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까운, '드골: 저항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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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유럽 최강국이라 자부하던 프랑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진다.
그러나 드골은 무슨 배짱인지 라디오 연설로 저항을 호소하며 '자유 프랑스'를 조직한다.
<드골: 저항의 시작>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투표에서 늘 1위를 다투는 샤를 드골이 2차 대전 패전 당시 국민 대다수에게 이름조차 모르던 신출내기 장군에서 저항의 구심으로 일어서는 과정을 담았다.
졸전의 연속이던 1940년 나치의 프랑스 침공 당시 몇 안 되던 프랑스군의 반격을 최전선에서 지휘하던 기갑사단 지휘관 드골의 용전분투도 헛되이, 어어 하다가 참패한 프랑스 정부는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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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1940년, 유럽 최강국이라 자부하던 프랑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진다. 1차 대전 패배 후 칼을 갈던 나치독일은 전격전 끝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을 덩케르크로 몰아넣고 승리한다. 프랑스는 굴욕적 휴전 협정, 사실상 항복한다. 정부는 무너지고 지난 대전의 전쟁영웅 패텡 원수가 괴뢰정권 '비시 프랑스' 수장이 된다. 하지만 무명 장군 샤를 드골은 런던 망명길에 오른다. 하지만 따르는 이는 거의 없다.
비시 정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영국 정부 역시 세력이 미약한 그를 찬밥 대접한다. 그러나 드골은 무슨 배짱인지 라디오 연설로 저항을 호소하며 '자유 프랑스'를 조직한다. 한편 파리에선 학생들이 주도한 개선문 시위가 불타오르고 미약하나마 런던으로 저항군이 모여든다. 영국과 미국의 정치적 셈법에 장기 말이 되길 거부하는 드골과 동료들은 실패를 거듭하고 시련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한다. 하지만 전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프랑스 국가의 정통성을 구현한 대작의 치명적 매력
<드골: 저항의 시작>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투표에서 늘 1위를 다투는 샤를 드골이 2차 대전 패전 당시 국민 대다수에게 이름조차 모르던 신출내기 장군에서 저항의 구심으로 일어서는 과정을 담았다. 요즘엔 거의 나올 일 없는 장대한 전쟁 블록버스터의 구성, 게다가 2부작 연작 구성이다. '대하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 프랑스 내 장편영화 평균 제작 규모의 10배에 필적하는 예산과 초호화 배역진이 투입되어 위용을 뽐낸다.
영화는 현대 프랑스 체제의 기원이 된 고난과 역경의 시절과 당시 패배감에 휩싸인 국민들에게 희망의 별이 되려 했던 무모한 군인의 거대한 모험담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흔히 2차 대전에서 초전박살이 난 뒤 운 좋게 연합국 말석으로 기사회생한 '빛 좋은 개살구', 얌체 나라로 취급받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우고, 골리앗에 맞선 다윗처럼 얼마나 숱한 고비를 견뎠는지 증명하고자 분투하는 작업이다. 작품 전체에 '국뽕'이 아주 제대로 'A부터 Z까지' 넘실거린다.
시대극의 부활을 노린 듯, 영화 속에는 숱한 영웅과 그들의 피와 눈물이 어린 수난, 냉정한 국제정치 계산과 기회주의자들의 음모가 즐비하다. 전쟁 역사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야말로 현기증 날 지경으로 방대한 2차 세계대전 역사 속 가장 암울하던 시절의 상황이 농축되듯 전개되기에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프랑스판 블록버스터의 위세에 저절로 탄복할 만큼 실제 격동의 역사를 가로축으로, 각색이 가미된 인간 군상의 다면성을 세로축으로 수놓는다.
그 대하 드라마의 중심에는 고대 신화 속 영웅의 재현 마냥 우뚝 선 채 평범한 인간이라면 몇 번이고 절망하고 포기했을 역경을 헤치는 무명 시절 샤를 드골이 우뚝 서 있다. 당시 수많은 런던 망명객 중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가 정치적 중심으로 우뚝 솟는 역사 비화를 화면 가득 펼쳐진 이미지의 향연으로 목격할 수 있는 체험 기회는 흔하지 않다. 역사 수정주의 흐름에 희미해진 국가 정통성 세우기라는 야망이 이 대작 시리즈를 가능케 한 에너지일 테다.
