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주가만 챙기던 나, 말문 막히게 한 아이의 질문

안유림 2026. 11. 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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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현실은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가 살아갈 다음을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아이가 보챌 때마다 "다음에"라는 말로 넘기곤 한다.

나는 집값과 주가는 매일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이 믿는 '다음에'를 지키러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의 일터가 어떤 돈으로 돌아가는지는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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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수업료] 아이를 키우며 뒤늦게 마주한 사회의 민낯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유림 기자]

분리수거를 대충 해 놓으면 남편이 묻는다.

"이렇게 대충 할 거야?"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아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 안 하는 거야?"

나는 입을 닫는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으니까.

'미래'는 내 눈앞에 있다. 여섯 살 아들이라는 모습으로. 그 미래는 매일 키즈노트 알림장 사진으로 온다. 사진을 보면 입이 먼저 웃는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내 주가가 떨어지든 말든 상관없다. 아이는 나에게 '크확행'이다. 크고 확실한 행복. 그런데 이 크고 확실한 행복은 오늘의 나만 좋고 끝나는 행복일까.

사람을 보는 눈, 사회를 보는 눈
▲ 가족 단풍놀이 가족 단풍놀이
ⓒ unsplash
엄마가 되고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을 보는 시선이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나면 예전에는 속으로 바로 욕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번 더 생각한다. 저 사람도 누군가를 키우는 중이겠지, 저 사람도 아직 크는 중이겠지.

시선은 사회로도 넓어졌다. 예전에는 미래 세대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그냥 넘겼는데, 이제는 멈춰서 읽는다. 올해 1~9월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이 11만 6천 명으로,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이후 가장 작았다는 통계(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도 읽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오늘의 일자리 걱정이 아이가 큰 뒤의 걱정이 될 수도 있다. 당장 내 소득도 중요하지만, 더 살 만하고 기회가 많은 사회를 바라게 되는 이유다. 내 아이가 살아갈 사회니까.

지난 10월 회식 자리에서, 아이 둘을 키운 선배 워킹맘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낳아야지. 세수가 부족해. 어서 낳으시오."

반면, 같은 자리에 있던 후배는 주말마다 아이와 놀아줄 시간도 체력도 모자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 사람에게 아이는 다음 세대의 세수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지난 주말의 미안함이다. 현실은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가 살아갈 다음을 생각한다.

다음을 생각하는, 노력

아이를 키우며 사소한 규칙 앞에서도 멈칫하게 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다가도 아이에게 "약속은 지켜야지"라고 말하는 내가 떠올라서다. 아이에게는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아이가 보챌 때마다 "다음에"라는 말로 넘기곤 한다. 그러면 아이가 되묻는다.

"엄마, 다음에 하자 그랬잖아? 지금이 다음이 아냐? 왜 안 해?"
"다음에 하자." "다음에 다시 오자." "다음에 보자."

들어주기 힘들어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다. 어른은 내뱉고 잊어도 아이의 기억에는 남는다. 아이들은 '다음에'를 믿는다. 어른에게는 미루는 말이지만 아이에게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엄마, 다음에 또 오자! 다음에 또 할래!"

어른이 말하는 '미래'가, 아이에게는 '다음에'다. 약속이 지켜질 시간을 믿고 기다리는 말이다. 그 '다음에'를 한 편지에서 다시 만났다. 10월 16일 부천의 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의 여섯 살 딸이 쓴 편지다. 아빠를 잃은 아이는 편지에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라고 썼다. 그땐 자기가 아마 어른이 됐을 때일 거라고도 했다.

읽다가 눈물이 났다. 내 아들과 같은 여섯 살이었다. 아빠는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20여 분 앞두고 화재 소식에 소방차에 올랐다고 한다. 그가 꿈꾸던 미래에는 언제나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의 '나중에'를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다. 어른들에게는 어린아이의 희망 섞인 말로 보일지 몰라도, 그 아이에게 '나중에'는 언젠가 반드시 도착해야 할 진짜 시간일 테니까. 어른들이 할 일은 그 '나중에'를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때로 만드는 것 아닐까.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소방안전교부세는 7605억 원으로 올해보다 27.6% 줄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 교부세는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 총액의 45%를 재원으로 한다. 행정안전부는 이 감소에 담배 판매량 감소에 따른 세수 전망과 지난해 실제 세입 정산 결과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최종 금액은 국회 예산 의결 뒤 12월 말에야 확정된다(행정안전부 10월 26일 보도설명자료). 담배가 덜 팔리면 소방 재정도 줄어드는 구조다. 불을 끄러 가는 일은 생명을 거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떠받치는 돈이 담배 판매량에 달려 있다.

나는 집값과 주가는 매일 들여다보면서, 아이들이 믿는 '다음에'를 지키러 현장에 나가는 사람들의 일터가 어떤 돈으로 돌아가는지는 이제야 알았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라면 진작 알았어야 했다는 생각에 부끄럽고, 책임감도 느낀다. 이대로 두어도 되는지 묻고, 바꿔야 한다면 바꾸자고 말하는 것까지가 이제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분리수거를 대충 해놓고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어른이지만, 서툴러도 조금씩 익어가는 쪽에 서려 한다.

워킹맘으로 살며 치른 수업료로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다음에'라는 말의 힘이다. 다음에 만나, 다음에 하자, 나중에 또 오자. 이 말은 진짜여야 한다. 그래서 분리수거 하나도, 일자리 뉴스도, 소방관의 순직 소식과 소방 재정 뉴스도 당장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믿는 '다음에'가 진짜일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다음에'를 말할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 "다음에 또 오자"라고 말할 아이를 낳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 것. 그렇게 사회가 다음을 생각할 힘을 잃는 것. 그게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다음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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