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도박, 트럼프 취임 후였다면?…FP “진로수정 압박 안했을 것”

“도널드 트럼프의 과거 행적을 고려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진로를 바꾸라는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도박’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일어났다면 어땠을지를 예상하며 내놓은 답이다.
FP는 16일(현지시간) 칼럼니스트 하워드 프렌치가 쓴 ‘트럼프는 한국의 위기에 다르게 대응했을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12ㆍ3 계엄 사태가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2기 동안 발생할 가능성이 큰 국제 위기 상황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어느 시점에 누가 미국 대통령직을 맡고 있느냐에 따라 주요 글로벌 위기의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면서다.
FP는 먼저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는 과도기에 국제 정세는 오랫동안 불안했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특히 흥미로운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물러나고 트럼프가 새 대통령에 취임하는 권력 교체기에 한국 계엄 사태가 터진 점을 우선 지적한 것이다.
“백악관 ‘尹 권력 지지 안해’ 전달한 듯”
FP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에 엄청난 위기를 초래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조용히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외교적 대처를 했다고 짚었다. FP는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정치적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하는 등 한국의 민주적 정당성을 지지하는 외교적 메시지를 사용했다”며 “백악관도 윤 대통령이 권력 장악을 계속 추구했을 경우 지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비공개적으로 전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런 계엄 선포에 대해 미 정부는 헌법과 법치를 계속 강조하며 “심각한 오판”(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라고 하는 등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 왔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고위 당국자의 이런 반응 외에도 윤 대통령의 계엄을 통한 권력 강화 계획에 바이든 행정부가 반대한다는 뜻을 물밑으로 발신했을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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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 “尹 직무정지에도 한미동맹 여전”
윤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에 들어갔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한ㆍ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철통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ㆍ미동맹은 대통령 간 동맹뿐 아니라 정부 간, 그리고 국민 간 동맹”이라며 “한ㆍ미동맹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바이든 대통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말했듯 한ㆍ미동맹은 우리에게 중요한 관계이며 훌륭한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FP는 “윤 대통령의 도박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였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확실한 것은 트럼프가 내부의 적 ‘딥 스테이트’(Deep Stateㆍ트럼프가 자신에 반대하는 연방정부 관료집단을 비판할 때 쓰는 말)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했고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적을 비난할 때 ‘배신자’, ‘반역자’ 등 용어를 써 가며 처벌을 공언해 왔다는 점”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또 1ㆍ6 의사당 난입사건 피의자들을 격려하는 등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초헌법적ㆍ초법적인 해결책을 쓰고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오랜 동맹 가치에 대해 양가적 태도를 보여 왔다며 “트럼프의 이런 행적을 고려할 때 윤 대통령에게 ‘진로 수정’을 압박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신고립주의’ 주목해야”

FP는 “트럼프 2기 미국이 일종의 개인 중심 신(新)권위주의로 흘러가면서 해외 민주주의ㆍ인권 지원 등 전통적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 있다”며 “사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은 비록 환영받지 못하는 방향이겠지만 전 세계 독재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방식으로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이른바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독재 국가 지도자들과의 친분을 과시해 온 트럼프의 등장으로 전 세계 외교안보 지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평소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해 온 바이든 행정부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에 우려 섞인 반응과 함께 발언수위를 높여가며 ‘정상적 통치’를 압박했지만, 신고립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무대응으로 일관했을 거라는 게 FP의 분석 결과다. 전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한 미국의 이전 행보와는 분명히 달라질 거란 점에서 국제 질서의 큰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하워드 프렌치는 뉴욕타임스(NYT) 카리브해ㆍ중미 특파원, 타임스 도쿄ㆍ상하이 지국장 등을 지낸 뒤 컬럼비아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FP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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