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기를 보고도 다른 평가, 이래서 그랬나 [배우들끼리 독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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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 결국 연기 지침서로 읽어버리는 배우들의 독서모임 이야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감정 표현을 업으로 삼는 배우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책이다.
서구슬 배우는 책을 읽으며 감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감정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책이었지만, 그 너머에는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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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 결국 연기 지침서로 읽어버리는 배우들의 독서모임 이야기. <기자말>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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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표지. |
| ⓒ 생각연구소 |
리사 펠드먼 배럿은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감정에 대한 고전적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의 견해에서는 슬프면 울고, 행복하면 웃으며, 두려우면 심장이 뛰는 것처럼 감정마다 고유한 표정과 신체 반응이 있다고 여겼다.
이 책의 핵심인 '구성된 감정 이론'은 감정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뇌가 몸의 상태와 과거의 경험, 현재의 상황을 종합해 구성된다고 본다. 심장이 빠르게 뛸 때 위험한 상황이라면 두려움을 느끼지만,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라면 긴장이나 설렘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같은 신체 반응도 상황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다양성이 표준이다"(66p)라고 말한다.
"감정은 우리가 만들어낸다. 우리는 감정을 인식 또는 확인하지 않는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다."(97p)
경험이 연기의 깊이를 만든다
정다은 배우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뇌가 외부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측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현재의 감정을 구성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흔히 '잘 놀아본 사람이 연기를 잘한다', '상처와 아픔이 많은 사람이 연기를 잘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경험이 많을수록 연기도 잘할 수 있을까? 그는 경험의 양보다 자신이 겪은 일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연기에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힘바족의 감정 인식 실험도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서양인들이 분노라고 해석한 표정을 힘바족은 슬픔이나 공포로 받아들이는 등, 같은 표정도 문화와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했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감정과 표정을 정해진 공식처럼 연결하기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상대와의 관계를 먼저 살펴야겠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위안이 되었던 문장도 소개했다.
"사람들은 실제로 잘할 수 있을 때도 절망감과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157p)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기에, 이제는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그동안 노력해 온 시간도 인정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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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내용 중에 |
| ⓒ 정다은 |
최선한 배우가 주목한 개념은 '감정 입자도'였다. 감정에 관한 단어를 다양하게 알고 구체적으로 표현할수록 감정을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릴 적 부모님이 '짜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고 한다. 짜증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라는 가르침이었다.
불안과 우울의 차이를 읽으며 자신이 불안이라고 여겼던 감정이 어쩌면 우울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돌아보기도 했다. 오디션을 앞둔 긴장과 불안도 '굳은 결심'으로 바꿔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로 삼고 싶다고 했다.
"감정은 세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감정은 당신이 구성하는 세계의 일부다."(206p)
사람마다 경험과 관점이 다르기에 같은 상황에서도 감정은 다르게 만들어진다. 최선한 배우는 이 생각을 배우와 관객의 소통에 연결했다. 같은 연기를 보고도 평가가 다른 이유 역시 각자가 살아온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당신과 친구가 동기화된 개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187p)는 문장에 주목했다. 서로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언어가 있어야 마음을 제대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해하지 못한 감정 앞에서
이연신 배우에게는 '정동'과 '경험맹'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정동은 유쾌함과 불쾌함, 평온함과 동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가장 기본적인 느낌으로, 감정 그 자체와는 다르다. 또 다른 개념인 '경험맹'은 어떤 경험을 적절한 개념으로 범주화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배우에게는 두렵게 다가오는 말이었다고 했다. 배역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연기할 수 있을까.
그는 그동안 연기를 하면서 감정이 따라오지 않을 때면 불안해지곤 했다고 한다.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정작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이 표현해 온 것이 감정이 아닌 정동에 머물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고, 인물의 삶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체화하는 과정이 감정을 구성하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다.
한편 '칩 부재감'이라는 개념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포테이토칩 봉지의 마지막 한 조각을 먹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과 안도감, 죄책감과 갈망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가리킨다(267p). 그는 살면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앞에서 여러 번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결국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감정마저 포기할 때가 있었다. 그런 마음에 이름을 붙여준 것 같아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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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 역시 인물을 미리 설정한 하나의 방향 안에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았다고 한다. |
| ⓒ seemurray on Unsplash |
이러한 관점은 자신의 대본 분석 방식에도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대사의 서브텍스트와 인물의 서사를 세세하게 분석했지만, 이후 큰 목적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듣고 통목적을 중심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그후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고민에 부딪혔다. 큰 목적에 집중한 나머지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다양한 결을 놓친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뇌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실제 정보에 따라 그 예측을 수정한다는 대목에서도 연기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자신 역시 인물을 미리 설정한 하나의 방향 안에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았다고 한다. 연기를 돌아보고 수정하며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쌓여 배우의 내공을 만들어간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당신은 예측하고 구성하며 행동한다. 당신은 당신 경험의 설계자다."(288p)
그는 어부처럼 그물을 넓게 펼쳐왔다면, 이제는 그물에 걸린 것들을 살피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걸러낼지 고민하고 싶다고 했다. 영화 <쿵푸팬더>의 주인공처럼 끊임없이 훈련하고 실패하며 다시 도전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이해하는 폭도 넓혀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내 경험의 설계자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경험이 한 사람의 삶에 남기는 흔적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과거에 무엇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앞으로 마주할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느꼈다.
오랫동안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왔다. 흔히 삶의 태도에 관한 조언으로 여겼지만, 이 말은 뇌의 작동 원리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뇌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범주화하고, 그 범주를 토대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감정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유년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어린 시절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경험한 기억은 한 사람의 내면에 오래도록 남는다. 이러한 기억은 훗날 낯선 상황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기준이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의 좋은 경험은 더없이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어떤 경험을 쌓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여기서 좋은 경험이란 즐겁고 행복한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힘든 일을 겪고도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섰던 경험 역시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고, 이전과는 다른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막연하게 믿어왔던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뇌의 작동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믿음에 나름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감정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책이었지만, 그 너머에는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른 감정을 경험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정에는 정답이 없으며, 지금의 나 역시 지나온 경험들이 빚어낸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미래의 나는 아직 만들어가는 중이다. 결국 나는 내 경험의 설계자다.
배우들의 독서클럽 아홉 번째 선정 도서는 천선란 작가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다. 선정자인 정다은 배우는 우연히 접한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어 이 책을 자신의 최애 책으로 꼽았다고 한다. 세상의 끝에서도 끝내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시선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구성하는 법을 탐구했던 배우들은 이제 아무도 오지 않는 세상의 끝에서 어떤 사랑을 발견하게 될까?
독서 토론일 : 2026년 10월 27일
선정 도서 :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선정자 : 서구슬
참석자 : 정다은, 최선한, 이연신, 서구슬, 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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