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의 불화 일으켰다…이문열이 깐 복잡한 가족사
■ 추천! 더중플 - 이문열, 시대를 쓰다
「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고, 누구보다 격렬하게 미움 받았던 작가 이문열.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이문열, 시대를 쓰다'(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22)입니다. 이문열의 회고록 가운데 그의 뿌리가 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추려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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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깊이 묻어뒀던 불행한 가족사
" 사람은 일생를 통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그러기에 평소에는 오히려 더 가슴 깊이 묻어 두게 되는 하나의 얘기가 있게 마련이다. 내게 있어서 '그 얘기'는 바로 『영웅시대』, 아니 6·25를 전후한 우리의 불행한 가족사였다. "
남로당 중간 간부였다가 월북한 공산주의자 이동영의 전락(轉落)과 남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해, 이동영의 모델인 내 아버지, 그가 선택한 이념의 모순을 해명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말이라는 무책임한 그릇에 담긴 생각의 다발에 불과할 뿐인 이념이, 어떻게 피 묻은 칼이나 화약 냄새 나는 총이 되는가. 그것이 소년 시절 이래 내 오랜 관심사였다. 나중에 작가가 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힐 때마다 떠올린 이야기도 결국 아버지 얘기였다. 더구나 제목을 '영웅시대'로 붙여둔 것도, 초고(初稿)의 일부를 써둔 것도 10년이 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북한 체제를 모두 비판해 80년대의 이념 과잉을 드러내는 제3의 입장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것은 미처 쓰지 못했고, 어떤 것은 애매하게 감춰둬야 했으며, 또 다른 어떤 것은 터무니없이 과장해야 했다.
월북 이후 이동영의 행적을 실감나게 그리려면 6·25 당시 북한의 실정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무엇보다 자료가 변변치 않았다. 월남한 사람도 여럿 만났다. 그러나 전문(傳聞), 그것도 불확실한 기억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 자료에 걸신들리다시피 한 나는 결국 동행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포기했지만 일본 도쿄의 조총련 계통 서점을 방문할 생각까지 했다. 차라리 주인공이 달에 떨어졌더라면 귀찮은 대로 조사만 철저히 하면 달의 자연환경을 그럴싸하게 그릴 수 있을 텐데, 남한에서 북한까지의 정신적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 38만㎞보다 최소한 1만㎞ 더 먼 39만㎞라고 한탄했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 힘들게 꺼내든 이야기, 1984년 두 권으로 이뤄진 장편소설 『영웅시대』의 출간은 내가 당대와 불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80년대 중반 이후 나에게 쏟아진 민중주의 진영의 거센 비판 가운데 상당수가 『영웅시대』를 표적 삼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80년대 후반 운동의 한 전위집단으로부터 내가 반동(反動)으로 규정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시대와 불화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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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 월북 부친의 초상, ‘시대와의 불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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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몰랐던 아버지가 남긴 연좌제
1950년 9월 아버지가 월북했을 때, 나는 생후 2년 3개월에 불과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도 몰랐다. 어머니가 몇장 안 되는 아버지 사진을 모두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공산주의 부역은 우리 가족에게 원죄처럼 씌워졌고, 끊임없이 경찰의 소재 파악에 시달려야 했다. 어머니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꿈이나 이빨이 뭉텅 빠지는 꿈을 꾸면 그날로 이사를 서둘렀다. 어린 나는 일찌감치 뿌리 뽑힌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는 뱀꿈 꾸면 짐 쌌다…‘빨갱이 아버지’가 새긴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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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조국은 나에게 실존이다."
1987년 조총련 출신의 고향 친지를 통해 전해 받은, 북한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는 문학에의 경사(傾斜)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글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았은 듯한, 아버지 편지의 한 구절에서 받은 충격과 감동이 아직도 기억난다. 연좌제의 고통과 극심한 가난, 정착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도는 나날을 물려준 나의 아버지에게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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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아버지 편지에 충격 받았다” 이문열은 왜 작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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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하러 갔다가 졸지에 망제 지내
1999년 8월 7일 작은형과 나는 투먼(圖們)대교 위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두만강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여러 경로를 통해 몇 년째 아버지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루 전날인 6일 옌지(延吉)를 찾은 것은 상봉 주선을 의뢰했던 조선족 브로커 조직 가운데 한 곳으로부터 드디어 “기대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옌지의 숙소에서 받은 브로커의 전화는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다섯 달 전인 3월 22일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내 삶을 무겁게 짓누르던 부하(負荷), 제대로 된 사진조차 본 적 없어 막연한 추상이라고만 말할 뿐이었던 아버지가 결국 추상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졸지에 상제(喪制)가 돼서 망제(望祭)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오라버니 미군 간첩 아니오?” 北 여동생 옥경이는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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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 - 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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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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