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편의적’ 대출 총량규제…금융소비자만 멍든다 [취재진담]

김태은 2026. 5. 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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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대출 창구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총량 관리까지 해주니 은행들이 땅 짚고 헤엄치는 격으로 영업을 한다”

최근 한 취재원에게 들은 말이다. 연초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이 제시하는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가 해마다 강화되고 있어서다. 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지난해(1.7%)보다 강화한 1.5%로 설정했다. 지난 2021년에는 가계대출 연 증가율을 5~6% 수준에서 관리한 점을 고려하면 규제 강도가 이전보다 한층 높아진 모습이다.

은행들은 연초부터 대출 문턱을 높이며 보수적으로 움직였다. 당국의 관리 압박 속에 관리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은 이듬해 더욱 허리를 졸라매야 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목표치를 초과한 은행에 대해 다음 해 대출 물량에서 전년도 초과분을 차감하는 방식의 ‘패널티’를 부과한다. 실제 최근 시중은행의 금리표를 보면 지난해 목표치를 넘긴 은행일수록 대출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총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대출 공급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수요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소비자들은 은행별 대출 여력이나 공급 현황을 알지 못한 채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은행 창구를 전전한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대출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른바 ‘대출 절벽’ 현상이 반복된다. 신용과 담보가 충분하더라도 총량 한도가 소진되면 언제든지 대출 공급이 중단될 수 있는 구조다.

앞선 취재원의 말처럼 총량규제가 은행권 경쟁을 약화시키고, 금융소비자의 선택권까지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출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는 데에는 시장금리 상승 영향도 있지만, 은행들이 금리수준을 낮출 유인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예대금리차는 지난 3월 기준 1.512%포인트(p)로, 2022년 7월 관련 공시 이후 최대 수준까지 확대됐다. 은행권에서는 총량 규제에 따른 패널티 부담으로 인해 금리 인하와 가계대출 신규 상품 출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시장 구조가 고착화된다는 비판 역시 적지 않다. 은행별 가계대출 관리 목표치를 산정할 때는 전년도 실적을 기준으로 증가율을 정한다. 결국 기존 공급 규모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규모가 큰 금융사는 계속 큰 폭의 대출을 취급하고, 규모가 작은 금융사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영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사 간 차별화 경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높은 가계부채는 소비를 제약하고 우리 경제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가계빚 다이어트’가 절실한 상황이다.

다만 연간 증가율에 맞춰 일률적으로 대출 총량을 정하고, 한도 소진 전까지 ‘선착순’ 방식으로 공급을 제한하는 현행 규제는 지나치게 행정 편의적이라는 비판을 불러온다.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방식으로는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제 성장률과 부동산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수요자가 필요한 시점에 적정 규모의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교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 대출규제의 역할은 단순히 대출 규모를 줄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자금이 원활히 흐르도록 유도하는 데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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