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키덜트, 호러까지! 취향이 곧 창작의 원동력인 1인 출판사

2017년 토이필북스라는 여행, 키덜트 문화 전문 출판사를 연 이스안 작가는 지금까지 서른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후로 공포 소설도 집필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취향을 업으로 삼은, ‘덕업일치’의 주인공이지요. 무엇이 그의 원동력인지,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펼쳐나갈지 브릭스 매거진에서 이스안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토이필북스를 운영하며 창작 활동을 펼쳐나가는 이스안 작가

Q. 언제부터 인형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어렸을 때는 다들 인형, 장난감을 좋아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책도 굉장히 좋아했고요.

인형 수집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인형을 버릴 시기인데 저는 친구들에게 버릴 인형을 다 달라고 했지요. 인형을 가지고 논 것은 아니었어요. 진열하고, 쌓아두고, 말 그대로 수집이었지요. 그렇게 제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사 주셨던 인형까지 아직 가지고 있어요. 그 당시에 이미 인형 박물관을 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스안 작가

Q. 인형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신 건가요?

유년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오래된 인형을 보면 옛 생각이 나고, 어릴 때 기억은 대부분 행복하게 미화되어 남아 있으니까요. 그런 추억을 떠올리는 게 좋아요. 그리고 저에게 인형, 장난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처럼 보여요. 미술품 같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보기와 다르게 애니메이션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 어릴 적 〈세일러문〉이나 〈이웃집 토토로〉,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인형이나 피규어가 활발히 제작될 만큼 유명한 작품들, 예를 들면 〈나루토〉나 〈원피스〉도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애니메이션의 피규어는 다 소장하고 있어요. 애니메이션의 서사나 캐릭터성보다는 인형 자체의 물성, 예술성이 좋은 거예요.

Q. 출판사는 어떻게 차리게 되셨나요?

제가 2016년에 처음 낸 책이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하며 썼던 일기를 엮은 『나의 알록달록한 일본』이었어요. 교환학생으로 갈 때부터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녀오자마자 작업에 들어갔지요. 제가 조소과를 나왔는데 학교에서 들었던 책 디자인 수업이 도움이 됐어요. 글을 쓰고 편집하고 페이지를 디자인하면서 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잠자고 먹는 것도 귀찮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그때 책 만드는 길로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2017년에 출판사를 차렸어요.

토이필북스의 출간 목록

Q. 일본으로 교환학생도 다녀오시고, 여행도 많이 하셨습니다. 일본이라는 여행지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여행을 가시면 주로 무엇을 하세요?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도 일본을 자주 갔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1~2년에 한 번씩은 여행을 했고, 관심도 많아 부전공도 일본학으로 택했어요. 아무래도 일본이 인형, 장난감의 나라이다 보니 제 취향과 잘 맞는 부분이 있어 관심이 더 갔던 것 같아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모두 만나요. 물론 인형, 장난감 쇼핑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사고요. 제일 자주 가는 도쿄에서는 일명 ‘덕후’들이 많이 가는 곳, 나카노, 아키하바라 같은 곳을 많이 다녀요. 도쿄를 상징하는 두 랜드마크,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도 꼭 가고요.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 ⓒ이스안

Q. 『DOLL TOWN』, 『TOY! TOKYO』, 『마네킹 시티 인 치앙마이』 등 인형과 장난감을 주제로 한 사진집도 여러 권 내셨습니다. 이 또한 수집의 일환이라고 봐도 될까요?

사진 찍는 게 취미라 평소에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에요. 제가 어떤 인형과 장난감을 수집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일상 사진도 굉장히 많이 촬영해요. 그래서 매년 사진 일기장도 만들고 있어요. 거의 지인들과 나누어 보는 개인적인 작업이지만요.

마네킹 사진집을 내게 된 건 인형을 좋아하니 마네킹에도 관심이 많이 갔기 때문이에요. 조소과에서도 인체를 만들었다 보니까 마네킹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길 가다가 보이는 마네킹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 사진들이 꽤 쌓였어요. 그래서 『마네킹 시티 인 치앙마이』 같은 사진집을 내게 되었어요.

이스안 작가의 『마네킹 시티 인 치앙마이』

Q. 인형 중에서도 특히 인체 모형을 좋아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도 유독 인체 모형을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은 약간 집순이가 됐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은 들어요.

Q. 최근 창간하신 『토이크라우드』는 어떤 잡지인가요?

출판사를 열 때부터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키덜트 매거진이에요. 오랫동안 장난감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동안 주변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그들을 인터뷰한 잡지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1부는 창작자와 수집가에 관해 다루고 2부는 키덜트다운 사진, 일러스트, 조각 등 시각예술을 다루고 있어요.

원래 1년에 두 번 『토이크라우드』를 발간하려고 했어요. 창간호는 미리 인터뷰해 둔 꼭지를 제외하고는 제작에 4~5개월 정도 걸렸는데, 혼자서 인터뷰부터 촬영, 편집, 디자인까지 다 하려니까 매우 힘들었어요. 그래도 만드는 동안 저와 같은 취미, 취향을 가진 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힘이 됐습니다. 2호에 소개할 분들과의 약속도 있기 때문에 조만간 다음 호 준비도 시작하려고 해요.

