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교사의 마음은 차갑게 식는다 [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편집자말>
[류승연 기자]
▲ 등교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학부모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입니다. '직접 소통'이 지양되고 있는 일반 교육과 달리, 특수교육은 학생의 장애 특성으로 인해 교사와 학부모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학부모 간 감정이 얽히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모두의 1년이 힘들어집니다.
소통만 잘 돼도 서로를 오해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은 불통에서부터 생겨나기 마련이라서요. 그래서 오늘은 특수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소통, 소통, 소통이 부족해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 월례회의를 합니다. 갈 때마다 늘 빠지지 않고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발 선생님들이 더 많은 소통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하는 것입니다.
특수학교이기에 매주 교사들은 E알리미나 하이톡 등을 통해 한 주간의 주간학습계획서를 학부모에게 보냅니다. 그런데도 학부모들은 왜 그토록 소통에 목말라할까요. 주간학습계획서는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이번 주 국어 계획안이 '친척을 부르는 호칭'이고, 수학 계획안이 '두 자릿수 빼기'이고, 과학 계획안이 '그램과 킬로그램'입니다. 선생님이 칠판 앞에서 어떤 주제를 교육하는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발달장애인이거든요. 학생 별 장애 정도가 천차만별로 다른.
친척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 수업받을 때 무발화인 내 아이는 어떤 형식으로 그 수업에 참여했는지가 궁금하고, 두 자릿수 빼기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숫자를 5까지도 셀 줄 모르는 아이는 뭘 하고 있었는지가 궁금하고, 그램과 킬로그램을 공부할 때 '무게'의 의미조차도 모르는 아이가 어떻게 그 개념을 이해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즉, 주간학습계획서 등을 통해 학교생활에 대한 교육정보는 전달받지만, 받은 정보 안에서 내 아이가 어떤 학교생활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때 학부모는 교사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문제 있을 때만 연락
자녀가 발달장애인이라는 건 아이를 통해선 학교생활을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교사가 말해주지 않으면 학부모는 자녀의 12년 학교생활에 대해 '깜깜한 블랙홀'처럼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지나야 한다는 뜻이에요. 심지어 친구 이름 조차도요.
사실 비장애 일반 교육처럼 특수교육도 교사와의 소통이 없으면 편할 듯합니다. 자녀가 학교생활만 잘한다면 교사와 소통 없이 지내는 편이 더 좋아요. 사실 선생님과 학부모는 어려운 관계잖아요. 예도 갖춰야 하고요. 문제는 자녀가 발달장애인이기에, 소통 없이 지낼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겁니다.
자녀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마다 연락이 와요. 오늘 누구와 갈등 상황이 일어났다. 무슨 시간에 분노발작(텐트럼)이 일어나서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는 등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학부모는 연락을 받습니다.
평소 소통이 없었다면 이럴 때라도 교사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원인을 함께 찾고, 해결 방안에 대해 같이 고민하며, 학교와 가정에서 같은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 나가면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많은 교사가 학부모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학생의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애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정작 소통은 없는 상태로 '문제행동'에 대한 통보와 교과서 진도 여부만 전달받습니다. 그런데 자녀는 학교생활에서 자꾸만 힘든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그러니 "제발 소통 좀 해주세요~"라며 교사들에게 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인 나랑 친하게 지내자고 소통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내 친구랑 친하게 지내야지 왜 교사와 친하게 지낸답니까.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원인을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해결 방안을 찾고 싶어서 그럽니다. 내 아이가 겪는 어려움이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게 미안해서 그럽니다. 뭘 알아야 무엇이라도 하지 말입니다.
교사는 교육전문가지요. 학부모는 자기 자녀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의 발달장애 전문가입니다. 해당 학생에 대한 발달장애 전문가와 특수교육 전문가가 협력적 관계를 구성할 수만 있다면 당사자의 학교생활은 원만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받은 트라우마가 큰 경우도 존재한다. |
ⓒ flicker |
학부모와의 소통에 차단벽을 쳐버린 교사도 분명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는 건 그만큼 해당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받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간에 드러난 각종 사례를 봐도 알겠지만 소통 중인 교사에게 학부모가 선을 넘는 경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부분은 학부모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학부모 입장에서는 갑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건넨 말이 교사 입장에서는 선을 넘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안다"는 말처럼 비슷한 상황이 누적될 때 그런 듯합니다.
"선생님, 오늘 날씨가 더웠는데 왜 사진 속에서 잠바를 입고 있었을까요?" "아이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철수 사진은 11장이던데 영희 사진은 7장밖에 없더라고요."
잠바를 미처 벗기지 못한 건 혼자서 6명을 동시에 보는 와중에 누군가 이탈 행동을 해서 단속하려 갔을 수도 있고,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하루 종일 웃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교사가 학생들 사진을 찍는 동안 정작 학생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궁금해할 부모들을 위해 교사가 일부러 신경 써 사진을 찍는 상황 속에서 누가 몇 장이 찍혔는지 계산하고 있을 여유란 없습니다.
