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 쪽으로 돌아선 민주당의 한심한 행보
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이준구 기자]
▲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은 어떻게?'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토론회) 모습. |
ⓒ 유성호 |
최근 여러 가지 이슈에서 민주당답지 않은 미적지근한 태도로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더니 드디어 정부, 여당의 치졸한 술책에 말려드는 일까지 저지르는군요.
금투세가 시행되면 우리나라 증권시장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얻은 이득에만 과세가 되는 게 아니고 해외 주식시장에서 얻은 이득에도 과세가 되는데 말입니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발생한 이득은 5천만 원까지 면세가 되는데 비해 해외에서 발생한 이득은 250만 원까지만 면세가 되니 금투세가 실시되어도 국내에 투자하는 쪽이 훨씬 더 유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25년에 금투세가 시행될 예정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도망가야 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미 발 빠르게 자금을 빼갔을 것입니다. 만약 금투세 폐지론자의 주장이 맞다면 금투세가 정말로 폐지되는 순간 해외로 빠져나가던 자금이 밀물처럼 국내로 다시 유입되는 일이 벌어져야 마땅합니다.
여러분들 나하고 내기 한 번 해보시렵니까? 나는 국내로 자금이 밀물처럼 되돌아 오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 1만 원을 걸겠습니다.
▲ 코스피 폭락 마감 8월 5일 코스피는 전장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88.05p(11.30%) 내린 691.28로 마감했다. 사진은 이날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 모습. |
ⓒ 연합뉴스 |
현재의 금투세 안에서 손실분은 이득을 본 부분에서 완벽하게 공제되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되니까요. 더군다나 손실을 본 부분은 5년까지 이득을 본 부분에서 공제될 수 있으니 정부가 거의 완벽하게 보상을 해주는 셈입니다.
예금을 한 사람은 1천만 원이 넘는 이자소득에 대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 합니다. 종합소득세를 내는 사람은 이에 적용되는 세율이 최고 45%까지 치솟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식 투자를 해서 이득을 본 사람에게 최고 25%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입니까? 주식 투자를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하기라도 했기 때문에 우대를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요?
소득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것은 공정한 과세의 원리로서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똑같은 금융소득의 범주 안에 있는데도 어떤 것은 과세 대상이 되고 어떤 것은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는 것은 공정과세의 원칙에 배치되는 일입니다.
단지 공정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투자 결정에 교란을 일으켜 효율성에도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금투세 실시는 여야 합의에 의해 결정된 사안
사실 2025년부터 금투세를 실시하자는 것은 여야 합의에 의해 결정된 사안입니다. 민주당 단독으로 밀어붙여 그 법안이 통과된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도 기꺼이 동의했기 때문에 그 법안이 통과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떤 급격한 경제 상황의 변화가 발생했기에 정부, 여당은 갑자기 태도를 표변해 금투세 폐지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인가요? 그동안 이렇다 할 상황의 변화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표 몇 장 더 얻으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그런 술수를 부리는 게 틀림없습니다.
지금 정부, 여당이 금투세 폐지의 명분으로 내거는 이유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고 금투세 법안이 통과되던 당시에도 모두 다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그런 무책임한 변덕을 부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면 더욱 얄미운 것은 이런 정부, 여당의 얄팍한 술수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지 않고 슬그머니 꼬리는 내리는 민주당입니다. 이번 일을 비롯해 민주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민의힘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이런 민주당에게 표를 던져준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금투세 폐지' 구호 외치는 한동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주최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촉구 집회에서 금투세 폐지를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당론 확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남소연 |
여러 나라들의 실험에서 감세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오직 하등의 쓸모도 없는 감세정책에만 목을 매고 있는 이 정부가 딱하게 보일 뿐입니다(더군다나 최근 발생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세수 결손으로 인해 감세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염치 없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여러분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종부세나 금투세의 감세가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 주는 효과 이외의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다고 국민의 소비심리가 갑자기 되살아 나겠습니까 아니면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갑자기 되살아나겠습니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 정부가 시도하는 감세정책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겠습니까?
운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은 부유층의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populism)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부패한 언론이 제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서민들은 종부세나 금투세가 자신이 내는 세금이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기 마련인데, 정부와 여당은 이 사실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용감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는 것은 야당인 민주당뿐 아닙니까? 그런 우리의 여망을 저버리고 기꺼이 정부, 여당의 협조자가 되려 하는 민주당에게 무슨 기대를 걸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정치에 아무런 희망도 걸지 않는 냉소적인 방관자가 되는 길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당은 금투세 실시를 찬성함으로써 잃게 되는 표를 걱정해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주도했던 금투세를 폐지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 몇 장을 더 얻으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은 졸책 중의 졸책입니다.
그런 줏대 없는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과거의 지지자들이 속출할 것이며, 그 결과 잃게 되는 표가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합니다. 이런 뻔한 결과조차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그저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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