내야수에 이어 가장 먼저 호명한 투수다.
140㎞ 중반의 묵직한 직구를 바탕으로 변화구 구사 능력과 제구력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던 선수. 하지만 아직 팬들 앞에는 서지 못했다. 트레드 여정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찾아온 오규석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재활 중인 오규석은 머릿속에 자신이 꿈 꾸는 모습을 열심히 그려가고 있다. 트레드에 다녀오면서 생각이 뚜렷해졌다.
오규석은 “장점과 단점을 다 잘 알려준다. 지금 당장 확 좋아지는 것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성을 알려주니까 머릿속에서 헷갈리는 게 많이 줄었다”며 “원래는 ‘이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많은 선수들을 통해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개인에 맞춰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기 때문에 선수들은 ‘믿음’을 갖는다.
오규석은 “미국이 기술적으로 더 발전을 한 곳이고, 선수도 많고 테이터도 많다. 데이터 부분에서 보여주니까 믿음이 갔던 것 같다”며 “팔을 조금 낮췄다. 장기적으로 부상 위험도 있고, 강한 공을 오래 던질 수 없으니까 팔을 낮추는 게 좋다고 했다. 다리 들고 나갈 때 무게 중심이 너무 앞쪽에만 있어서 하체가 죽는 경우도 있어서, 중심도 뒤로 옮겨 놓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고 있다. 옆에서 도움도 주고, 응원도 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규석은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시작을 하니까 좋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이유도 모른 채 ‘그래왔으니까’ 또는 ‘정답=정해진 답’이라고 생각해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해오곤 했다. 강압에 의해서 관습에 따라서, 세상과 어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는 모른 채, 다른 이들과 경쟁하면서 세상과 싸우기도 한다.
물론 내가 누구인지 또 ‘왜?’라는 답을 안 채 도전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온전히 내 몫으로 노력하고 시도해 볼 수는 있다. 후회 없는 최선,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