아무리 예의를 갖췄다 해도 이런 식의 얘길 들을 때마다 교사들의 마음은 차갑게 식는다고 합니다. 자신들 '행동에 대한 지적'이 들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 마음의 문을 닫고 '불통이 최선'이라 여기는 세상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알림장 역할과 기능
알림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학생 나이가 어릴수록, 그러니까 저학년일수록 교사로부터 알림장을 받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욕구를 봅니다. 아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그랬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그러길 바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합니다. 만약 매일의 알림장을 써 가정에 보내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는 알림장을 쓰기 위해 그 시간 동안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을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요. 알림장을 쓸 수 있는 교과 시간이 매일 오후에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학부모들이 알림장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유아 시절에 그랬듯 학령기에도 그날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알길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욕심입니다. 요즘은 알림장 대신 하이톡이나 클래스팅, 밴드 등의 소통앱을 활용하지만 수단이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부모가 집에서의 일을 정성껏 기록해 매일 학교에 알림장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정성 담긴 집에서의 알림장을 받은 교사는 그에 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알림장을 다시 되돌려 보내곤 한다는데요.
그렇게 티키타카 주고받는 개인 알림장에 부모는 기뻐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교사는 6명 학생 중 1명의 학생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두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알림장을 처리해야 하니까요. 즉, 부모로 인해 학생을 차별하는 교사가 양산됩니다. 그런 교사가 탄생하도록 부모가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이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학생을 차별하는 게 익숙해지는 교사가 양산되면 다음 해 다른 교사에게선 내 아이가 차별받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요. 교사는 내 아이만을 위한 교사가 아닌 반 구성원 모두를 위한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곧 내 아이를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 서울 서초구 서울나래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을 환영하고 있다. 2019.9.2. |
ⓒ 연합뉴스 |
아들은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됩니다. 돌이켜보면 아들의 성장이 눈부셨던 해에는 어김없이 교사와의 소통이 원활했어요. 반면 아들이 퇴행하고 문제행동이 극에 달했던 해에는 어김없이 담임과의 소통이 불통이었던 해였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소통에 있어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아요. 중요한 건 양이 아닌 질입니다. 소통의 내용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학기 초 개별화교육회의에서 나눴던 여러 얘기가 잘 시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바뀌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대화 나누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새롭게 등장한 '어떤 행동'이 있을 때면 어떤 식의 접근을 해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교사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수시로 이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갑질 학부모만 있는 건 아닌 것처럼 소통 잘하는 교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소통 내용과 관련해선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에 대해 궁금한 것을 가감 없이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눈부시게 성장했던 여러 해에는 늘 교사가 아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어김없이요.
하지만 아들의 문제행동이 극에 달았던 여러 해에는 1년 동안 한 번도 교사가 아들에 대해 질문한 적이 없더라고요. 어김없이요.
발달장애가 있는 특수교육대상자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면 그건 당사자 개인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교사와 당사자는 물론 반 구성원 전체가 힘든 상황에 놓이고 학부모 역시 그로 인해 고통받게 됩니다. 결국 발달장애 학생의 학교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첫걸음은 교사와 학부모가 긴밀한 소통을 통해 개별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는 교육전문가인 교사를 존중해야 하고, 내 아이만이 특별대우 받길 바라는 욕심을 내려놔야 하고, 교사의 행동을 지적하며 선을 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사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학부모한테 알리지만 않으면 문제행동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서 껴안고 간다"는 태도는 모두를 불행하게 합니다.
"학부모와 소통할 바엔 내가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태도로 1년은 버틸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학부모와의 소통 부재로 문제행동이 잔뜩 강화된 학생을 다음 해 맡는 교사는 무슨 잘못일까요. 이전해 교사의 불통에 대한 책임을 다음 해 교사가 온전히 지게 되는 건 옳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그 시간 동안 당사자 학생과 반 구성원도 힘들 테고요. 조금 더 마음을 열어 소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특수교육에서는 말합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협력관계라고. 교사들도 그렇게 말하고 학부모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정말 그렇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증명할 때인 것 같습니다. 2주일 뒤가 개학입니다. 이전과는 또 다른 원활한 소통,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 이런 얘기와 사례들이 곳곳에서 전해져 오길 바라봅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설마?' 대통령 마주칠 기회 있다면, 입조심하세요
- 제주서 먹는 흑돼지가 비싼 이유... 이거 알면 화날 걸요?
- "선생님 퇴직 반대" 시위 벌인 아홉 살 학생들
- '스펙 압박'에 우는 스물넷...공대생 "그냥 망한 것"
- 짝퉁 전시회 연 정부, 수상한 커피잔
- 3선 허락하지 않던 서산·태안 유권자들... 이번엔 어떤 선택?
- 구제→컷오프→재심의, 국힘 오락가락 공천... "공당 맞나"
- 이제껏 전두환을 이렇게까지 해부한 사람은 없었다
- 날선 공천 신경전... 국힘 "이재명 방탄", 민주 "한동훈 사천"
- 최대 변수는 야권단일화... '진보정치 1번지' 창원성산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