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이야기] 2시간 반 출근 포기한 가장... 안산에서 혼자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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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두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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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두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남편 입장에서 주말 부부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신재호 기자]
영국의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는 "낯선 곳에서 홀로 깨어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감각 중 하나다"라는 말을 남겼다. 20세기 초 서양에 중동의 오지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데, 익숙지 않은,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수없이 많은 아침을 맞이했을 텐데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타고난 탐험가가 아닐 수 없다.
의도치 않게 나고 자란 곳에서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인근으로 다녔고, 아내 역시 같은 동네 사람을 만나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다. 유일하게 낯선 곳에서 살아본 건 철원에서의 군 생활 2년 6개월뿐이었다. 전국으로 발령 날 수 있는 직장에 들어왔음에도 운이 좋았는지 20년 동안 다른 지역에 근무하지 않았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올해 초 인사 때 당연히 현 근무지에 잔류하겠거니 하며 신경도 쓰지 않았건만 덜컥 안산으로 발령이 났다. 충격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떠나야 할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그렇게 올해 초부터 안산살이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2시간 반이 걸리는 출퇴근길을 기를 쓰고 다녔다. 서둘러 퇴근해도 집에 오면 저녁이 다 되어 녹초가 되었고, 식사를 마치면 서둘러 자기 바빴다. 그렇게 한 달을 다니고 나니 살이 3kg이나 빠졌다.
이렇게는 지낼 수 없겠단 생각이 들어 아내와 상의 끝에 사택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을 떠나 처음 혼자 사는 것이 두렵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걱정도 되긴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년만 근무하면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기에 희망을 품고 버텨보기로 했다.
처음 사택에서 잠을 잔 날을 잊을 수 없다. 지은 지 20년도 넘은 빌라에 난방도 잘 되지 않아서 밤새 떨다가 간신히 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애석하게도 프레야 스타크처럼 낯선 곳이 주는 기분 좋음은 전혀 없었고 온몸을 누가 두들겨 때린 듯 쑤시고, 집에 가고픈 열망이 가득했다.
아침뿐만 아니라 퇴근 후 사택에 가면 고독이 차올라 몸 둘 바를 몰랐다. 집이라면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내와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저녁을 맞이했을 텐데 말 한 마디 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건 생애 처음 겪어본 외로움이었다.
한 달은 그렇게 쓸쓸함을 그대로 받으며 지냈다. 이러다 우울증이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눈에 띄게 말수도 줄고, 낯빛도 주변에서 느낄 만큼 어두워졌다. 어느 날 문득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택에 있기보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라도 구경하면 마음이 나아질 것 같았다. 옷을 챙겨 입고 천천히 동네 산책을 나섰다.
익숙지 않은 도시에서 발견한 쏠쏠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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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택 인근 월피예술 도서관 사택 인근에 근사한 도서관 있다 |
| ⓒ 신재호 |
다음 날 점심도 안 먹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 뒤로 도서관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퇴근 후 가방 안에 책과 노트북을 넣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썼다. 3층엔 식사하는 공간도 조성되어 있어 가는 길에 꼬마 김밥을 사서 가면 저녁도 해결되었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근무하고 있는 동료 덕분에 사택 앞에 바로 안산천이 흐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 마침 러닝에 취미를 붙이는 중이라 바로 가보았다. 신호등 2개만 건너면 바로 있었다. 뛰는 공간이 넓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저녁엔 가로등도 잘 되어 있어 뛰기 최적이었다. 이곳에 올 줄 모르고 1년 연장했던 동네 헬스장 생각이 났다. 대신 이곳에서 뛰면서 건강을 챙기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 2회는 꼬박 뛰었고,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하프마라톤도 완주하게 되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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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경이 좋은 안산천 야경이 좋은 안산천에서 러닝을 한다 |
| ⓒ 신재호 |
내가 꿈꾸었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늘 사람들에게 은퇴 후에는 어디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 이곳이 그랬다. 고요함에 적응되면서 혼자 하는 일에도 익숙해졌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집에 가면 곳곳에 들리는 소음으로, 빨리 사택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다 한 대 맞을 때도 있었다. 막연했던 은퇴 후의 꿈꾸는 삶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겠단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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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랑 유원지 내 경기 미술관 화랑 유원지 내 경기 미술관이 있다. |
| ⓒ 신재호 |
어느 순간 습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이곳 너무 좋지 않아?", "진짜 나중에 여기서 살고 싶다"란 말을 늘어놓는 '나'를 발견한다. 빈말은 절대 아니었다. 이곳에서 누리는 고요함, 천천히 흘러가는 삶이 좋았다. 주변에 펼쳐진 자연은 늘 품고 살던 긴장감을 무장 해제시켰다. 이제야 조금 프레야 스타크가 말한 낯선 도시가 주는 기분 좋은 설렘을 알 것도 같다.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낯선 도시에서도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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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랑 유원지 내 호수 화랑 유원지 내 근사한 호수가 있다. |
| ⓒ 신재호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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