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 두 번째 국보를 보러 갔다... 가야산의 천년 유산 이야기

최미향 2026. 11. 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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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수요일 오후,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계곡에 들어섰다.

그날 보러 간 탑은 지난해 12월 서산의 두 번째 국보가 됐다.

이듬해 서산시가 펴낸 <서산에 가야산이 있다>에는 옛 절터 23곳을 네 갈래 숲길로 잇자는 구상도 실렸다.

개심사에 있던 목판은 보원사로 돌아왔고, 수륙재가 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절터에 다시 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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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오층석탑에서 다시 열리는 수륙재와 고개 너머 가야사지까지

[최미향 기자]

▲ 노랗게 물든 나무를 등지고 선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1963년 보물로 지정됐고, 2025년 12월 19일 국보가 됐다.
ⓒ 최미향
11월 4일 수요일 오후,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계곡에 들어섰다. 길가의 단풍은 붉었는데 볕은 봄이 막 온 날처럼 따뜻했다. 평일 오후라 굽은 길에 오가는 차가 없었다. 낮은 돌담 너머로 물이 바위 사이를 가늘게 흘렀다. 탑을 보러 가는 길이었지만 계곡부터 사진에 담았다.
▲  11월 4일 오후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계곡. 단풍이 물든 길 옆으로 낮은 돌담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계곡물이 흐른다.
ⓒ 최미향
서산시 사진 공모전 입선작 가운데 '보원사지 반딧불이'라는 사진이 있다. 돌담 아래로 흐르는 물을 보면서, 어두워진 뒤의 골짜기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  서산 보원사지의 당간지주.
ⓒ 최미향
계곡을 따라 골짜기 안쪽에 이르자 산에 둘러싸인 너른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밭 건너에는 돌기둥 두 개가 마주 서 있었다. 절에서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달던 깃대를 받친 보원사지 당간지주다. 두 기둥 사이로 오층석탑이 보였다. 저 너른 터에 건물이 들어서 있던 때에는 어디로 들어가 탑 앞에 닿았을까.

그날 보러 간 탑은 지난해 12월 서산의 두 번째 국보가 됐다. 골짜기 입구의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국보로 지정된 지 63년 만이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마애불에서 물길을 따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고려의 오층석탑을 만난다.

돌지붕 아래 사자들이 있다

탑 가까이에서 카메라를 들자 층층이 내민 돌지붕 뒤로 노란 잎이 들어왔다. 다섯 층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받침돌에 새긴 조각이 보인다. 아래층에는 사자들이, 위층에는 불법을 지키는 여덟 무리인 팔부중이 새겨져 있다.

탑을 세운 해를 알려주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국가유산청은 탑을 쌓은 방식과 조각의 양식, 법인국사탑비에 기록된 탄문의 행적을 함께 살펴 고려 광종 때인 10세기 중반에 세운 것으로 본다. 통일신라 말의 석탑 양식이 고려에 들어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탑이다.

절터에는 탑이 남았고, 이곳에서 나온 높이 2m 57cm의 고려 철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보원사 터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통일신라 철불도 같은 박물관에 있다.
▲  서산 보원사지의 두 당간지주 사이로 국보 오층석탑이 보인다. 저멀리 보이는 왼쪽 돌담 너머에는 고려 승려 탄문의 행적을 새긴 법인국사탑비(왼쪽)와 그의 사리를 모신 법인국사탑이 나란히 서 있다.
ⓒ 최미향
1753년 가야산을 유람한 선비 이철환도 보원사에 들러 불전 뒤에서 법인국사탑비를 읽었다. 옛날에는 불전의 처마가 세 겹이었다고 하는데, 그가 찾아갔을 때는 한 겹만 남아 있었다. 지금은 불전이 사라지고 터가 남았다. 이철환이 읽었던 비석은 여전히 절터에 서 있다.

