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원에게 갑질 당했지만 못된 생각은 반성합니다

김아영 2024. 9. 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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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 일을 평가한 내 오만과 위선을 깨준 편의점 계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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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최근에 단골 편의점에서 벗어나 일부러 여러 편의점을 다니고 있다. 요리사가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먹어봐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여러 계산원을 만나야 나도 좋은 계산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내 주변만 하더라도 정말 다양한 계산원이 있었고 손님의 시선에서 보니 각자 장단점이 보였다.

누군가의 장점은 삶 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빚어진 것이라 쉽사리 따라하기 힘들지만 단점은 다르다. 단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지 한 마디도 안 하는 알바생이 참 흔하다. 말을 하더라도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에 짜증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며 계산하는 동작에는 귀찮음이 한가득 묻어난다. 같은 계산원으로서 그를 이해해 보려고 해도 손님으로서 불편한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내 성격은 소심과 세심의 중간지대에 있어서 누군가 기분이 나빠 보이면 괜히 눈치를 본다. 가격표가 없는 상품이 얼만지 물어보는 것도 미안해서 망설이다가 포기했고 멤버십 바코드를 보여주려고 하는데 앱이 잘 실행되지 않아 그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굉장히 큰 실례를 범하는 것 같았다.

편의점을 나오고 나서야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쩔쩔맸지?' 싶었다. 이 정도는 약과였다. 이 주 전에는 계산원의 본분을 다시금 되돌아볼 정도로 잊지 못할 반면교사를 만났다.

중씰한 계산원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편의점에서는 달마다 행사 상품이 바뀌는데 한 편의점 브랜드에서 내가 좋아하는 녹차 음료를 1+1 행사로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이달 안에 최대한 많이 사서 증정품을 앱에 보관한 뒤 행사가 끝난 다음 하나씩 꺼내 먹을 계획이었다.

문제의 편의점에 들어간 뒤, 나는 다른 상품들과 녹차 음료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고 앱에서 생성된 큐알 코드를 제시했다.

"증정품은 앱에 보관해 주세요."

그러자 직원은 귀찮은 손님을 만났다는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걸 할 줄 몰라요. 그냥 휴대전화 번호 눌러 주세요."
 편의점마다 각종 혜택을 앞세워 자사 앱 사용을 권장하는 문구를 볼 수 있다.
ⓒ 김아영
나도 해당 편의점 브랜드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앱 결제와 관련하여 제대로 교육 한 번 못 받아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번호를 입력했다. 계산이 끝나고 앱을 확인해 보는데 계속 새 쿠폰이 생기지 않았다. 보관 일시와 시각을 일일이 확인해봤지만 이전에 다른 점포에서 사서 보관 중인 녹차 3병뿐이었다. 해당 상품이 앱에 보관되었다는 문자까지 왔는데도 쿠폰 개수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직원은 다 들리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어휴, 그러게 왜 있는 걸 안 쓰고 헷갈리게……."

본인이 미숙한 걸 손님 탓으로 돌리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몇 개를 사서 보관하든 그건 제 자유죠"라고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아니"까지만 말하고 헛웃음으로 대신했다. 여기서 내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불필요한 말싸움만 펼쳐질 뿐이라고 생각했고 최대한 차분하게 대처하자고 다짐했다.

어쨌든 직원은 다시 포스기를 확인했고 영수증에 보관되었다고 나와 있으니까 자기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말투에는 가시가 돋았고 날 보는 눈빛에는 짜증이 한가득 실렸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본사에 연락해보라는 무책임한 말만 돌아왔다.

가까운 거리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일단 매장을 나왔는데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편의점 본사에 1:1 문의를 남겼지만 곧바로 대답을 받기 어려웠고 고민하다 다시 그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그냥 두 병 다 가져갈 테니까 반품 처리하고 다시 결제해주세요."

계산원은 왜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느냐는 얼굴로 "저는 잘 모른다니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거슬렸던 건 미숙한 일솜씨가 아니라 자신의 미숙함을 무기로 삼는 태도였다. 자신의 부족함이 손님에게 불편을 초래하는데도 계산원은 형식적인 사과 한 마디 할 줄 몰랐다.

나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반품은 할 줄 아시죠"라고 끝을 내려 물었다. 그제야 직원은 반품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영수증이 아니라 다른 손님 영수증을 반품 처리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여지없이 이번에도 구시렁거리며 나를 원망했다.
 좋아하는 상품이 1+1 행사 중이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 김아영
그렇게 이것저것 버튼을 한참 누르다 하는 말이 "이거 다시 계산하려면 가져가셨던 거 다 가져오셔야 해요. 그래야 바코드를 찍죠"였다. 내가 알기로 반품을 진행하면 해당 상품이 모니터에 등록된 상태로 되돌아간다. 상품을 변경한다든가 제외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반품 후 재결제 하는 상황이 흔하기 때문에 편의상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반박하기도 싫어서 "어차피 매장에 있는 상품이니까 그대로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대답했다.

