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아들이 남긴 아찔한 왕궁
지난 2월 3일(월)부터 10일(월)까지 8일간 스리랑카를 여행했다. 여행의 주제는 불교 문화유산 답사다. 스리랑카는 소승불교로 알려진 상좌부불교의 종주국이다. 그것은 기원전 3세기 초기 불교가 전해졌고, 그러한 불교의 전통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불교유산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미힌탈레, 아누라다푸라, 시기리야, 폴론나루와, 담불라, 알루비하라, 칸디 등을 답사했다. 답사하며 본 스리랑카의 불교 문화유산을 15회 정도 자세히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산과 바다에서 만난 자연유산도 다룰 것이다. <기자말>
[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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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기리야 왕궁 |
| ⓒ 이상기 |
시기리야는 18세기 들어 칸디 왕국의 외곽 군사 주둔지가 되었고, 19세기 영국인들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다. 1894년에는 영국학자 벨(Bell)에 의해 고고학적인 발굴과 조사가 이루어졌고, 1930년대 스리랑카 고고학자 파라나비트나(Paranavithna)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1982년부터는 중앙문화기금(Central Cultural Fund)을 중심으로 시기리야에 대한 연구, 보존, 유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기리야가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에 불교가 들어오면서다. 바위 서쪽과 북쪽에 석굴사원의 흔적과 이들이 쓴 바위 글씨가 남아 있다. 아사나(Asana) 동굴과 코브라 동굴에 돌로 된 의자와 벽화의 흔적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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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샤파 왕의 옥좌 |
| ⓒ 이상기 |
그런데 미가라가 부부싸움을 하다 아내를 때리는 일이 발생했고, 이를 안 다투세나가 화가 나서 누이를 화형시켜 버렸다. 이에 앙심을 품은 미가라는 카샤파에게 접근해 왕권을 뺏도록 부추겼다. 카샤파는 미가라의 도움으로 아버지 왕을 감옥에 가두고 왕이 되었다.
이때 작은 아들은 남인도로 도망을 간다. 미가라는 다투세나가 작은 아들을 위해 보물을 숨겨놨다고 카샤파에게 고자질을 한다. 이에 카샤파는 아버지에게 보물을 숨긴 곳을 추궁한다. 다투세나는 처음에 숨겨둔 보물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이 계속해서 추궁하자 그를 데리고 칼라베와(Kalavewa) 저수지로 간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유일한 보물이 이 저수지라고 말한다. 이에 화가 난 카샤파는 아버지를 벽 속에 가둬 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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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파른 절벽의 사자바위 |
| ⓒ 이상기 |
나머지 공간은 행정과 도시 기능이 가능하도록 관공서와 상공업지역을 만든다. 이를 통해 자연물인 바위를 중심으로 인위적인 도로와 수로가 대칭을 이루도록 도시계획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시기리야는 왕성 주변의 자연과 궁궐의 정원 그리고 건물이 어우러진 특별한 왕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시기리야 왕성은 일반적으로 서쪽에서 접근하게 되어 있다. 매표소와 박물관을 지나면 외부 성곽을 만난다. 이곳을 지나면 성곽을 따라 물이 흐르는 해자가 있다. 해자를 지나면 중간 성곽이 있고 다시 해자가 둘러져 있다. 해자 안으로 내부 성곽이 있고, 이곳으로부터 궁성의 내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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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기리야 왕궁 벽화실의 여인들 |
| ⓒ 이상기 |
벽화는 프레스코 양식으로 석회 위에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들이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500명 정도의 여인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중 20명 정도만 남아 있다. 이들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카샤파 왕의 왕비와 후궁 그리고 궁녀라는 주장이 가장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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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의 벽에 새겨진 글씨 |
| ⓒ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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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의 벽: 갈색 벽 안쪽으로 거울이 있었다고 한다. |
| ⓒ 이상기 |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움직임 없는 눈으로 우릴 바라본다.
예쁜 여인들!
산록 바위벽에 선 채로
수선화처럼 푸른 눈이 광채를 내뿜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이빨에서는 윤이 난다.
그러니, 너의 마음을 아주 부드럽게 말로 표현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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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기리야 왕궁 오르는 길 |
| ⓒ 이상기 |
테라스에서 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정면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는데, 지금은 바위와 조각이 훼손되어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여기서 돌계단과 철제 사다리를 타고 100m쯤 올라가면 바위 정상에 있는 암벽 왕궁에 이르게 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북쪽 밀림 사이에 우뚝 선 피두랑갈라(Pidurangala) 바위산을 볼 수 있다.
암벽 위 왕궁은 북쪽의 궁궐, 남쪽의 정원과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경사져 있고, 궁궐, 정원, 연못을 연결하는 길이 잘 나 있다. 전체 면적은 1.5ha쯤 된다. 지금도 궁궐 외벽과 건물의 기단 그리고 벽체가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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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못에 비친 왕궁 |
| ⓒ 이상기 |
이곳은 귀족과 승려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사나(Asana) 동굴은 시기리아 왕 이전부터 승려들의 수도처였을 것이다. 코브라 동굴에는 벽화가 남아 있는데, 시기리야 왕궁이 지어질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덧붙이는 글 | 아누라다푸라 시대 사자바위 위에 궁궐을 건설한 왕이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카샤파다. 5세기 말 그가 만든 시기리야 왕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역사와 건축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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