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헌의 단상] 미래기금, 노르웨이가 남긴 교훈

한창헌 기자 2026. 11. 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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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미래대응기금을 미래를 위해 남겨둘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미래대응기금은 국가의 재정철학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목적이 바뀌고, 재정이 부족할 때마다 꺼내 쓰는 돈이 된다면 미래대응기금은 미래를 위한 자산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예산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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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AI), 청년, 지방, 교육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재정계정을 만드는 것이 맞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이 논쟁의 본질은 기금 162조원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미래대응기금을 미래를 위해 남겨둘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국회 재경위에서 열린 미래기금 관련 공청회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르웨이 국부펀드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노르웨이는 1970년대 북해에서 석유를 발견하며 막대한 부를 얻었다. 진정한 성공은 석유에 있지 않았다. 석유를 캐낸 국가들은 많았지만, 노르웨이처럼 3천20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만든 나라는 찾기 어렵다. 노르웨이는 석유 수입을 곧바로 국내에 풀지 않았다. 대부분을 해외자산에 투자했고, 원금은 건드리지 않은 채 운용수익만 활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정치권이 바뀌어도 이 원칙은 유지됐다. 국민들은 석유를 현재 세대의 보너스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자산으로 인식했다.

노르웨이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석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석유가 없어도 부유한 나라는 많다. 오히려 너무 많은 석유와 광물, 가스 때문에 경제가 흔들린 나라들도 있다. 네덜란드의 사례다. 이 국가는 1960년대 발견한 천연가스전으로 홍역을 치렀다. 천연가스 호황으로 벌어들인 돈을 대거 풀면서 물가가 치솟았다. 덩달아 통화가치도 급격히 오르면서 오랜 시간 제조업 경쟁력 약화라는 후유증을 겪었다. 이른바 '네덜란드병'이라 불리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남미의 칠레는 이 함정을 피해 간 대표적 사례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구리 가격이 오를 때마다 정부가 흥청망청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구조적 재정준칙을 통해 경기와 원자재 가격 변동을 제거한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했고, 초과 수입은 별도 안정화 기금에 적립했다. 덕분에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거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다른 국가들보다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남부의 보츠와나도 주목할 만하다. 다이아몬드 수출국인 보츠와나는 1990년대부터 퓰라(Pula) 펀드를 조성해 광물 수익 일부를 미래 세대를 위해 축적했다. 펀드의 설립 목적 자체가 '다이아몬드 수입을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 알래스카 사례 역시 흥미롭다. 1970년대 유전개발로 막대한 수입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헌법까지 개정해 석유 수입의 일정 부분을 영구기금으로 적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알래스카 주민들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석유는 언젠가 고갈되지만, 자산은 영원히 남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석유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전환했다.

같은 시기 풍부한 자원을 가졌던 국가들이 반드시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 일부 국가는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복지와 현금성 지출 확대에 집중했다. 정치권은 미래보다 선거를 선택했고, 국민들은 성장보다 분배를 먼저 요구했다. 원자재가격이 오를 때는 문제가 보이지 않았지만,사이클이 꺾이자 재정은 크게 흔들렸다. 의외로 위기는 호황이 끝난 뒤 찾아온다.

결국 미래기금 성공 사례들의 공통점은 자원이나 산업, 돈이 아니라 제도에 있다. 국부펀드를 잘 만들고, 나름의 재정준칙을 정하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당장의 유혹을 통제하는 정치적 합의다. 미래세대를 위한 자산이라는 명분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을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만이 최근 '반도체 네덜란드병' 논란에 휩싸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TSMC라는 세계 최강 기업을 보유했지만 한편으로는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지금은 AI 혁명 덕분에 반도체가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지만,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언제든 새로운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AI 수요를 등에 업은 반도체는 지금 한국 경제가 가진 가장 강력한 성장엔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AI 메모리 생태계는 향후 수년간 막대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과실인 세금과 기금을 모두 소비와 이전지출, 단기 경기부양에 사용한다면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시작한 기금이 결국 현재의 재정 부족을 메우는 수단으로 변질할 수도 있다.

미래대응기금은 국가의 재정철학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진짜 중요한 건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그 돈이 여전히 미래를 위해 존재하고 있느냐다. 운용 철학과 원칙이 중요한 이유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목적이 바뀌고, 재정이 부족할 때마다 꺼내 쓰는 돈이 된다면 미래대응기금은 미래를 위한 자산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예산에 불과할 것이다. 노르웨이는 석유를 자산으로 바꿨고, 칠레는 구리를 기금으로 바꿨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를 미래세대의 저축으로 만들었고, 알래스카는 유전을 영구기금으로 전환했다. 그들이 특별히 더 많은 자원을 가진 것도 있지만, 결국 미래기금의 성과는 정치적 독립성과 절제를 담은 운용원칙이 좌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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