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가에서 학살의 노래로... 우리가 몰랐던 기구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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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당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와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독립군가 다시 부르기'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얼이 담긴 노래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젊은 세대에게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친숙하게 알리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 노래의 가장 큰 의미는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하고 왕년의 독립투사들 상당수가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를 외치던 그 시절에 만리타향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 언제일지 모를 독립과 해방을 위해 일신을 바쳤던 광복군 소속 젊은이들이 짓고 만든 노래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당시 중국 대륙 깊숙한 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언젠가는 압록강 넘어 조국 땅으로 진군하리라 칼을 갈고 총을 겨누던 광복군들의 마음이 얼핏이나마 읽혀 가슴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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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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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국가보훈처에서 만든 '광복 60년 독립군가 다시 부르기 - 다시 부르는 노래' |
| ⓒ 국가보훈부 |
조관우, 서문탁, 크라잉넛, 하하, 김장훈 등 쟁쟁한 연예인들이 호응하여 일제 강점기 독립군들의 노래를 젊은이들의 귀맛(?)에 맞게 재해석해 냈다. 그중 개인적으로 특별히 귀에 꽂히는 노래가 있었다. 서문탁이 부른 <압록강 행진곡>이다.
이 노래는 1943년 광복군 군가집에 수록되면서 세상에 나왔다. 이 노래의 가장 큰 의미는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하고 왕년의 독립투사들 상당수가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를 외치던 그 시절에 만리타향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고, 언제일지 모를 독립과 해방을 위해 일신을 바쳤던 광복군 소속 젊은이들이 짓고 만든 노래이기 때문이다.
작사가 박영만은 1914년생, 작곡가 한유한은 1910년생이다. 박영만은 식민지 조선에서 꽤 이름을 날린 작가였지만 일제의 검열에 걸려 고초를 겪은 후 이광수 등 친일 문인들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돌렸다가 신변이 위험해지자 압록강을 넘었다. 작곡가 한유한은 다섯 살 때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조선을 떠났다.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윤봉길 의거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이후 광복군에 입대하여 1941년 오페라 <아리랑>을 작곡하고 <압록강 행진곡> <광복군 제2지대가> <조국행진곡> 등 다수의 광복군 군가를 작곡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당시 중국 대륙 깊숙한 곳에서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언젠가는 압록강 넘어 조국 땅으로 진군하리라 칼을 갈고 총을 겨누던 광복군들의 마음이 얼핏이나마 읽혀 가슴이 아린다. "우리는 한국 혁명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를 쳐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20대 중반에 일본 경찰에 쫓겨 중국으로 도망쳐야 했던 문인과 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나버려 조국을 눈에 담은 적도 거의 없을 작곡가는 그렇게 합을 맞췄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역사는 꽤 매정했다. 피어린 훈련을 받으며 미국 전략첩보국(OSS) 협조하에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치려던 광복군의 계획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수용하면서 물거품이 돼 버렸다. 이 <압록강 행진곡>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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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기획 '나의 독립 영웅'에 소개된 한유한(한형석) |
| ⓒ KBS |
전날 <동아일보>에는 이 <압록강 행진곡>이 한유한에 의해 '처음 공개된다'는 기사도 실렸다. 해방 후 37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광복군의 노래에서 우리 현대사의 기묘한 뒤틀림을 엿볼 수 있다. '처음'일 리는 없다. 그만큼 알려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기묘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사자 박영만은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한유한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감격의 지휘봉을 휘두르기 1년 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문장력 뛰어났던 박영만은 해방 이후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광복군을 주제로 한 소설도 여러 편 썼다. 그는 처세에도 꽤 능했던 것 같다. 5,16 군사정변 뒤 그는 '혁명 세력'에 접근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광복군 비밀 공작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퇴짜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1967년에 출간한 <광복군:운명편> 하편에서 그는 말 그대로 '소설'을 쓴다.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며 1945년 2월경 뜻이 맞는 한국인 동료들과 부대 안에 비밀조직을 만들고 훈련 때면 사병들에게 우회적 방식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했다고 쓴 것이다. 광복군 제3지대장이던 김학규 장군으로부터 "부대를 장악하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에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기 중이었는데 일제가 항복하면서 무산됐다고까지 했다. 분명히 '소설'이었는데 박영만은 이걸 박정희가 검수까지 해 주었다고 서문에 적었다. 박정희 본인은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는데 말이다.
