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코리안 3세 신숙옥, 더 차별받는 이름을 선택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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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기뻐하는지 찾아야 해요. 그래야 자기답게 일생을 보낼 수 있어요. 인간답게, 나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인 누구라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요."
그는 "일본 이름, 한국 이름, 여성인 것도 좋다. 한국인보다 조선인, 니이야마 세쓰코보다 신숙옥이 더 차별받는 이름이라, 오히려 신숙옥을 쓰고 있다. 나를 사랑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나를 버리면 누가 좋아해 줄까.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이니치 남성이라고 해서 일본 남성과 다르지 않다. 타인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봤고 당했던 거다.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이나 리더십을 교육받지 못했던 남성들은 가정폭력을 대물림한다"며 "자이니치 사회 내부에서도 차별이 비일비재하다"라며 젊은 세대의 인식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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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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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옥 인권운동가 |
| ⓒ (주)엣나인필름 |
신숙옥은 1959년 일본 도쿄도 시부야에서 태어난 재일 코리안(자이니치) 3세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국적의 인권운동가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라가 만든 프레임 속에서 일본과 한국,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십 대 후반부터 생계를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모델로도 일했으며, 기업 연수와 인재 육성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사업가로서 재능을 드러냈다.
본격적인 사회운동은 2000년부터다. 당시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차별적 발언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거리 연설을 비롯해 시민단체 노리코에넷을 설립, 자이니치와 소수자,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활동했다. 상대의 기에 눌리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게 조목조목 말하는 화법은 일본의 방송 토론 프로그램을 탔고, 지금까지 각종 SNS의 영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오는 11일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호루몽>은 자이니치 3세 신숙옥의 투쟁을 통해 재일동포 100년 역사를 조망한다. 영화 제목 <호루몽>은 간사이 지역에서 '버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불리던 곱창구이를 가리킨다. 일본인들이 먹지 않던 동물 내장을 주워 양념한 후 구워 먹던 음식이 훗날 대중적 음식이 되었듯이, 멸시의 땅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자이니치의 삶을 상징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신숙옥을 지난 4일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아트나인 테라스에서 인터뷰 했다.
신숙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통명(일본식 이름) 대신 본명인 신숙옥을 사용하기로 결심하며, 세상과 투쟁을 시작했다. "'숙옥'에는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훌륭하게 만든다'는 뜻이 담겨 있다며 자이니치 2세였던 아버지가 고민 끝에 붙인 한국식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신숙옥은 자이니치가 한국 이름을 숨기고 일본 사회에 일본인으로 스며드는 사정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일본 이름, 한국 이름, 여성인 것도 좋다. 한국인보다 조선인, 니이야마 세쓰코보다 신숙옥이 더 차별받는 이름이라, 오히려 신숙옥을 쓰고 있다. 나를 사랑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나를 버리면 누가 좋아해 줄까.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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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호루몽> 스틸컷 |
| ⓒ (주)엣나인필름 |
그는 "차별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일본 사회의 차별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자는 변하지 않는다"며 "일본은 식민지나 제국주의 역사를 분석하고 반성한 경험이 없어서 사회 뿌리부터 바뀔 수 없다"면서 보수적인 남성 집단의 성향을 설명했다.
이어 "자이니치 남성이라고 해서 일본 남성과 다르지 않다. 타인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봤고 당했던 거다.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이나 리더십을 교육받지 못했던 남성들은 가정폭력을 대물림한다"며 "자이니치 사회 내부에서도 차별이 비일비재하다"라며 젊은 세대의 인식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세대에서 한국 콘텐츠가 인기라도 젊은 자이니치의 차별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이지메(집단 따돌림), 레이시즘(인종차별)을 오락으로 소비한다. 정치인들은 경제, 정치적인 실패를 사회적 문제로 돌려 장기의 말처럼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신숙옥은 "어떤 방법이든 모녀 3대(외할머니, 어머니, 본인)의 비극을 기록하고 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다음 세대는 (차별 받지 않을 권리에) 무임승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윗세대들이 고생해서 일본 땅에 정착했다. 저도 힘들었고 다들 힘들었으니까, 미래 세대는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우리가 들었던 말처럼 '강하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건 도움 되지 않는다. 차별하고 차별받는 사회를 바꿔야만 한다. 더 나아지지 않는 세상에서 희망 없이 사는 일본 청년에게도 미안하다. 사람답게 살 권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라며 강한 책임 의식을 전했다.
이어 "연대가 필요하다. 약자끼리 손잡는 것보다 주류와 손잡고, 다양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다만 기대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해 주고 조금이라도 전진해야 한다"며 "이 문제가 내 세대에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힘들면 조금 쉬어도 되지만 포기하면 끝이다. 잊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숨죽이며 살아가는 자이니치들, 탓할 수 없어
끈끈한 연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신숙옥의 투쟁도 4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는 원동력으로 일본 사람들을 꼽았다.
신숙옥은 "자이니치 대부분이 두려움을 느낀다"며 "저와 같은 뜻을 품지 않는다고, 책임을 묻거나 탓할 수는 없다. 자이니치들은 일본 사람처럼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떠날 수 없고 여기서 살아가야만 한다. 혹시라도 직업, 가정이 노출되면 극우 집단에 공격받을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하며, 낙인찍힌다면 이중고를 겪게 된다"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사람'으로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게 된 셈이다. 늘 곁을 지켜준 든든한 동료가 있어 가능했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는 "지지자의 99%는 일본인이며, 이들 중에는 소수자도 많다. 장애인, 가난하고 힘든 사람, 오키나와 사람들, 아이누 민족 등이다"라고 말했다.
신숙옥은 30여 년 동안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역사 공부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며 작지만 큰 보폭으로 나아간다. 그럴수록 더욱 견고해진 보수층의 분위기는 자이니치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로 이어졌다.
그는 "한국 여성들이 유교적인 틀 안에서 여러 가지를 바꿔 왔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를 지나 전쟁, 군사독재, IMF 등 힘든 역사 위에 세워진 나라다. 세계 어디를 돌아봐도 유일무이한 역사다"라며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이 높아진 지금, 한국 앞에 놓인 과제는 여성차별이다. 작은 나라에 자원도 없지만 사람과 사상, 철학이 있으니 여성 인권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그러려면 여성 CEO가 많아야 하며, (부당하다고 느끼면) 참지 마라"라고 귀띔했다.
이어 "일본에서 여성이 일한다고 하면 어떠한 거래가 있었던 건 아닌지부터 의심한다. 추운데도 치마를 입어야 하고, 높은 힐을 신어야 하며, 상사에게 애교 섞인 말투를 보내야 한다. 나라가 만든 틀 안에 갇혀 살고 있다. 여성들이 곤란함을 혼자 짊어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SNS와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허위 정보가 사실처럼 유통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러한 혼란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을 물었다. 신숙옥은 "얼마 전 성매매 조사 차 어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놀랐다. 알고리즘으로 19금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SNS나 AI는 편리하고 쉽지만 감각을 마비시킨다. 왜곡된 정보를 '유튜브에서 봤다'는 이유로 사실로 받아들인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스트레스 받겠지만 진짜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며 연결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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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숙옥 인권운동가, 이일하 감독 |
| ⓒ (주)엣나인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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