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핀 ‘여섯 송이 꽃’…훈맹정음 100년, 점자 교실 가보니

유정민 2026. 11.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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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4층 실로암점자도서관에서는 점자 수업이 한창이었다.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점자교육팀 관계자는 "중도실명자는 50대 이상이 많아 손 감각이 무뎌 점자를 익히기 어렵다"며 "당뇨로 실명한 경우 손끝 감각이 특히 약해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수업을 맡은 박민성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팀 교정사는 "점자가 어렵다 보니 찾는 사람이 적고, 찾는 사람이 적으니 만드는 사람도 적다"며 "음성 기기만으로는 정독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점자 용품들의 접근성이 좋아져서 두 수단이 상호보완적으로 쓰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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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기기 보편화에도 점자 찾는 이유…“스스로 읽고 생각할 수 있어”
점자 배우는 중도 실명자들…생활 속 점자 표기는 여전히 부족
3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로 떠나보는 빵의 세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정민 기자
“송암 박두성 선생님은 점자를 ‘육화(六花)’라고 불렀대요. 한글 점자에 사용된 6개의 점을 꽃에 비유한 거죠”

3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4층 실로암점자도서관에서는 점자 수업이 한창이었다. 강사의 말에 시각장애인 수강생 3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강생들은 책상 위에 교재를 펴고 그 위에 손끝을 올렸다. 교재에는 그림 없이 볼록한 점만 빼곡했다. 도서관 한편에는 점자 라벨기와 점자정보단말기, 스마트 점자학습기 등이 놓여 있었다.

이날 수업은 ‘점자로 떠나보는 빵의 세계’ 14차시 과정 중 11번째 시간이었다. 한글 점자 기초를 익힌 중도 시각장애인이 빵에 얽힌 이야기와 요리법을 점자로 읽으며 독해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중급 과정이다. 점자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빵을 주제로 정했다. 이날 교재에는 ‘페이스트리가 부푸는 이유’와 ‘호빵과 찐빵의 차이’ 등이 담겼다.

3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로 떠나보는 빵의 세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정민 기자
수강생들은 교재 대신 정면을 바라본 채 왼쪽 검지로 점자를 한 줄씩 훑으며 요리법을 소리 내 읽었다. 읽는 속도는 저마다 달랐다. 막힘 없이 읽어 나가는 수강생이 있는가 하면, 한 줄을 건너뛰어 강사가 위치를 다시 짚어주는 수강생도 있었다. 강사는 수강생들이 스스로 읽어낼 때까지 기다렸다.

4일은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6점식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반포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훈맹정음은 지난 1926년 11월4일 세상에 나왔다. 세로 3개, 가로 2개로 배열된 6개의 점을 조합해 한글 자음과 모음을 나타낸다. 어느 자리의 점이 튀어나왔는지 손끝으로 확인해 글자를 읽는 방식이다.

수업 중간에는 점자프린터를 쓰는 시간도 있었다. 수강생들이 기기에 종이를 끼운 뒤 빵과 관련된 문제의 답을 한 자씩 입력하자, 타자기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출력한 종이를 손끝으로 다시 확인하던 한 수강생은 ‘버터’를 ‘버타’라고 잘못 쳤다며 웃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음성 지원 기기가 보편화된 지금도 점자만의 역할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월부터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시각장애인 이건범(61·남)씨는 “3년 전에 돌발성 난청으로 왼쪽 청력을 잃었다”며 “오른쪽 귀마저 안 들리면 소통할 장치가 없어진다는 절박한 마음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음성 기기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주지만, 점자는 내 속도에 맞춰 읽고 생각할 수 있어서 자기 주도적인 느낌이 들어 좋다”고 덧붙였다.

3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로 떠나보는 빵의 세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정민 기자
중도 시각장애인 신숙영(53·여)씨는 “책을 직접 읽고 싶어서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귀로 듣는 것과 손으로 읽으며 생각하는 건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일상에서 점자를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터치식 인덕션은 전원 버튼과 온도조절 버튼을 손으로 구분할 수 없고 간장과 식초처럼 생김새가 비슷한 양념통에는 점자 표기가 없다는 것이다. 신씨는 “가전제품 버튼이나 양념통에도 점자나 점형 스티커가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점자를 접할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 국립국어원의 ‘2025 국민의 점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응답자 500명 중 52%가 현재 점자 서비스가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점자를 사용할 때 어려운 점으로는 ‘점자가 제공되지 않는 환경’, ‘점자 자료 부족’, ‘사용 미숙’ 등이 꼽혔다.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도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 정도가 심한 시각장애인(전국 추정 5만4793명) 중 83.6%는 점자를 해독하지 못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구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로 떠나보는 빵의 세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유정민 기자
특히 성인이 된 뒤 시력을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는 넘기 어려운 벽이다.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점자교육팀 관계자는 “중도실명자는 50대 이상이 많아 손 감각이 무뎌 점자를 익히기 어렵다”며 “당뇨로 실명한 경우 손끝 감각이 특히 약해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강생들이 점자에 흥미를 갖고 배우려면 생활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곳이 많아야 한다”며 “보조공학기기 등 지원으로 교육 환경도 나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훈맹정음의 다음 100년을 위해서는 점자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수업을 맡은 박민성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팀 교정사는 “점자가 어렵다 보니 찾는 사람이 적고, 찾는 사람이 적으니 만드는 사람도 적다”며 “음성 기기만으로는 정독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점자 용품들의 접근성이 좋아져서 두 수단이 상호보완적으로 쓰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정민 기자 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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