토이필북스에서 출간한 키덜트 문화 매거진 『토이크라우드』

Q. 곧 나올 책까지 창업 이후 36권의 도서를 출판하셨습니다. 1인 출판사이니만큼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셔야 할 텐데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아직은 페이지를 채워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하나씩 글이 써지고 디자인이 되어가다가 딱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 순간의 성취감이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물론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 지치고 그만하고 싶은 기분도 들어요. 하지만 제가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더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책을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종이 가격이 많이 오르며 인쇄비도 함께 올랐어요. 아무래도 운영의 지속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앞으로는 실제 인쇄 부수는 줄이고 전자책 위주로 제작하여 판매할 계획이에요.

Q. 공포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어렸을 때 이토 준지의 만화도 좋아했다고 하셨는데, 호러 장르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제가 공포 장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예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주 공포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하셨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공포 영화를 보기 시작해서 지금도 잘 만든 영화든 못 만든 영화든 공포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 가요. 사실 무서운 걸 잘 본다고 할 수는 없는데, 무서운 영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올 때의 안도감이 좋아요.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한 느낌도 좋고요.

이스안 작가의 『유리코』

그렇게 꾸준히 공포물을 접하다 보니 저도 무서운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초격으로 냈던 책이 호러 포토 에세이 『유리코』였어요. 일본 중고 장난감 가게에서 우연히 유리코 인형을 산 후 제게 일어난 기묘한 경험을 사진과 글로 엮은 책이었어요.

이스안 작가의 공포 소설 『기요틴』, 『카데바』

그리고 몇 년 동안 써 두었던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2019년에 첫 공포 소설집 『기요틴』을 발간했어요. 제가 그때까지 냈던 어떤 책보다 반응이 좋았던 책이에요. 이후로 두 권의 소설집을 더 냈는데, 『카데바』는 제가 출간했고, 『신체조각미술관』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했어요. 지금도 독자분들이 가장 기다려 주시고 기대해 주시는 제 책 장르는 공포 소설입니다.

이스안 작가의 공포 소설 『신체 조각 미술관』

Q. 이스안 작가님이 좋아하는 공포 소설과 공포 영화는 무엇일까요?

소설로는 황금가지에서 출간하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꼽고 싶어요. 공포 영화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좋아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공포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수많은 귀신과 괴물들이 나오니 함께 꼽아봤어요.

Q. 최근 미 서부에서 한 달 반을 지내고 오셨습니다. 특히 LA가 좋았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점에서 LA가 작가님과 잘 맞는 여행지였나요?

LA는 분명 단점도 많은 도시인데,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다양한 매력이 있었어요. 우선 박물관이 정말 많은 도시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인형 테마의 박물관, 호러 테마의 박물관도 많았지요. 햇볕은 따갑지만 덥지는 않은 날씨도 환상적이었고요.

코리아타운은 그냥 한국 같았어요. 영어를 못해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였지요. 또, 와서 만나다 보니까 제가 LA에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여행 내내 혼자 지낼 줄 알았는데 여러 친구를 두루 만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미국에서 한국인의 정을 느꼈다고 할까요. LA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었을 정도예요.

LA를 여행하는 이스안 작가 ⓒ이스안

일본에 살 때도 그랬지만, 미국을 다녀오니까 외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사실 20대 초반부터 쭉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더 다양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예컨대 주변에서는 제가 내는 인형이나 장난감에 관한 책도 일본이나 미국에서 출간하면 더 성공적일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 줘요. 제가 몇 년 동안 운영했던 인형 박물관도 외국에서 열었다면 반응이 더 좋았을 거라고도 하고요.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외국에서 공부를 이어 나가려고 준비 중이고요.

이스안 작가

Q. 곧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도쿄대학교 대학원의 미학예술학과에 석사연구생으로 입학하게 되어 9월중 도쿄로 떠날 예정이에요. 올봄에 원서를 넣어봤는데 솔직히 이렇게 덜컥 합격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준비 기간도 한 달 반 정도로 꽤 짧았거든요. 그래도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 연구 분야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수집해가면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했어요. 제 희망 연구 분야는 ‘AI 휴머노이드 로봇’인데 이것도 인형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니 깊게 파고들어 연구해보면 재미있겠다 싶더라고요.

얼마 전 기숙사 일로 도쿄대 사무실 선생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본 캠퍼스와는 좀 멀지만 한 달에 한화 4만 원대의 저렴한 기숙사를 신청해도 되는지 여쭈었더니 “앞으로 도서관에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할 일이 많을 텐데 캠퍼스와 먼 기숙사는 신청하지 않는 게 좋아요” 라고 답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공부를 많이 시킬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긴 해요. 그래도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에서 제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논문도 책이니까요!

이스안 작가

Q.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출간하실 책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재작년부터 매년 일본과 해외에서 한 달을 지내왔어요. 그래서 올여름 중에 ‘후쿠오카 한 달 살기’와 ‘일본 한 달 살기’를 주제로 한 책 두 권을 내려고 해요. 그 이후에는 태국과 이번에 다녀온 미국 여행에 관해 쓰려고 하고요.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출간 예정인『설렘, 후쿠오카』, 『설렘, 일본』

인터뷰 | 신태진, 이은서 에디터
사진 | 신태진
장소협조 | 러브 레플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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