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절단’ 비극에도 사지로…시속 80km 도로 위 맨몸 근무 [르포]

지난달 29일 오후 2시쯤 성수대교 방면을 향하는 서울 성동구 강변북로 위. 쉴 새 없이 차량들이 오고가는 왕복 6차선 도로 옆 갓길에 경광등을 켠 순찰차가 정차해 있고, 바로 옆에서 경찰관 2명이 서서 교통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과 도시고속순찰대 박진 경감과 김종열 경사다. 도로에는 대형 화물차를 포함해 최대 시속 80km로 달리는 차량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들이 만들어낸 바람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량과 거리가 가까웠지만 경찰관들의 몸을 보호할 별다른 안전장치는 눈에 띄지 않았다. 고작 맨몸 위 제복과 선글라스, 그리고 손에 든 건 경광봉이 전부였다.
두 사람은 서울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도로 위에서 현장 대기를 하다 상황실에서 사고 상황 등을 전파해주거나, 현장에서 문제 상황 등을 목격했을 때 즉각 문제 발생 지점으로 출동한다.

갓길에 순찰차를 세워두고 근무하는 상황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진짜 문제는 사고가 발생해 현장을 수습하러 도로 한가운데까지 들어가야 할 때. 매뉴얼상 도로 위에서 현장 처리를 할 땐 후방 60m에 순찰차와 라바콘을 세워두는 방식으로 ‘블로킹’ 작업을 해두지만, 이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운전자 부주의나 자율주행 기능 사용으로 인해 정지해 있는 라바콘을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박 경감은 “현장에서 사고 처리를 하다 보면 뒤까지 신경쓰지 못할 때가 많다”며 “사고 정보를 입력하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는 상황에서, 감속하지 않고 달려오는 차량이 있다면 알아서 잘 피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낮에도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지만 경찰관들은 “밤에 비하면 차라리 안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행량이 줄어드는 야간 시간이 되면 차량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는 야간에 비라도 오는 날이면 현장 경찰관들은 평소보다 몇 배 더 큰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김 경사는 “비가 억세게 내리던 날 야간 근무 때 올림픽대로 내리막길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다. 비와 함께 쏟아져 내려오는 차량들 사이에서 홀로 근무하니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며 “동료 경찰들의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남 일 같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사고는 고속도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의 걱정을 한층 더 커지게 했다. 지난달 24일, 경기 여주시 영동고속도로에서 6.5t 화물차가 차량 흐름을 관리 중이던 경찰관을 쳐 경찰관의 좌측 무릎 위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9월 28일엔 경북 동해고속도로 청하터널에서 정차해 있던 순찰차와 화물차를 1t 트럭이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앙일보가 확보한 사고 당시 영상에는 순찰차 뒤에 서 있던 경찰관이 달려오는 차량을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고를 당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상황을 고려했을 때, 경찰관은 충돌하기 직전에서야 고개를 들어 차량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고로 트럭 운전자가 사망했고 경찰관은 크게 다쳤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고속도로순찰대 경찰관 4명이 순직하고 44명이 다쳤다. 지난해엔 2명이, 올해엔 벌써 6명이 다쳤다. 특히 뒤따라오는 차량이 자동차 사고 현장을 또다시 덮쳐 발생하는 ‘2차 사고’가 빈번하다는 분석이다.

업무 중인 경찰관뿐 아니라 사고 수습을 위해 도로 위로 나선 시민들 역시 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지난 1일 충남 금산군 통영대전고속도로에서 승용차를 몰다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고 갓길에 차량을 세운 후 밖에 서 있던 60대 남성이 뒤따르던 차량 2대에 부딪혀 사망했다. 같은 날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도 사고 당한 후 멈춰서 있던 차량을 또 다른 차량이 들이받아 모녀가 사망했다.
비슷한 사고가 잇따르자 고속도로순찰대 경찰관들의 안전 확보와 고장·사고 차량 운전자들의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위험을 가장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는 경찰에선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자체적인 대비 체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선 경찰청 차원에선 2차 사고를 막기 위한 순찰로봇 ‘AI 세이프티 비콘’을 개발 중이다. 경찰관과 동행해 위험 상황을 실시간 인지하고 안전 대응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비콘은 ‘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을 켜두고 운행하다 사고를 내는 차량들을 중점으로 인식하고 반응하는 만큼, 보다 전반적인 안전 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이 고려돼야 한다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서울경찰청 교통정보센터가 최근 개발한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도 대안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현장 경찰관들이 이미 보유한 LED 전자호루라기와 안전봉, 라바콘 등을 활용해 사고 정보를 유관기관에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사고 처리 시간을 단축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감속하지 않고 접근하는 후행 차량이 감지되면 현장 경찰관에게 즉시 알림을 보내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장 경찰관이 사고 정보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동시에, 사고 처리 중 후방 차량의 움직임을 살피는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게 센터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 모두 아직 현장에 제대로 투입되진 못하고 있다. 투입 결정까지 절차가 길고, 예산 문제도 있다. 수도권의 한 고속도로순찰대 소속 경찰관은 “근무 경찰관들의 안전 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련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주영 기자 kwak.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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