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유튜버의 난(亂), 유발 하라리의 경고

조회 132025. 1. 20.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렇게도 자기 파괴적일까

정보에 이해관계 결합, 분노·선정주의 확산시켜

플랫폼 ‘자정 장치’ 중요…민주주의 생존 달려

극단 유튜버 떼돈, 여론조작·가짜뉴스 규제해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 가운데 하나인 유럽의 마녀사냥은 지난 14세기부터 시작돼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끝납니다. 희생자의 압도적 다수는 여성이었습니다.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는 1만명 조금 넘는 인구 가운데 1000명 이상이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됐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악마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죽어야 했습니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도미니크수도회 성직자 두 사람이 ‘마녀의 망치’라는 대단히 선정적인 책을 내면서 본격화됐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이 이를 더 부추겼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마녀사냥의 촉진제가 된 것입니다. ‘마녀의 망치’라는 책은 당시 20쇄 이상 발간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인쇄업자들은 이런 선정적인 책과 아류작, 심지어 싸구려 한두 장짜리 팸플릿을 찍어내 큰돈을 벌었습니다.

‘시대의 석학’ 유발 하라리는 신작 ‘넥서스’에서 마녀사냥을 주도하고 묵인한 정치권력과 교회, 인쇄업자들의 악마적 공생을 예로 들면서 인쇄술럼 정보흐름의 장벽을 없앤다고 진실된 정보가 확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현실에서는 정보와 기술 발달에 특정 집단의 돈과 이해관계가 결합하면 분노와 선정주의를 확산시키고, 거짓과 환상의 유해한 정보생태계를 강화할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라리는 '우리가 진정 지혜로운 인간이라면 왜 이렇게 자기파괴적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질문 중 하나도 이것입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찰총장을 지내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우리 대통령은 왜 이렇게도 자기파괴적이고, 국가와 국민경제까지 파괴하는 계엄령을 선포했을까'라는 의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로 탄핵당하고 체포되고 드디어 구속까지 됐으니 자기파괴적임이 분명합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발표된 대국민담화나 편지글, 헌법재판소 제출 자료 등에서 일관되게 부정선거, 특히 중국 개입에 의한 부정선거를 주장합니다. 윤 대통령 측의 거듭된 이의제기에 헌법재판소도 중국인 개입 부정선거 여부를 증거로 다시 한 번 확인하기로 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로 윤 대통령이 지난해 직접 임명한 사람입니다. 임명 당시 윤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선관위 사무총장으로서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기도 했던 김 사무총장조차 지금의 시스템은 설령 부정선거가 있더라도 사후에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윤 대통령은 끊임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하지만 본인도 현재의 선거 시스템에서 당선됐습니다. 부정선거 주장은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당시 진보 유튜버 김어준이 처음 제기했습니다. 보수진영이 크게 패배한 2020년 총선 이후에는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중국인 개입설이 퍼졌으며 드디어 윤 대통령까지 여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닙니다.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교수모임’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100명이 넘는 전현직 대학교수들 모임으로 저명대학 교수들도 많습니다. 자유교수모임의 주장도 중국 공산당의 개입에 따른 대한민국 선거 부정과 여론조작, 친중국 정당인 민주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 등입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긴급체포, 구속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가 모두 중국과 야당의 음모, 여기에 언론노조가 장악한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매체를 포함한 제도권 언론의 가짜뉴스가 가세하면서 일어났다는 게 윤 대통령을 비롯한 우파의 입장입니다.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되기 직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조선, 중앙, 동아 같은 “레거시 미디어를 보지 말고 유튜브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공포와 음모가 한국의 정치위기를 부추긴다’는 최근 기사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배후에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세력이 있다면 윤 대통령에게는 고령층과 개신교 신자들로 이뤄진 ‘태극기 부대’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태극기 부대의 총수는 당연히 극우 유튜버 전광훈 목사입니다. 김재원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2023년 5월 전 목사가 우파진영을 천하통일했다고 말했다가 당에서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너무도 정확한 진단입니다.

