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도주범에 “추적 중” 알리는 황당 법안…형소법 졸속 개정 참사
공소청이 실형을 확정받고도 도주 중인 형 미집행자를 추적하기 위해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조회할 경우, 30일 이내에 이를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이 지난달 2일 시행되면서부터다. 이 때문에 실형 확정 이후 잠적한 형 미집행자가 공소청의 추적을 피해 숨어버릴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까진 도주범을 잡기 전까지 통지를 유예할 수 있었다.
30일 내 못 잡으면 “추적 중” 알림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화 상대방과 통화 시각, 휴대전화가 접속한 기지국 정보 등이다. 도주 중인 형 미집행자 추적의 결정적 단서로 쓰인다.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수사 중인 사건에선 통지를 유예하는 규정이 있지만, 형 집행 목적의 조회는 통지 유예 대상에서 빠졌다.
공소청 관계자는 3일 “휴대전화의 실제 사용자가 도주한 미집행자인지 확인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특정한다고 해도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선 기지국을 기반으로 잠복도 해야 해 잡을 때까지 계속해서 통지를 유예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쫓아가는 과정에서 휴대전화 명의자에게 조회 사실이 통지되면 번호를 바꾸거나 은신처를 옮길 수 있어 이전까지의 수고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지국 조회를 피하기 위해 텔레그램과 같은 보안 메신저만 사용하는 등 추적을 피하는 수단이 늘다 보니 자유형 미집행자에 대한 추적은 힘들어지는 추세다. 2021년 5340명이었던 자유형 미집행자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6429명으로 늘었다.
이 같은 입법 공백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라 형사사법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전남광주 해남완도진도)이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기존에 검사가 수사 목적으로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삭제하는 대신 형 집행 목적 조회 권한을 별도로 신설했다. 이에 따른 통지 의무 기한을 30일로 설정하면서 유예 조항은 넣지 않았다. 수사 목적의 경우 여전히 유예가 가능하다.
박지원 의원실 관계자는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자는 입장도 있었고, 형 집행을 위해 통신사실을 확인한 경우는 유예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78년 만에 출범한 상황에 미비점이 발견되면 신속하게 고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 통해 현황 파악을 하고 필요하면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뭉텅이 법 개정에 공백 우려
개정안은 지난 9월 8일 발의됐고, 같은 달 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달 2일 시행됐다. 법안 발의부터 시행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당시 검사의 수사권이 사라지고 검찰청이 공소청으로 바뀌면서 함께 개정해야 하는 법률은 통신비밀보호법을 비롯해 140여개에 달했다. 검찰개혁추진단 등이 주도해 검찰청 폐지 직전 법 개정을 뭉텅이로 하면서 빈틈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비밀보호법 외에도 졸속 법 개정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증거능력 다툼 등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확정하지 않고 사업자로부터 자진 시정을 받는 동의의결에 관한 의견을 검찰총장과 협의하도록 한 것을 ‘검찰총장, 중수청장 또는 국수본부장’과 협의하도록 개정했다. 협의 대상이 불분명한 데다 중수청장과만 협의를 했을 때 정작 기소의 주체인 검찰총장과 충돌할 수 있다.
법무부, 빈틈 메우기 착수
법무부와 공소청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형 집행 목적일 때 통지 유예 규정이 빠진 사실을 파악하고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해당 법안 외에도 형사소송법 개정과 함께 일괄 개정하는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미비한 법 규정이 있는지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 이를 취합해 후속 입법을 추진해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진호·김성진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때는 법대가 더 높았어!”…의사 입 틀어막은 尹의 사자후 | 중앙일보
- 1년 휴직 후 이 종목 몰빵했다…2000만원→19억 만든 92년생 | 중앙일보
- 유부남 알고도 사랑했다…20대 딸의 지독한 불운 | 중앙일보
- “공짜 지하철 타고 온다”…낮 2시, 노인들이 향하는 ‘음지’ | 중앙일보
- 결혼 전 아내 성폭행하며 영상 찍었다…‘장모 살해’ 김성우 혐의 추가 | 중앙일보
- ‘혐한 논란’ 방송사, 90도 사과했다…日 우익들 박살낸 그녀 | 중앙일보
- “무조건 싼 숙소? 매력 없다”…요즘 여행러들 목숨 거는 ‘이것’ | 중앙일보
- “커피 마시다 바퀴벌레 뱉었다”…‘구토 라떼’ 논란 터진 이곳 | 중앙일보
- “키 150㎝도 군대 간다”…병력 부족에 특단 조치 취한 이 나라 | 중앙일보
- 여친 나체로 무릎 꿇리고…“외도하면 전재산 줘” 영상 찍은 30대남 최후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