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을 보라. 한 여성이 미국의 길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다짜고짜 직업과 연봉을 물어보는데, 의외로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봉을 선뜻 말해준다. 편집자는 6만 달러, 해군 납품업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각각 7만5000달러와 9만 달러라고 하는데 억대 연봉 찍는다고 잘 말해주는 건가?
유튜브 댓글로 “해외 기업들이 직원 연봉을 자유롭게 공개하는 게 사실인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이런 ‘연봉 공개’가 최근 해외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아예 법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뉴욕시에서는 ‘연봉 공개법’이 전면 시행되고 있는데 기업들이 직원을 뽑을 때마다 급여를 어느 정도 지급할 건지를 공개한다. 신규 채용 공고는 물론이고 내부 승진자나 전근 희망자를 선발할 때도 구체적인 기본급을 알려야 해서 사실상 누가 얼마나 받는지 모두가 알 수 있게 됐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몰려있는 캘리포니아주와 수도 워싱턴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2023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전체 미국 직장인의 20%가 연봉 공개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독일을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들도 일찌감치 직장인이 기업에 임금 정보를 청구할 수 있게 했다는데 ‘회사 내규에 따름’이 디폴트인 한국에서는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해외에서 연봉 공개 열풍이 부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청년 직장인들이 ‘공정한 보상’을 강하게 요구하는 흐름이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
“(연봉 공개의) 가장 큰 장점은 투명성과 공개성이거든요. 내가 조금 덜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어떤 이유 때문에, 어떤 성과가 어떻기 때문에 내가 이런 임금을 받는지 아는 게 나는 더 중요하다. 만약에 그것이 공정한 것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 ‘링크드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Z세대 직장인 다섯 명 중 네 명은 ‘급여 정보의 공유가 급여 평등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반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연봉 공개에 부정적인 비율이 늘어나 세대 간 극명한 인식차를 볼 수 있다.
둘째, 코로나 이후 ‘대 이직 시대’가 개막한 것도 연봉 공개를 앞당긴 이유로 꼽힌다.
그 어느 때보다 노동시장에서 퇴사와 이직이 활발해지면서 내가 가진 직무 능력과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다른 회사에 가면 얼마나 연봉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폭발한 거다. 특히 해외의 경우 성별 및 인종 간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연봉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
“노동시장에서의 시장 정보의 가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혹은 이동성하고 이제 비례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내가 어느 기업에 갔을 때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지는 거고”
그런데 만약 한국에서 연봉을 공개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런 반응?
연공서열이 뿌리깊은 우리나라에선 계급장 상관없이 연봉 다 까고 실력만큼 평가받자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법까지 제정된 해외에선 기업들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미국보다 고용이 경직돼 이직을 덜 하는 데다 돈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는 한국에선 연봉 공개의 장점보다 단점이 크다는 견해도 있는데, 직장인 커뮤니티만 봐도 ‘기업 폐단이 줄어든다’는 옹호론이 있는반면 ‘연봉 공개한다고 사기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최근 몇 년 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서 공정한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젊은 직원들의 목소리가 분출한 걸 보면 국내에서도 언제든지 분위기는 바뀔 수 있다. 특히 일도 안 하는 분들이 월급루팡하며 돈을 더 많이 받아가거나, 승진할 때가 됐다는 이유로 저성과자에게 고과를 밀어주는 행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연봉 공개와 관련된 연구를 찾아보니 연봉 공개가 단기적으로 여러 혼란과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특히 성과에 따른 알맞은 보상이 주어질 경우 전체 근로자의 효용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그나저나 새해도 됐으니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그 나쁜 것들은 이제 다 물러가고, 드라마틱한 연봉 상승과 성과급으로 모두가 웃음짓는 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왱구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취재대행소 왱은 2023년에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지식을 찾아서 열심히 취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