돌아온 목판, 다시 차리는 상

용현계곡에는 '강당골'이라는 옛 이름이 있다. 보원사 김선임 종무실장이 쓴 글에서 그 이름을 만났다. 1619년에 쓰인 서산읍지 <호산록>에는 보원사를 강당사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보다 앞선 1604년, <오대진언> 가운데 <수구즉득다라니>를 새긴 목판에도 판각한 곳이 가야산 강당사로 적혀 있다.
▲  2023년 10월, 충남 서산 보원사지에서 열린 보원사 ‘무차평등 수륙대재’ 재현회. 영혼식과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을 위해 영단에 과일과 꽃을 올렸다.
ⓒ 최미향
보원사에서는 수륙재에 쓰는 책도 펴냈다. 1565년에 판각한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그중 하나다. 개심사에 보관돼 있던 보원사의 옛 불서 목판은 2019년 5월 보원사로 돌아왔다. 보원사는 이 의례집을 비롯한 옛 기록을 바탕으로 2020년부터 해마다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 무렵에 '무차평등 수륙대재'를 열고 있다. 수륙재는 물과 뭍을 떠도는 영혼을 가리지 않고 위로하며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식이다. 마지막 의식은 절터에서 치른다.

내가 찾아간 날 잔디밭은 한적했다. 2023년 수륙재 사진을 보니 산을 등지고 차린 상에 과일과 꽃이 놓여 있었다. 저 넓은 잔디밭 어디쯤이었을까.

보원사지에서 가야사지까지
▲  서산 보원사지 인근 내포불교순례길 5코스 이정표. 이 지점에서 남연군묘가 있는 예산 가야사지까지 6.59km다.
ⓒ 최미향
보원사지 부근에서 찍은 이정표에는 '보원사지 0.19km'와 '남연군묘(가야사지) 6.59km'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한쪽은 내가 보러 온 탑이 있는 서산의 절터이고, 다른 쪽은 고개 너머 예산의 옛 절터다.

현장에 다녀온 이틀 뒤, 김선임 종무실장은 전화로 가야산을 통째로 박물관으로 보자는 구상을 들려줬다. 2020년 제안서의 지도에는 가야산을 가운데 두고 보원사지와 마애여래삼존상, 개심사, 가야사지, 수덕사가 한 장에 담겼다.

이듬해 서산시가 펴낸 <서산에 가야산이 있다>에는 옛 절터 23곳을 네 갈래 숲길로 잇자는 구상도 실렸다. 책에 실린 보원사지 코스는 새앙사 터와 보현사 터, 마애여래삼존상을 거쳐 보원사지로 돌아오는 길이다. 내가 본 내포불교순례길 5코스 이정표는 고개 너머 예산 가야사지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산 가야사지에는 조선 후기에 옮겨온 남연군묘가 있다. 이철환은 묘가 들어서기 전인 1753년에 이미 그곳을 '가야사 터'라고 적었다. 훗날 <매천야록>은 흥선대원군이 가야사의 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아버지의 묘를 옮겼다고 전한다. 예산군이 2021년에 공개한 발굴 결과를 보면 묘역 주변에서 석탑의 지붕돌 조각과 석조불상 조각이 나왔다. 다만 그 결과만으로 옛 탑이 지금의 봉분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김 실장은 절터를 잇는 길에서 사람들이 어디서 쉬고 밥을 먹을지도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가 예로 든 곳은 일본 히가시오사카의 세카이호텔 후세점이다. 빈 건물을 고쳐 객실로 쓰고, 묵는 손님은 이튿날 동네 다방에서 아침을 먹는다. 가야산에서도 순례길 주변에 이미 있는 집과 가게를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이었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충남 서산 보원사. 절집의 검은 기와지붕 위로 감나무 가지가 뻗고, 잎이 진 가지마다 주홍빛 감이 매달려 있다.
ⓒ 최미향
그날 나는 보원사지까지만 다녀왔다. 사진을 다시 보다가 숲샘의 글에서 읽은 11월의 이름이 떠올랐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이철환이 보았던 불전은 이제 없지만 그가 읽었던 탑비는 여전히 절터에 서 있다. 개심사에 있던 목판은 보원사로 돌아왔고, 수륙재가 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절터에 다시 상을 차린다.

사진 속 잔디밭에는 그날 오후 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다음에는 수륙재가 열리는 날에 다시 가보고 싶다. 탑을 보러 갔던 그 길로, 이번에는 사람들이 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러.
▲  충남 서산 보원사지에 남아 있는 석재들.
ⓒ 최미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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