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클래스 꿈꾼 ‘국대 AI’…제2의 한컴 되려나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6. 11. 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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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AI 투트랙 전환에 정책 혼선 논란
글로벌 기술 경쟁서 밀리는 한국형 AI
공공 수요 안주하면 제2한컴 전락 우려
산업 특화·민간 투자로 해외 시장 뚫어야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 8월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독자 인공지능 파운데이션모델 사업(독파모)’ 2차 단계평가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가대표 인공지능(AI)’ 육성 전략을 전면 수정하며 한국형 AI의 미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최상위 AI 모델 개발을 별도 사업으로 분리하고, 기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은 산업·공공 현장 보급에 무게를 두기로 하면서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로 국산 AI를 확보하더라도 해외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공 수요에 의존하는 ‘내수용 AI’로 전락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무대는 ‘프런티어 AI’ 몫?
선발 중인 ‘국대 AI’는 어디로
최근 정부가 5300억원을 들여 추진해온 독파모 사업의 방향이 달라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월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독파모와 프런티어 AI 개발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발표했다. 기존 독파모 사업의 평가와 지원을 유지하며 초고성능 모델 개발을 위한 프런티어 AI 사업을 추가하기로 한 것. 다만 독파모의 산업·공공 활용을 강조하면서 글로벌 기술 경쟁을 위한 정책의 무게중심이 새 사업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기존 독파모 사업은 예정대로 3차 평가를 진행한다. 지난 8월 2차 평가를 통과한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등 3개 팀 가운데 내년 2월 최종 2개 팀을 선정할 예정이다. 새로 추진하는 프런티어 AI 사업에는 내년 정부 예산안 기준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최상위 AI 모델 개발을 위해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 전환 배경에는 예상보다 빠르게 벌어지는 글로벌 기술 격차가 있다. 애초 정부는 독파모 사업을 통해 최신 글로벌 최상위 모델의 95% 수준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AI 모델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며 기존 지원 규모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부가 결정적인 계기로 지목한 것은 지난 4월 미국 앤트로픽의 최상위 AI 모델 ‘미토스 프리뷰’ 등장이다. 앤트로픽은 강력한 사이버 공격 역량에 따른 보안 위험을 이유로 해당 모델의 제공 대상을 제한했다. 이후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까지 더해지며 최첨단 AI 기술에 대한 접근이 국가 안보와 통상 정책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투트랙 전략의 실효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독파모와 프런티어 AI가 본질적으로 같은 기술을 개발하면서도 별도로 구분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물론 독파모가 곧바로 내수 전용 사업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최종 선정되는 2개 팀에도 그래픽처리장치(GPU)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독자 AI와 프런티어 AI를 왜 구분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두 개념이 본질적으로 다른 목표인지, 정부가 이런 구분을 제시한 배경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0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두 사업을 분리한 배경에 대해 ‘특정 기업 혜택 집중(몰아주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독파모 사업에서 기업에 지원하는 GPU 약 1000장이 프론티어 AI 사업을 통해 1만장 이상으로 늘어나면, 특정 기업에 대한 몰아주기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이에 정부는 별도 사업 공고와 출자 방식으로 설계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평가 1등이 세계 1등?
공공 수요 안주하면 ‘제2 한컴’
국가대표 AI를 둘러싼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 개발 이후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독자 모델을 확보하더라도 해외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물론 한국 AI의 기술적 성과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글로벌 AI 평가기관 아티피셜 어낼리시스는 8월 독파모 2차 평가 이후 한국 모델을 미국과 중국 이외 국가에서 개발된 모델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이외 국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미국 빅테크는 AI 모델뿐 아니라 클라우드, 개발자 도구, 업무용 소프트웨어, 글로벌 판매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AI 모델 성능이 앞서더라도 고객이 기존 업무 환경을 바꿀 만큼 확실한 이점이 없다면 새로운 공급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은 기술적 역량을 입증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은 성능뿐 아니라 가격, 안정성, 보안, 판매망을 함께 갖춰야 확보된다”고 지적했다.

기존 독파모의 ‘평가 방식’이 내수 지향적인 모델 개발을 유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명주 AI안전연구소장은 “독파모 2차 평가 100점 중 글로벌 성능 평가는 25점이고 75점은 국내 전문가·이용자 평가”라며 “국내 평가 비중이 높을수록 모델은 국내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춰진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신뢰성과 안전성을 국제 기준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국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도 해외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독파모 사업 참여사는 평가 기준을 정하는 회의에서 3차 평가에 ‘더블 블라인드’를 도입할지 협의 중으로 전해진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려면 개발사 정보를 가려야 한다는 취지다.

정부 주요 AI 사업 추진 현황. (챗GPT 그래픽)
전문가들은 독파모가 산업·공공 현장 보급에 무게를 두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내수 시장 중심 사업은 양날의 검이다. 공공기관 납품만으로 일정한 매출을 확보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해외 시장에 도전할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 대표 사례가 ‘제2의 한컴오피스’다. 한컴오피스는 한국의 대표적인 국산 사무용 소프트웨어다. 공공기관과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폭넓게 사용되며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글로벌 오피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제한적인 성과를 거뒀다. 공공 수요가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제공했지만, 그것만으로 해외 시장 진출까지 보장하지는 못했다. 김명주 소장은 “한컴오피스의 교훈은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공공 조달이 매출을 받쳐주고 국내 전용 규격이 진입 장벽이 되면서 세계로 나갈 이유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AI 시장 뚫을 승부수는
산업 특화·민간 자본에 달렸다
한국 AI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은 뭘까. 전문가들은 ‘산업 특화 전략’을 꼽는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범용 AI 시장에서 정면 대결하기보다 한국이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산업에 AI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제조업과 방산, 조선, 반도체 공정 등에서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하면 글로벌 빅테크와 차별화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원 교수는 “한국의 국가대표 AI는 범용 오픈웨이트·오픈소스 모델로서 미국·중국과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경쟁 우위 요소를 갖고 있지 않다”며 “한국이 수출을 잘하는 K-방산, 반도체·자동차 첨단 공정, 피지컬 로봇 등과 결합한 부품형 AI에서는 일정 수준의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가 프런티어 AI 개발에 4조7000억원을 편성했지만, 이는 지속적인 모델 개발에 필요한 전체 투자 규모를 보장하는 자금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정부 재정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장기 경쟁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민관 투자 유인을 높이려면 지식재산권, 수익 귀속 구조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GPU 배분 기준과 안전성 평가 체계를 공개하고, 해외 고객을 확보한 실적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장동인 KAIST AI대학원 교수는 “정부 지원은 초기 기술 위험과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시장 검증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투자 유치를 위한 가장 강한 설명은 국가대표로 선정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고객이 우리 제품을 선택하고 있으며 그 선택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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