전 목사는 이번 비상계엄 선언과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보수진영을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입니다. 좌파 유튜버 김어준이 진보진영을 이끄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치이념만 놓고 보면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사람은 보수에서는 ‘광화문 대통령’으로 불리는 전광훈이고 진보에서는 김어준입니다. 김어준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그를 체포 대상에 포함하면서 하루아침에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윤석열의 나라도 아니고,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의 나라도 아닙니다. 전광훈의 나라이고, 김어준의 나라입니다. 여야의 거물 정치인들이 그들 앞에 가서 하는 행태만 봐도 압니다. 윤 대통령 체포 당시 김어준의 유튜브 ‘뉴스공장’ 시청률이 MBC, JTBC 등을 크게 앞선 것으로도 확인됩니다.

마녀사냥이 유럽을 휩쓸던 시절 여기에 편승해 인쇄업자들이 자극적인 책과 팸플릿을 발행해 큰돈을 번 것처럼, 지금 극우·극좌 유튜버들이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떼돈을 법니다. 유튜브 분석 사이트 자료 등을 보면 최근의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곳은 하나같이 정치 관련 유튜브이고, 특히 극단적 발언을 쏟아내는 곳일수록 구독과 후원이 몰립니다. 일부 유튜버들은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 같은 폭력사태까지 사주합니다.

#마녀사냥 시절 유럽 인쇄업자들과 같은 짓을 하는 곳은 유튜브와 정치 유튜버만이 아닙니다. 다른 글로벌 소셜미디어(SNS)인 틱톡과 페이스북, 엑스(트위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의 네이버나 카카오도 오십보 백보입니다. 플랫폼 기업은 거의 똑같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마녀사냥 시절의 한두 장짜리 팸플릿 같은 쇼트폼 콘텐츠가 독자들을 중독시켜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듭니다.

우리는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교수들이, 최고의 권력자로서 뭐든 할 수 있는 대통령이 어떻게 극단적 유튜버에 중독될까'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대우증권 사장 출신의 홍성국 전 의원은 NYT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은 알고리즘 중독이 초래한 세계 최초의 내란”이라고 지적했지만 대부분 반신반의합니다. 지금과 같은 첨단 인공지능(AI) 시대에, 초 단위로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는 시절에 그게 가능하냐는 의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하라리가 ‘넥서스’에서 내놓습니다.

하라리는 가장 지혜롭다는 호모 사피엔스(인간)가 왜 이토록 자기파괴적일까라는 의문에 대해 '그 원인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정보 네트워크에 있다'고 단언합니다. 인류가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해내면서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됐지만, 지혜를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보시장에 대해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면 저절로 진실과 질서가 생긴다고 믿지만 그것은 ‘정보에 대한 순진한 생각’이라고 하라리는 반박합니다. 하라리는 ‘표현의 자유’ 또는 ‘정보의 자유’는 허구이며, 가짜뉴스를 생성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규제하고 이들에 대해 세금까지 물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튜브든 뭐든 네트워크가 강해질수록 ‘자정장치’가 중요하며. 알고리즘이 민주적인 대화를 가로막고 여론을 조작한다면 당연히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 정부라면 당연히 정보시장을 규제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생존 자체가 이런 규제에 달려 있다'고 강조합니다.

12·3 비상계엄 선언과 대통령 탄핵·구속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에 따라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나 대통령 권한 축소 등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빼먹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정보시장 규제, 여론 조작과 가짜뉴스 등에 대한 규제입니다. 대한민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고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한 뉴스 소비도 세계 최고입니다. 그만큼 디지털 중독, 알고리즘 중독도 심합니다. 게다가 태생적으로 우리는 쏠림이 심한 편입니다. 이런 여러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됐습니다.

앞으로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위기는 반복될 것입니다. 지금 윤 대통령과 태극기 부대가 서 있는 자리에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서 있을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의 문’을 연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정보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면 저절로 질서가 생긴다고 믿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 구속 사태는 우리에게 정보시장 운영과 관리통제라는 측면에서도 큰 과제를 던집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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