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항거한 것이 무슨 죄냐"... 법정과 거리에서 싸운 '시대의 의인'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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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신군부가 상무대에 설치한 군사법정. 재판부는 군인으로 채워졌고, 재판은 총을 든 헌병이 지켜선 가운데 각본대로 진행됐다. 광주 5.18자유공원에 복원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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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때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한 홍남순(1912~2006) 변호사의 고등군법회의 최후진술 가운데 일부분이다. 당시 고등군법회의는 홍남순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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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홧발에 짓밟힌 광주. 신군부의 시민 학살은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전국으로 확대된 비상계엄으로 본격화됐다. 광주 5.18기념공원에 있는 동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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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순은 5월 26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맞서는 '죽음의 행진'에 참가했다. 행진에는 홍남순 외에도 성직자, 교수 등 17명이 함께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전투교육사령부에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계엄군의 최후통첩이었다.
광주YWCA로 돌아와 대책을 논의한 수습대책위원들은 홍남순과 김성용을 서울에 보내기로 했다. 김수환 추기경과 윤보선 전 대통령에게 광주 상황을 알리고, 유혈 진압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홍남순은 윤보선을 만나러 상경길에 올랐다. 하지만 송정리를 지나 극락강다리 검문소에서 계엄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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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역사공원으로 개방된 옛 505보안부대. 당시 보안부대는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 집권 안정에 앞장선 전위부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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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전 홍남순 변호사(왼쪽)와 벽그림으로 만난 홍남순 변호사. 벽그림은 그의 태 자리인 화순군 도곡면 모산마을에 그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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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엔 5․18민중혁명 희생자 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시민 명예 회복에 앞장섰다.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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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남순기념관으로 조성되는 광주 생가. 광주문화방송 옛터와 중앙초등학교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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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지'는 1973년 전남대학생 박석무와 김남주 등이 유신독재 비판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3․1민주구국선언은 197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기념미사를 빌미로 재야인사를 구속시킨 사건을 가리킨다. 1978년 송기숙 등 전남대 교수 11명이 국민교육헌장에 맞서 발표한 '우리교육지표' 사건 변론도 그가 맡았다.
78년 동아일보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 긴급조치 위반 사건, 79년 동일방직과 YH노조 투쟁 지원 사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시해 사건, 그리고 80년 계엄포고령과 반공법 위반 사건 등 그의 무료 변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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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남순기념관으로 조성되는 광주 생가. 당초 올 초 개관에서 5월로 연기되더니, 개관이 또 다시 연기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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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순 변호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에 맞서 법정과 거리에서 싸웠습니다. 법정에서는 법으로 탄압받는 양심수를 위해, 거리에선 민주투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굳은 절개와 양심으로, 불의와 결코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광주는 그분을 '무등의 대인' '시대의 의인'으로 부르고 존경하며, 그분을 중심으로 민주와 인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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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남순과 부인 윤이정 묘.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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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순 모산마을에 있는 홍남순 생가. 홍 변호사는 지금도 마을주민의 자랑이고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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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순 생가에는 그의 동상과 함께 '時窮節乃見'(시궁절내견) 현판이 걸려 있다. 궁할 때, 그 사람의 절제된 삶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남송시대 시인 문천상의 '정기가'에 나온 구절로, 홍남순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글귀다.
'못 살더라도 항상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죽음에 이를 때에도 아무런 부끄럼이 없이, 역사 앞에 발을 뻗을 수 있다.' '불의에 항거하고 올바르게 산 청년들이 무슨 죄가 있냐. 다 석방해야 한다. 나는 법조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생가 벽면에 새겨진 그의 어록도 발걸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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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남순 변호사의 태 자리인 화순 모산마을 풍경.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유엔세계관광기구 선정 최우수 관광마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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