문제는 이 '소설'이 육군이 발간한 공식 <창군전사>에도 "박정희가 '간도특설대에 장교로 근무하면서 비밀광복군이 되어 북경을 비밀리에 오가면서 활약했다'는 요지로 기록되는"(<조선일보> 1988년 2월 26일) 역사적 진실로 포장됐다는 데 있다. 1990년 방송된 KBS 다큐드라마 <여명의 그날>에도 '광복군 박정희'가 등장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것이다.
작사가가 어떤 생을 살았든 사실 노래와는 별반 관계가 없다. 적어도 그 노래를 지을 때의 박영만은 젊은 피가 끓었고 함께 부르는 청년들과 같이 목숨 바칠 각오도 충만했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서러운 일은 이 노래의 기구한 운명이다. 해방 이후 가사 몇 마디만 바뀌어, 사람들의 피를 끓게 하는 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의 피를 부르는 노래로 둔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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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소련군 철수 집회를 벌이는 서북청년단. 서북은 평안도만이 아니라 함경도, 황해도 등 이북 지역 전역을 뜻했다. |
| ⓒ 위키미디어 공용 |
이 청년들을 묶어 세운 사람 중에는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도 있었다. 월남민이었던 그는 "공산주의 이야말로 일대 괴물이다. 이 괴물이 지금 삼천리강산에 횡행하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이 괴물을 벨 자 누구인가? 이 사상이야말로 묵시록에 있는 붉은 용이다. 이 용을 멸할 자 누구인가?"(<평화나무>, 2019년 4월 3일)라고 설교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겼다. 심지어 "'서북청년단가(團歌)'는 한경직이 지어 줬다"(<제주의소리>, 2022년 1월 7일)는 주장도 있다. 서북청년단이 독살스럽게 부른 노래의 가사는 놀랍게도 이것이었다.
"우리는 서북청년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38선 넘어 매국노 쳐버리자
진주 같은 우리 서북(西北)이 지옥이 되어 /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 등잔 밑에 우는 형제가 있다."
서북은 그들에게 잃어버린 땅이자 지옥이 됐고 그 땅을 차지한 공산주의자는 일제 이상의 원수로 치환되며 압록강과 백두산 넘듯 38선 넘어가 쳐부숴야 할 매국노가 됐다. 그리고 그 '지옥'을 남한에서 만들려는 자들은 자동적으로 매국노고 악마가 됐다. 서북청년단은 왕년의 광복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원수'를 찾아다니게 된다. 원수, 악마, '붉은 용'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그 노래가 울렸다.
서북청년단은 경찰이나 군대가 직접 하기 어려운 지저분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으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품은 적개심을 빨갱이들에게 쏟아부었다. 그 일의 절정이 제주도에서 이뤄진다. 그들은 빨갱이에 대한 적개심을 사탄에 대한 그것과 동일시했다.
사람의 가슴에 죽창을 박으면서도 '하나님!'을 부르짖었고 사람을 태우면서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를 불렀다. 그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지만 그들은 가장 비기독교적으로 사람을 학살했고 열정적인 신앙으로 십계명을 어겼다. 그들의 노래가 광복군가의 가사와 곡조였다는 사실은 이 얼마나 슬프고도 역겨운가.
다시금 서문탁의 노래 <압록강 행진곡>을 듣는다.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지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제나저제나 조국을 찾을 무장 투쟁에 투입돼 시원하게 싸워 볼 것인가 입술 깨물던 사람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맨손으로 귀국해야 했던 사람들의 굵은 눈물. 그리고 똑같은 곡조의 노래 앞에서 '서북 청년단 온다'고 혼비백산, 흙 속에 머리 박고 오들오들 떠는 꿩 같은 신세가 되어 흘렸을 사람들의 피눈물. 그 모두가 아직 우리 발밑의 지하수로 흐르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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