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빅테크 에너지 독립에 중동 재건까지…K전력, 기회의 장 열린다
HD현대일렉·효성重 '기회'
트럼프, 데이터센터 전력 자체조달 명령
韓, 빠른 납기·기술 신뢰도 러브콜 기대
국내 전력 업계가 미국발 인공지능(AI) 인프라 혁명과 중동발 재건 모멘텀이라는 전례 없는 두 개의 거대 파도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AI 전력 자급제 정책이 국내 기업의 대규모 수주로 가시화된 데 이어,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로 전후 재건 시장까지 개화가 임박하면서 'K전력 3대장'의 실적 눈높이가 한 단계 더 격상되고 있다.
'포화' 멈춘 자리의 전력망 복구…K전력 3사 수혜 기대9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조건으로 2주간 휴전에 전격 합의하면서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중동 네트워크가 탄탄한 전력 업체들의 '재건 특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향후 종전으로 이어질 경우 미사일 타격 등으로 파괴된 전력 복구가 최우선 과제가 될 수 있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 내 9개국에 걸쳐 최소 40곳 이상의 에너지 시설이 상당한 피해를 봤다고 확인한 바 있다. 발전소는 물론 발전소와 연결된 변전소에서도 초고압 변압기와 차단기의 대규모 교체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에선 중동 지역 전쟁에 따른 실질적 재건 비용이 3~5년에 걸쳐 300~500억달러(약 44조~74조원)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중 에너지 인프라 시설 복구에만 최소 250억달러(약 37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HD현대일렉트릭의 경우 회사 매출의 약 20%가 중동에서 나온다. 특히 '네옴시티' 프로젝트 참여 과정에서 사우디전력청(SEC)과 쌓은 오랜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초고압 변압기 분야에서 수혜가 기대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중동에 생산 기지는 없지만, 현지 기업인 사우디 디젤 이큅먼트(SDE)와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첨단 개폐장치 등 전력망 설비들을 공급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역시 중동 핵심 납품처인 알 파나르를 통해 사우디 전력망 밸류체인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현지에서 변압기는 물론 가스절연개폐장치(GIS) 기술력도 인정받아 파손된 도시 전력망의 핵심인 변전 설비 복구 사업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란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들이 재건 과정에서 기존의 노후화된 전력망을 현대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경우 수혜 규모는 더 커진다. LS일렉트릭의 경우 중동 매출 비중은 미미하지만, 중·저압 배전 시스템에 강점이 있는 만큼 파괴된 공장, 상업 시설, 주거 단지의 전력을 다시 연결하는 데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당장 주목할 건 美…LS일렉, 'AI 자급제' 수혜 1호 등극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종전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적극적인 중동 수주 활동에 제약이 있는 만큼, 당장은 미국 시장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 행정부가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에 주문한 AI 전력 자급자족이 국내 전력기기 업체의 실질적인 수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앞서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아마존, 오라클, xAI 등 7개 빅테크는 AI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전기료가 오르지 않도록 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데이터센터 전력을 외부 전력망이 아닌 자체 건설한 발전소에서 직접 조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표 AI 전력 자급제의 '수혜 1호' 기업은 LS일렉트릭이다. 최근 LS일렉트릭의 자회사 LS파워솔루션(구 KOC전기)은 미국 중부 지역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마이크로 그리드(독립형 전력망) 구축을 위한 약 7026만달러(1066억원) 규모의 345kV급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따냈다. 이는 지난달 초 백악관에서 열린 '요금 납부자 보호 서약' 이후 나온 첫 번째 대형 수주 사례로, 국내 전력 업체들이 미국의 에너지 정책 기조 변화의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음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수주는 미국 전력 시장의 주도권이 공공 유틸리티에서 자금력과 속도전을 갖춘 민간 빅테크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기존에는 주 정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공공 프로젝트 특성상 발주부터 설치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빠른 납기와 기술 신뢰도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빅테크들이 에너지 독립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전력 설비 '직거래 시장'이 열린 셈이다.
나민식 SK증권 연구원은 "빅테크가 직접 발전소 및 전력 인프라를 구비해야 하는 흐름이 가속하면서 전력기기 산업은 유틸리티와 빅테크 설비투자(CAPEX) 사이클에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며 "향후 전력기기 업체들의 매출·수주 환경 개선과 고객층 확장 수혜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빅테크 독자망 구축 속도전…765kV 시장도 노다지특히 이번 수주에서 주목할 점은 납기 일정이다. LS파워솔루션의 변압기 공급 기간은 2027년 4분기부터 2028년 상반기까지로 설정됐다. 이는 빅테크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발맞춰 향후 1~2년 이내에 자체 발전소와 독립 전력망을 대대적으로 갖추려는 타이트한 스케줄을 짜고 있음을 시사한다. 단기간에 대규모 독립 전력망을 깔아야 하는 빅테크 입장에선 신뢰할 수 있는 기술력과 현지 네트워크를 보유한 한국 기업들이 유력한 파트너다.
LS일렉트릭이 경쟁사 대비 빠른 납기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취점을 따냈지만, 다른 국내 전력사들의 희소식도 잇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북미에서 사실상 최고 전압 레벨인 765kV 송전망이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을 위한 '셀링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미국은 송전망의 70% 이상이 25년 이상 된 노후 설비로, AI 데이터센터와 신재생 에너지 연결을 위해 초고압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SK증권에 따르면 현재 북미에서 승인된 765kV 신규 송전망 규모는 약 6360마일(약 1만200㎞)로, 대략 18~30개의 변전소와 200대 내외의 765kV 변압기가 잠재 수요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765kV는 변압기 제품군에서 판매단가와 마진이 가장 높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며 "북미 시장에서 중국 경쟁사들은 신뢰 문제로 낙오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국 현지 생산이 가능한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이 주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765kV 변압기는 기술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아 북미에서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 전 세계에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을 포함해 5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특화 생산을 위해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1850억원 투자에 나선다. 연간 3000억원 상당의 매출 증가가 기대된다. 수익성 높은 765kV 중심으로 이익률이 개선이 지속되면서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5% 늘어난 1조2889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효성중공업 역시 2020년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인수한 테네시 공장에 4400억원을 쏟아부으며 3차에 걸친 추가 증설에 나선 상태다. 지난 2월엔 7881억원 규모의 765kV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발 빠르게 실적 레퍼런스를 쌓아나가고 있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1조4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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