역시나 반품을 하니 화면에 내가 가져간 품목이 그대로 떴다. 계산원은 이 점과 관련하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다 또 녹차 음료가 1+1 적용이 안 됐다고 뭔가 이상하다고 투덜거렸다. 알고 보니 녹차 수량을 2가 아니라 3으로 잘못 입력해서 생긴 문제였다.

본인의 실수를 알아채고 나서도 계산원은 나에게 성질을 부린 자신의 행동에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계산원의 갑질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손님 갑질만 겪었지 계산원의 갑질은 난생처음이었다.

"일단 녹차를 여기로 가져오세요."

어차피 상품이 등록된 상태라 새로 바코드를 찍을 필요가 없는데 계산원은 굳이 이렇게 지시했다. 나는 계산을 확실히 마무리하고 가져가겠다고 했다.

"아니요, 지금 가져오시라고요."

직원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전에 없이 단호한 말투로 명령했다. 이제껏 찡찡거리는 말투만 쓰다가 돌변한 태도에 기가 막혔지만 칼자루는 계산원이 쥐고 있는 걸 손님으로서 뭘 어쩌랴. 시키는 대로 녹차 음료를 꺼내올 수밖에.

결제를 마친 직원은 "됐죠?"라고 따지듯 말하더니 계산대를 나와 상품 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면서도 끝내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매장을 나섰다. 저 계산원은 도대체 왜 자기 미숙함에 이렇게 떳떳한가 의문이 들 뿐이었다. "죄송한데 제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이 한 마디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계산원의 태도가 두고두고 씁쓸했다.

여기서 양심 고백을 하자면 이날 나는 못된 생각을 하나 했다. '역시 나이 드신 분들은 어쩔 수 없구나'. 그렇다. 그 계산원은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이고 살갗의 탄력이 떨어진 걸 감추기 힘든 중씰한 계산원이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위험하다는 데 백 번 동의하지만 이번 일로 나는 계산대에 누가 서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좀 연세가 있는 분이 계시면 앱의 편리한 기능을 이용하기보다 단순 계산만 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내 오만과 위선을 깨준 계산원
 요즘 편의점에 가면 청년보다 시니어 계산원을 더 자주 만난다.
ⓒ 김아영
불상사를 겪은 이후로도 행사 상품을 저장하는 나의 행보는 계속되었다. 일부러 재고 조회까지 해서 해당 매장을 방문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번 달엔 말린 고구마바에 꽂혀서 해당 상품이 있는 편의점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한 편의점을 방문했는데 아뿔싸, 진열된 상품이 하나밖에 없었다. 이럴 땐 다른 선택 없이 보관 쿠폰을 발급 받아야 했다. 그러나 계산대에 서 있는 분은 영 믿음이 가지 않는 40~50대 직원 분. 그냥 포기하고 가자니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아 아까웠다.

나는 똑같은 불상사를 또 겪을까 걱정하면서도 계산대로 향했다. 마침 계산원은 다른 손님의 상품을 계산하고 있었다. 계산원의 몸짓과 표정을 훔쳐보며 경력을 가늠해봤지만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이게 행사 상품인데 진열대에 하나밖에 없으니 증정품은 앱에 보관해 주시라고 했다. 그러자 계산원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날 보며 이렇게 물었다.

"손님, 혹시 다음에도 저희 편의점에서 사 가실 건가요?"

아, 역시나. 앱 사용법을 모르니까 그냥 다음에 와서 이름을 대고 가져가라는 거구나 지레 짐작했다. 나는 맞다, 아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러자 계산원의 입에서 뜻밖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게 쿠폰으로 보관하면 유효기간이 짧아서 못 쓰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시더라고요.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두 개 가져가는 걸로 찍어 놓고 저희가 영수증을 보관해 드릴게요. 그럼 원하실 때 편하게 찾아가시면 돼요."

그 순간 나의 자만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계산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산원의 말대로 거기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영수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아,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

나는 영수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시름에 잠겼다. 띄엄띄엄 십 년 경력을 채우면 뭐하나. 눈앞의 계산원처럼 진심으로 손님을 대한 시간만 따지면 일 년도 채 안 될 것을. 게다가 경험이 부족한 계산원과 비교하며 '적어도 나는 저렇지는 않잖아' 하고 자위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제가 언제 여기 또 올지 잘 모르겠어서…."

확신이 없는 내 대답을 듣고 계산원은 망설임 없이 "그럼 쿠폰으로 넣어 드릴게요" 친절하게 응대하고 지체 없이 계산을 마쳤다. 계산원이 하찮은 직업이라고 무시하고 하대하는 손님들을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게 바라봤던가. 그러면서 정작 내가 편견에 갇혀 나이로 계산원을 평가하다니 오래 반성할 일이었다. 나는 내 오만과 위선을 부수어 준 그 계산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분이 얼마나 진심으로 자기 일을 대하는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돈, 명예, 지위로 직업의 서열을 나누는 게 현실일지라도 역시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히 임할 때 가장 빛나는 법이다.

계산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 업신여기는 직업이면 어떠랴. 내가 볼 때 계산원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직업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 속 행복을 전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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