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터뷰 3화] 차마 못 전한 소방 가족의 진심(영상)
“지우야. 아빠가 자랑스러워, 걱정스러워?”
“당연히 자랑스운 게 더 크죠.”
원곡119안전센터 장문수 소방위의 딸 11살 지우양은 당연할 걸 왜 묻냐는 듯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어떨까요. 안성소방서 화재예방과 김미진 소방위의 아들 17살 홍준환군도 “여자 소방관인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지난 4월 23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경기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공장 단지 화재 영상을 이날 출동했던 소방관 5명의 가족들과 함께 시청했습니다. 소방 영웅들의 가족은 그간 가슴 속 깊숙이 꼭꼭 숨겨두었던 진심을 하나 둘 꺼내놓았습니다.
장지우양은 “아빠가 소방관이라고 하면 친구들이 신기해한다”며 “아빠가 불도 끄겠네. 위험하진 않아?”라는 질문 세례를 받는다고 해요. 그런 질문 덕분인지 아빠가 화재 현장에 진입해 직접 불을 꺼야 하는 진압대인데도 걱정보다는 자랑스러운 게 더 크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소방관 자녀인 ‘불수저’들은 소방관인 엄마‧아빠가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베테랑 소방관인 송창원 소방경의 딸인 예비 소방관 다혜(24)씨는 “주변에선 걱정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현장 출동하고 그럴 땐 걱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걱정보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고 했습니다.
올해 입직 21년 차인 송창원 소방경은 신인철 안성소방서 서장과 함께 현장을 총괄하는 지휘부 소속입니다. 물품 지원은 물론 대응단계 발령, 소방인력 진입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시를 내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죠. 다혜씨는 “서장님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하면서 전체적인 파악도 빨리해야 되고 출동한 인원이나 현장 상황 등을 살펴야 되니까 많이 힘들 것 같다”며 “그런 아빠가 이제는 자랑스러운 걸 넘어 존경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들은 자랑스러운 것보다 걱정이 더 크지 않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내 자식이 자랑스러워하니 반려자로서 자랑스러운 게 먼저랍니다. 안성소방서 이창수 소방장의 아내 유진혜(45)씨는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하기 때문에 소방관 아내가 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다”고 했죠. 지휘부인 이 소방장은 청문인권담당관으로 동료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특히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동료들의 유가족을 보살피는 일이 그의 큰 업무 중 하나입니다. “화재 현장에 나가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한데 마음 아픈 소방관 가족들까지 챙겨주는 걸 보면 이런 업무를 하는 소방관도 필요하구나”라는 걸 느낀다는 진혜씨는 “집에서는 업무 얘기를 안 하는 스타일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굉장히 큰일이었던 적이 많았더라. 본인이 그걸 다 이겨냈다는 게 굉장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도기119안전센터 반장 이한빛 소방사의 아내 장예나(31)씨도 자랑스러울 때가 훨씬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아빠가 소방관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는 예나씨는 “소방관 아내라고 하면 저는 당당하지만 남이 봤을 땐 참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습니다. 예나씨는 그런 안타까운 시선조차 자랑스럽다고 해요. 그는 “남편이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켜주는 거니까 더 많이 자랑하고 더 많이 자랑스러워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또 자녀들이 어린이집에서 소방 대피 훈련을 할 때 가장 먼저 나가서 ‘불이야’를 외친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남편도 뿌듯해하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제작진은 소방 영웅 5인의 가족들에게 그동안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영상편지로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엔 다들 “으흐~~”하며 닭살 돋는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막상 카메라가 돌자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19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늘 옆에서 우리 가족 잘 지켜주고 건강하게 자기 일 최선을 다해서 해주는 모습이 항상 고마웠어요. 고마운데 늘 표현을 못 하고…. 앞으로도 건강 생각하면서 자기 일 최선을 다해서 해주기를 바랍니다. 쑥스럽지만 사랑합니다.”
예비 소방관인 송창원 소방경의 딸 다혜씨는 울지 않으려 했는데 마지막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촬영이 끝난 뒤에도 연신 휴지로 눈물을 훔쳤죠. 그는 자신이 소방학교에서 직접 교육을 받아보니 대선배인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게 됐다며 계속 눈물을 보였습니다.
10대 홍준환군과 장지우양의 영상편지는 짧고 굵었습니다. 준환군은 엄마에게 “힘든 일 있으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제가 위로해 드릴게요. 그리고 많이 힘들어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우양은 “아빠 사랑해요. 건강하세요”라며 끝이라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이한빛 소방사의 아내 장예나씨는 남편이 출근하거나 출동할 때마다 아이들들과 신발장 앞에 가서 ‘다녀오세요’ ‘사랑해요’라는 말을 꼭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른 갔다 와’ ‘빨리 와’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고 했죠. 그러면서 예나씨는 “빨리는 오지 못하지만 꼭 와야 되니까”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불수저’들의 꿈도 물어봤습니다. 혹시 아빠의 뒤를 잇는 송다혜씨처럼 소방관을 꿈꾸는 또다른 예비 소방관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홍준환군의 장래희망은 군인이라고 합니다. 소방관보다 더 멋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혹시 소방관을 꿈꿔 본 적은 없냐는 질문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말했죠. 장지우양은 “불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소방관이 되면 오히려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아나운서나 웹툰작가, 무용가 등을 꿈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다혜씨는 “중학교 때부터 소방관이 꿈이었다”며 “소방관은 화재 뿐아니라 코로나19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도 투입된다”고 설명했죠. 그래서 그의 꿈은 “아빠처럼 안전하게 많은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디 그 꿈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히든터뷰를 통해 소방 영웅 가족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웠습니다. ‘늦게라도 꼭 돌아오라’는 아내의 기도, 남편의 안전을 위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또 다른 아내, 엄마·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까지. 소방 영웅 곁엔 희생을 감수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죠. 구조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겐 희망이지만 영웅의 가족에게는 희생입니다. 그 희생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최민석 기자
이하란 기자, 조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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