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살고 싶어서 지역으로? 1년 못 버틸 겁니다"
소셜디자이너는 생활 속 아이디어로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는 사람, 혼자 고민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하고 궁리하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희망제작소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소셜디자이너들을 만났습니다. <기자말>
[희망제작소]
▲ 서동선 협동조합 팜앤디 대표 |
ⓒ 희망제작소 |
그리고 참신한 기획력과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사람이 북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농업·농촌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대학 동기 3명과 의기투합해 외가가 있는 전남 곡성에 둥지를 튼 그는 '협동조합 팜앤디'를 설립하고 '인구이동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서동선 대표를 지난 10월 21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닫히고 고립된 '로컬'을 다양하게 연결하다
- 팜앤디의 첫 사업으로 '인구이동 프로젝트'를 구상한 이유는 뭔가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만들기 사업과도 관련이 있나요?
"저희는 팜앤디를 '로컬벤처'라고 정의해요. 로컬이라는 말이 폭넓게 쓰이는데, 저희는 소멸위기에 처한 농촌, 한계점이 분명한 곳을 로컬이라 지칭했습니다. 닫히고 고립된 로컬을 다양하게 연결해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저희의 미션으로 봤어요.
곡성에 처음 왔을 땐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며 마을 주민들과 저희의 접점을 찾았고, 다음엔 더 많은 사람들과 곡성을 연결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곡성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머무는 곳으로 만들어야 그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다양한 연결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인구이동'을 첫 프로젝트로 삼은 거죠. 다만, 이건 저희가 본격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한 사전실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이 아니라 한시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했어요.
▲ 지역주민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활동하는 '청춘작당' 참가자들 |
ⓒ 팜앤디 |
-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마을만들기 사업을 위해 '청춘작당'을 기획한 게 아니라 자생적 프로젝트가 정부지원 사업으로 연결된 거군요. '청춘작당'을 통해 3년간 26명의 청년들이 곡성에 이주했고, '청촌'엔 10명의 청년들이 입주했다고 들었어요. '청춘작당' 홈커밍데이엔 70여 명이나 찾아와 곡성의 청년 관계인구 확산 측면에서도 성과가 컸고요. 이렇게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계속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저희는 곡성이 현재로선 더 이상의 이주청년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어요. 지역살이에 관심 있는 청년이든 귀농귀촌을 결심한 중장년이든, 삶의 터전을 옮기려면 살 집과 할 일 그리고 친구가 필요해요. 그래서 저희는 '청춘작당'에 참여한 청년들 가운데 곡성 이주를 원하는 청년들을 위해 곡성군과 협력해 셰어하우스 등의 주거지를 마련해주고 창업과 취업을 지원했어요.
저희가 지역에 어떤 기업이 있고 일자리가 있는지 샅샅이 조사했는데, 일거리는 이것 저것 있어도 좋은 일자리는 드물었어요. 급여수준만이 문제가 아니라 직원복지, 특히 사내문화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저희는 지난 3년간 이주한 26명이 최대치라고 봤고요, 자연스럽게 팜앤디의 다음 미션을 지역에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거리를 많이 만드는 것으로 정하고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에요."
다섯 명이 한 집에서 100일간 살면... 어떤 변화가?
-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로 인해 청년인구의 지역 이주와 관계인구 형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요. '청춘작당'과 '청촌'의 성공비결을 공유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정확한 타깃 마케팅을 했어요. 전국의 청년인구가 300만이라고 하는데 로컬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청년들은 소수에 불과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청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소수의 청년들을 찾아내서 '곡성 100일 살기 프로그램' 참여를 권하는 거죠.
2019년 1기 모집 때 30명 정원에 270명이 지원했어요. 로컬에 관심 있는 청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다 보니 '지역살이를 체험해볼 사람'을 폭넓게 공략한 '청춘작당과 달리 '청촌'은 '당장 곡성에 와서 살 사람'으로 대상을 좁혀 마케팅했는데 40여 명이 지원해서 경쟁이 치열했어요(웃음). 이런 마케팅 경험과 데이터베이스가 팜앤디의 주요 자산이기도 해요.
다음엔 참가자들이 지역 내에서 다층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돕는 건데요. 청춘작당 참가자들은 5명씩 한 집에 살며 100일간 지내요. 첫 20일은 자신을 돌아보고 지역을 알아가는 시간이고요. 다음 50일 동안은 지역의 현안이나 기업과 농가, 상가 등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별로 '퀘스트 깨기'를 해요.
단계별 퀘스트를 거쳐 최종 솔루션이 도출되면, 어떤 팀은 작은 축제를 만들고 어떤 팀은 리브랜딩을 하고, 라이브커머스를 하거나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관련 전시에 부스를 만들어 판매한 팀도 있어요. 그렇게 지역 주민과 밀착한 활동을 50일간 하면 자신만의 지역 네트워크가 생기겠죠. 나머지 30일은 그간의 활동을 정리해 지역 주민과 지인들을 초대해서 전시회를 열고 후속조사를 합니다.
팜앤디는 이 모든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지역살이의 필수요소인 갈등을 해소하고 관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요. 또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찾고 취향과 취미에 따라 다양한 연결점을 만들어 '다층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이끕니다. 이런 커뮤니티 운영 노하우 역시 팜앤디의 중요한 역량이자 자산이죠.
▲ 팜앤디가 제작 발행 중인 매거진 '농담'. |
ⓒ 팜앤디 |
- 다음 단계로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요.
"곡성에 팜앤디가 생기면서 17명의 일자리가 생겼어요. 창업이 활발해지면 일자리가 늘겠지만,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으니 토양이 필요해요. 그래서 여러 기업이 지역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시너지를 내는 모델을 구상했어요.
▲ 팜앤디의 워케이션 서비스 '러스틱하우스'. |
ⓒ 팜앤디 |
앞으로 규모를 확대해서 '워크 빌리지', 즉 기업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몇몇 직원이 휴가 겸 일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들이 돌아가며 상주하는 공간인 거죠. 입주기업끼리는 경쟁도 하겠지만 상생하고 협력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마을 내에서 인적 교류와 창업이 이뤄진다면 더 좋겠죠.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들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를 잘 짜보려고요."
- 지역살이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제가 사는 마을에선 지난 5년간 열일곱 분이 돌아가셨어요. 자연스런 일이죠. 그런데 이 자연스런 상황이 계속되면 마을이 사라져요. 자연을 거스르려면 엄청나게 큰,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청년들은 본인이 꿈꾸거나 지향하는 대로 살고 싶어서 지역을 선택하는 걸 텐데, 그 지역에도 도시 못지않은 또 다른 문제들이 있어요. 그러니 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나만의 시각으로 나만의 방법으로 풀어내서 내가 살고 싶은 곳,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해요. 학벌이나 연고는 없어도 돼요.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남들이야 어떻게 살든 혼자 조용히 살고 싶어서 지역살이를 선택한 사람은, 장담컨대 1년을 못 버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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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뷰 및 정리=희망제작소 미디어팀.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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