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죄책감에 매몰” 정선희, 슬픔 극복하게 한 ‘인생책’

정혜정 2026. 11. 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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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정선희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생 책으로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소개했다. 유튜브 캡처


코미디언 정선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오랫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슬픔과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를 털어놨다.

지난 6일 유튜브 채널 ‘김영철 오리지널’에는 “성공한 개그맨들이 남몰래 읽는 인생 책 털기”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이날 정선희는 김영철과 함께 각자의 인생 책을 소개하며 상실의 아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선희가 소개한 책은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였다. 이 책은 작가가 1988년 남편과 26살 아들을 잇따라 잃고 겪은 고통을 기록한 작품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서 슬픔과 이를 감내하는 과정을 고백한 글을 담고 있다. 정선희는 이 책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마주하기 싫었던 감정을 다시 마주하게 해줬다”고 설명했다.

김영철도 해당 책을 읽으며 1991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과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김영철은 “형이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는데, 철저하게 엄마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어봤다”고 언급했다.

특히 아들을 잃은 작가가 일상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신의 모습을 두고 괴로워하는 대목이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김영철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이야기를 정직하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데,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을까 싶었다”고 돌아봤다.

김영철은 “밥 먹는 걸 쳐다보면 엄마가 ‘된장찌개 내가 끓였는데도 참 맛있지? 밥이 들어가네’라고 했던 모습이 지나갔다”며 “엄마가 때로는 우리 앞에서 억지로 못 먹는 연기도 했을까 싶었다. 엄마를 알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선희는 “그게 우리가 처음 맞닥뜨리는 자기혐오의 순간”이라며 “누군가를 잃고 밥을 먹고 있네 내가. 아 밥이 달고 맛있네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부터 지극한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고, 산 자의 죄책감에 매몰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에서 박완서님도 먹고 토하는, 그런 꾸역꾸역의 일상들을 이어나가는 순간 ‘아 내가 대단한 인간이 아니구나’ 느낀다”며 “그런 깨달음을 얻는 것”라고 전했다.

정선희는 자신 역시 오랫동안 삶의 불행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흔히 ‘왜 나여야 하는가, 왜 이 고통을 내가 겪어야 하는가, 왜 하필 나지?’라고 생각한다”며 “오래도록 나는 신에게 삐져 있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정선희는 “‘그럼 내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불행을 받을 이유가 충분한 건가? 어떤 죄에 대한 벌이야?’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단순하게 계산할 수 없는 문제였다”며 “그제야 뭔가 툭하고 가벼워진 느낌을 받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비극의 주인공인 것처럼 살았는데 그것은 굉장한 오만이었구나. 누군가는 자식을 잃고, 또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살아가는 이 삶 속에, 나 혼자 나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깨달음이 많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정선희는 “내가 이 슬픔이라는 무대에서 독무를 추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거기서 겸허히 내려왔을 때 비로소 남들의 아픔과 눈물이 보였다”며 “자기연민에 빠졌던 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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