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쌓인 빚을 두고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와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이자와 만기 조건에서 양보를 얻어내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주요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괜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는 만큼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조사위원으로 선임된 삼일회계법인이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 청산가치 등을 평가한 뒤 조사보고서를 다음 달 29일까지 제출하기로 했다.
관리인은 6월3일까지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이후 관계인집회에서 채권자, 주주 등이 회생계획안 심리 및 가결에 나서게 된다.
회생계획안의 주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홈플러스 측이 상거래채권을 정상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금융부채, 리스부채 중심의 채권자별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금융부채 중 상당수는 홈플러스의 부동산자산(4조7000억원)을 담보로 삼았다고 전해지는 만큼 최대주주인 MBK가 부동산을 유동화해 채무를 상환하는 전략을 염두에 둘 것으로 보인다.
채권자, 주주 등이 관계인집회에서 채무조정, 부동산자산 매각 등의 계획안에 동의해야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만큼 결국 채권자가 홈플러스의 회생안을 받아들일지가 관건일 것으로 전망된다. 사측이 발표한 2조원의 금융부채 가운데 메리츠금융그룹(화재·증권·캐피탈)의 담보채권이 1조2000억원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메리츠금융이 사실상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의 통과 여부를 가름하는 주요 채권자인 셈이다.
금융부채의 대부분이 메리츠금융에 쏠린 것은 지난해 초 1조2000억원의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차환)을 금리 10% 안팎에서 단독으로 주선했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메리츠증권의 익스포저가 6551억원, 메리츠캐피탈과 메리츠화재가 각각 2807억원씩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메리츠금융과 최대주주인 MBK 간의 채무재조정 협상을 관전 포인트로 보고 있다. MBK는 홈플러스 채무와 관련해 이자율을 낮추거나 채권액 자체의 감면을 제안할 수 있지만, 메리츠금융으로서는 손실 없이 자금회수를 극대화하는 것이 우선인 만큼 양측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금융 측이 문제없다고 밝혔지만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며 “구조조정의 기본인 금리조정, 만기연장 등만 해도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사실상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메리츠금융이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라는 의견도 나온다. MBK와 홈플러스 사측이 인수금융을 끌어올 때 홈플러스 매장의 토지나 건물 등 유형자산이 아니라 이를 유동화한 신탁증권을 담보로 삼았다는 점에서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과 무관하게 빚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관련 구조 스터디를 했는데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메리츠금융은 채무재조정 없이 연체이자율까지 다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며 “메리츠금융이 손해날 사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무담보 채권이라고 할 수 있은 금융권 기업어음 등의 채무재조정이 관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리츠금융은 홈플러스와의 대출약정 계약이 강제 채무조정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메리츠금융은 최근 입장문에서 “홈플러스의 모든 부동산은 신탁에 담보가 제공돼 있고 메리츠금융은 이 신탁에 대한 1순위 수익권을 가진다”며 “수익권 행사는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와 무관하며 기한이익상실(EOD) 발생 즉시 담보처분권이 생긴다”고 밝혔다.
남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