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쇼크 땐 폭풍매수 국민연금, 블루쓰나미 땐 힘 못쓴 까닭

코스피가 지난 6일 장중 5000선 아래까지 밀리면서 연기금 역할론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올해 초 미국 관세 충격으로 주가가 출렁였을 때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안전판’ 역할을 했지만, 이번 하락 국면에서는 외국인 매도 규모에 견줘 매수세가 약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 비중을 충분히 낮추지 못한 국민연금이 하락장에서 매수 규모를 늘리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결과, 유가증권시장에서 6일 외국인이 2626억원을 순매도하는 동안 국민연금이 포함된 연기금 등(이하 연기금)은 290억원을 순매수했다. 연기금이 사들인 물량은 외국인 순매도액의 11%에 그쳤다. 개인 순매수액 508억원과 비교하면 57% 수준이다. 외국인 매도세가 거셌던 직전 5거래일(10월 30일~11월 5일)에도 양상은 비슷했다. 외국인이 9조3690억원을 파는(순매도) 동안 개인이 43%에 달하는 4조280억원을 사들이며(순매수) 매도 물량을 받아냈다. 이 기간 연기금은 1조4110억원을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4월 미국 관세 충격으로 코스피 2500선이 무너졌을 때와는 다른 흐름이다. 연기금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4일부터 이듬해 3~4월까지 관세 충격으로 증시가 추락했을 때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8조350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당시 외국인의 순매도액(약 19조1400억원)의 절반 가까운 규모이자, 개인 순매수액(약 1조8900억원)의 4배가 넘는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급락장에서도 연기금은 한 달 동안 코스피에서 약 3조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그해 1~2월 두 달간 순매수액은 3000억원에도 못 미쳤는데, 코로나19 충격이 증시를 덮친 이후 연기금은 매수 규모를 크게 늘리며 주가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번 급락장에서 국민연금의 추가 매수 여력이 과거보다 제한된 배경으로는 높아진 국내 주식 비중이 꼽힌다. 2024년 12월 말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1.5%로 당시 목표(15.4%)보다 3.9%포인트 낮았다. 지난해 말 18.1%로 높아졌고, 올해 1월 말에는 21.4%로, 20% 선을 넘어섰다. 주가 상승으로 보유 주식 평가액이 불어나면서 5월 말에는 29.4%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은 통상 국내 주식 비중이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 범위 상단을 넘으면 주식을 팔아 비중을 조정(리밸런싱)한다. 그러나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월 허용 범위 이탈에 따른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5월에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이고 허용 범위를 넓히는 한편, 하루 최대 조정 물량도 줄였다. 상승장에서 대규모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걸 막으려는 취지였지만, 국내 주식 비중이 높은 상태로 하락장을 맞으면서 추가로 사들일 여지가 줄었다.
코스피가 7.57% 급락했던 지난달 15일 ‘검은 목요일’에도 외국인이 3조6000억원 넘게 팔 때 연기금 순매수액은 350억원 수준에 그쳤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상승기에 국내 주식 비중을 줄였다면 시장 과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기금도 차익을 실현한 뒤 주가가 떨어졌을 때 다시 매수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며 “리밸런싱 원칙은 시장에 따라 판단이 흔들릴 때를 대비해 정해 둔 것인데, 이를 필요에 따라 흔들면서 연금 구조개혁의 골든타임까지 놓쳐버렸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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