방대한 분량 속 숨가쁜 전쟁 스릴러
시작부터 영화는 속도와 무게감으로 승부한다. 졸전의 연속이던 1940년 나치의 프랑스 침공 당시 몇 안 되던 프랑스군의 반격을 최전선에서 지휘하던 기갑사단 지휘관 드골의 용전분투도 헛되이, 어어 하다가 참패한 프랑스 정부는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는다. 물론 겉으론 패전한 것뿐,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었으니 드골로선 정부 명령에 따르면 그만이다. 납작 엎드려 눈치만 봐도 나름대로 장성인 그가 특별히 피해를 볼 이유도 없었던 상황.
하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민족혼이 그에게 내려앉은 듯 드골은 분연히 일어선다. 물론 초반엔 '드골이 누구야?' 비아냥만 들을 뿐이다. 대사관도, 해외 식민지 총독도 절대다수가 비시 정부 정통성을 인정하고 드골의 호소를 외면한다. 영국 정부 역시 실제 세력이 미미한 드골을 향한 관심과 지원은 미지근할 뿐. 그런 절망적인 출발을 딛고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건 극소수의 의기 넘치는 이들, 그리고 민간인 의용병과 저항을 도모하는 레지스탕스다.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군 창설 과정을 연상하게 만드는 전반은 '도원결의'가 따로 없다. 낡은 사무실 배관 고치러 왔던 기술자가 전화 좀 받아달라는 드골의 지시에 졸지에 측근이 되고, 무작정 고깃배 타고 넘어온 어부들이 자원입대한다. 그들의 의기를 목격하고 이리저리 계산하던 외교관은 정신이 번쩍 들어 자유 프랑스에 합류한다. 국경을 넘어 도착한 소수의 저항군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가명을 짓는다. 훗날 역사적 상징이 된 이름들이 탄생한다.
그래도 세계를 호령하던 '프랑스 제국'의 임시정부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고립무원 상태로 나치에 맞서던 영국, 처칠은 드골의 의기를 내심 반기면서도 정치가로서 복잡한 정치 역학에 충실하다. 처칠 총리는 몇 번이고 드골을 내치려다 생각을 고쳐먹는다. 항복을 거부했지만, 승산은 통 보이지 않던 전쟁 초반의 풍경이 여지없이 묘사된다.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본토와는 제대로 연락도 힘들어 세계에 흩어진 식민지를 자유 프랑스로 포섭해야 힘을 모을 수 있다.
'철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저항의 시작
자유 프랑스의 창세기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다. 극화된 드라마와 기록영상을 재연한 삽입 장면이 교차하며 역사책으로만 들었던 현대사의 복잡한 단면이 연쇄적으로 밀려드는 파도처럼 눈앞에 휘몰아친다. 작은 희망과 거대한 절망이 밀물 썰물처럼 오가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쟁. 실낱같은 불씨가 지펴지면 이내 잔인한 운명의 신처럼 집채 같은 해일이 엄습한다. 괴뢰정부의 탄압도 한몫한다.
드골의 고집불통 확신이 격동의 역사를 가로지르지만, 일방적 우상화와는 결이 다르다. 좌절에 빠진 국민을 독려하기 위해 스스로 기둥이 되려던 겉모습과 달리 거듭된 실패와 무력감에 흔들리는 이면 역시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동맹국의 냉혹한 계산에 들쑥날쑥한 지원과 굴욕감에 몸서리치는 자유 프랑스의 실상, 기회주의로 눈치만 보는 프랑스 지도층 위선에 감정을 이입하며 치를 떨 즈음, 희망의 씨앗은 민초의 분연한 의지와 희생에서 싹튼다.
여기에서 수많은 무명 영웅과 집단지성이 등장할 차례다. 전설적인 프랑스 국내 레지스탕스 지도자 '장 물랭'이 신출귀몰하며 드골과 협력하기 시작한다. 신출내기 학생 '페르낭'과 '리비아' 등은 청년의 패기로 파리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다. 그들은 자리보전에 급급하며 이를 '현실주의'로 포장하는 기득권 대신에 라디오 방송으로 목소리만 겨우 알던 무명의 저항 지도자를 희망으로 여기며 이름을 연호한다. 오늘날 드골의 신화는 여기에서 비롯된 셈.
드골은 군인 시절 감춰진 정치 지도자로서 숨은 재능과 비전을 개화하기 시작한다. 강철 같은 의지로 맞서지 않고는 작금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는 때론 희생을 감수하는 냉정함으로, 때론 무모하게 보일 만큼 당장 이익보다 정치적 구상을 우선하는 고집으로 복잡하게 드러난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이 모호한 당시 프랑스 정치판에서 국민 통합을 중심에 놓고 종종 동맹국이 경기 걸릴 정도로 내전을 회피한다. 고뇌에 찬 결단이 꼬리를 문다.
제국주의와 독립투쟁이 공존하는 대작의 매혹
독일에 점령된 1940년부터 본토를 수복하고 연합국 일원으로 승리하는 1945년까지 희망과 고난의 시간은 평화로운 시절 10배의 시간보다 숨 가쁘게 흐른다.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솜씨 있게 간추렸다지만, 1편의 영화로는 역부족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이나 <듄> 시리즈 같은 EPIC 대작 연작처럼 <드골: 저항의 시작>은 가장 어두운 고난의 순간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의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너무나도 미약한 보상 같은 기회를 그리는 데 충실하다.
1부는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시간을 다룬다. 히틀러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동까지 그야말로 구대륙 전역을 정복할 것만 같던 암울한 시절이다. 미국이 마침내 참전하며 반격의 서막이 조성되지만, 정작 드골과 자유 프랑스엔 위기가 깃든다. 여전히 소수 저항세력에 불과하던 그들 대신에 비시 정부 유력 인사와 명망가들을 포섭하려는 동맹국들의 계산 때문이다. 처절한 싸움을 통해 흘린 피는 정치 논리 앞에 지워진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과연 무얼까?
영국이 지중해와 중동 전역을 잃을 위기, '사막의 여우' 롬멜이 이집트를 정복하기 직전 국면에서 소수 자유 프랑스군은 퇴각하는 영국군을 엄호하기 위해 비르하킴에서 10배가 넘는 독일 전차군단에 맞서 보름 넘게 혈투를 벌인다. 그들의 용전분투 덕분에 처칠은 생각을 고친다. 요즘 전쟁영화에선 보기 힘든 고전적 무용담의 향연이 무명용사의 희생 위로 내려앉는다. 이 전투 장면만으로도 전쟁 시대극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본전 몇 곱은 남길 법하다.
영화엔 한국 관객이 감정을 대입할 구석이 넘치지만, 불편한 감정 역시 불쑥 고개를 내민다. 식민 제국으로서 프랑스 국민이 갖던 우월감과 차별의식이 툭 튀어나올 때다. 영웅적인 제국주의자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식민지를 전전하며 망명정부를 세워 고생하는 과정이 뭔가 이물감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제국'의 자존심과 부흥을 위해 싸운 초기 병력의 다수는 훗날 식민지 독립투쟁에 나설 아프리카 원주민이었다. 이는 분명한 역사의 진실이다.
그 모순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표현하고자 고심한 흔적도 물론 엿보인다. 식민지 행정관 중 가장 먼저 자유 프랑스에 합류한 차드 총독, 전우를 추모하는 아랍계 군인들 모습이 스친다. 하지만 21세기 시각으로 볼 때는 이율배반의 풍경일 수밖에. 역사적 맥락과 시각이 감상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대하 역사물을 보게 될 때 늘 따라붙는 질문이다. 워낙에 대작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지점이라 하겠다. 그만큼 시대극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업이다.
<작품정보>
드골: 저항의 시작
La Bataille de Gaulle : L'Âge de fer
2026 프랑스 전쟁
2026.11.11. 개봉 159분 15세 관람가
감독 안토닌 보드리
출연 시몬 압카리언, 사이몬 러셀 빌, 브느와 마지멜,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니엘스 슈나이더, 그리고 마티유 카소비츠
수입·배급 ㈜모비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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