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바로 섰다… 계절이 사라졌다

김철오 2026. 11. 4.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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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지구가 똑바로 섰다.

지구의 계절은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생긴다.

똑바로 선 지구에서 낮과 밤은 어떻게 될까? 지구가 자전을 멈춘 것은 아니므로 낮과 밤은 계속된다.

지구가 똑바로 선다면 해는 뜨고 지고 달은 차고 기울며 별자리는 밤하늘에서 자리를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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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지구 사용 설명서]
지구 자전축이 똑바로 선다면

어느 날 아침, 지구가 똑바로 섰다. 23.4도 기울어져 있던 자전축이 공전 궤도에 수직이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불러올 재앙은 잠시 잊자. 해는 여전히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출근길 모습도 평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11월이 지나도 겨울이 오지 않는다. 이듬해 3월이 되어도 봄 소식이 없다. 달력은 어김없이 넘어가는데 계절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사계절이 사라진 것이다.

지구의 계절은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생긴다. 북반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면 낮이 길어지고 태양도 높이 뜬다. 여름이다. 반대쪽으로 기울면 낮이 짧아지고 태양이 낮게 뜬다. 겨울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계절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반대다.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북반구의 한겨울인 1월 초다.

지구는 왜 비스듬히 돌까? 태양계가 만들어지던 약 46억 년 전 크고 작은 천체들이 충돌했다. 비스듬한 충돌은 행성의 회전 방향을 바꾸었다. 약 45억 년 전 화성만 한 천체가 원시 지구에 부딪친 충돌도 지구의 회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달은 그 충돌의 잔해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물론 자전축의 현재 기울기가 그 한 번의 충돌로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자전축의 기울기는 지금도 약 4만1000년을 주기로 22.1도에서 24.5도 사이를 오간다. 고위도 지방에 도달하는 여름 햇빛이 달라져 빙하기의 리듬에도 영향을 준다. 달의 중력은 자전축이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는 데 한몫한다. 밤하늘의 달이 지구의 기후에도 관여하는 셈이다.

똑바로 선 지구에서 낮과 밤은 어떻게 될까? 지구가 자전을 멈춘 것은 아니므로 낮과 밤은 계속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길이가 일 년 내내 거의 12시간으로 일정해질 뿐이다. 서울의 정오 태양 높이는 지금 하지에 약 76도, 동지에 약 29도다. 똑바로 선 지구에서는 언제나 약 52도다. 지금의 춘분이나 추분과 같다. 여름에는 북동쪽, 겨울에는 남동쪽에서 뜨던 해도 거의 정확히 동쪽에서 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일 년 내내 봄일까, 가을일까? 햇빛의 조건은 봄, 가을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날씨까지 쾌적한 봄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해류가 달라지고 구름과 비가 내리는 곳도 바뀐다.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얼마나 될지는 기후모형을 돌려 봐야 안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있다. 자전축이 똑바로 서면 1월 초가 7월 초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는다.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지는 때가 1월 초이기 때문이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차이만으로도 들어오는 태양에너지는 약 7% 차이가 난다. 지금은 자전축의 기울기가 만드는 계절 변화가 훨씬 커서 1월이 춥다. 기울기가 사라지면 이 작은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1월 초가 반드시 가장 더운 날은 아니다. 바다와 땅은 데워지고 식는 데 시간이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중 비교적 따뜻한 시기가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별자리도 계절과 함께 사라질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겨울 저녁에 오리온자리, 여름 저녁에 전갈자리가 잘 보이는 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다. 공전은 계속되니 두 별자리도 지금과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 초승달과 보름달도 남는다. 달의 모양은 태양과 지구, 달의 상대적인 위치가 결정한다.

가장 낯선 풍경은 극지방에서 펼쳐진다. 지금 북극과 남극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번갈아 찾아온다. 자전축이 똑바로 서면 둘 다 사라진다. 정확히 북극점과 남극점에서는 태양의 중심이 하루 종일 지평선에 머문다. 대기의 굴절을 빼고 생각하면 영원한 새벽이자 영원한 저녁이다. 극점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해는 뜨고 지지만, 지평선 위로 높이 올라가지는 못한다.

극야가 사라지니 북극이 따뜻해질까? 꼭 그렇지는 않다. 지금 극지방의 짧은 여름에는 해가 하루 종일 떠서 얼음을 녹인다. 그 강한 여름 햇빛이 사라지면 얼음이 덜 녹아 장기적으로 빙상이 커질 수도 있다. 물론 바다와 대기의 순환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북극곰과 펭귄은 얼음이 많아졌다고 좋아할까? 북극곰에게 중요한 것은 얼음 그 자체보다 얼음 위에서 잡아먹는 물범이다. 남극의 펭귄도 크릴과 물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여름 햇빛이 약해지면 바다의 식물플랑크톤이 자라는 방식부터 달라진다. 물범과 크릴이 영향을 받으면 그들을 먹는 동물도 무사할 수 없다. 북극곰에게 얼음만 주고 물범을 빼앗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비의 지도도 다시 그려야 한다. 태양이 강하게 비추는 지역을 따라 열대의 비구름대가 남북으로 이동하는데, 그 계절적 움직임이 크게 줄어든다. 아시아의 계절풍과 장마도 지금과 같을 수 없다. 그렇다고 비나 태풍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바다가 있고 햇빛이 있는 한 물은 증발하고 구름은 만들어진다.

생명은 오랫동안 계절에 맞춰 살아왔다. 철새는 먹이와 번식지를 찾아 이동하고, 곰은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잠으로 견딘다. 나무는 낮의 길이와 기온을 읽고 잎을 떨어뜨린다. 계절을 알리는 신호가 없어지면 이런 생활도 바뀔 것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철새가 여행을 그만두거나 모든 나무가 잎을 붙들고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우리의 풍습은 더 재미있게 달라진다. 벚나무는 겨울의 추위를 겪고 날이 따뜻해져야 꽃을 피운다. 단풍도 낮의 길이와 기온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봄마다 벚꽃이 한꺼번에 피고 가을마다 산이 붉어지는 풍경을 기대하기 어렵다.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도 봄마다 거리에서 울려 퍼질 이유가 없어진다. 노래는 남았는데 정작 봄이 없다. 그야말로 벚꽃 엔딩이다.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는 가능할까? 벼는 따뜻하고 물이 충분해야 자란다. 하지만 품종에 따라 낮의 길이가 꽃을 피우는 시기를 좌우한다. 새로운 기후에 맞는 품종과 물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봄에 모내기하고 가을에 추수한다는 농사 달력부터 다시 써야 한다.

옷장 정리는 편해질지 모른다. 계절마다 여름옷과 겨울옷을 바꿔 넣을 필요가 줄어드니까. 백화점은 계절 마감 세일을 언제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12월 25일이다. 하지만 그날 눈이 오기를 특별히 기대할 이유는 없다. 눈이 내릴 수는 있어도 12월이 겨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12월이 한 해 중 비교적 따뜻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똑바로 선 것을 바르다고 생각한다. 기울어진 것은 고쳐야 할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지구는 비스듬히 서 있어서 지금의 지구가 됐다. 사람들은 계절을 따라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며 명절을 만들었다. 봄을 기다리고 가을을 아쉬워하는 마음도 그렇게 생겼다.

지구가 똑바로 선다면 해는 뜨고 지고 달은 차고 기울며 별자리는 밤하늘에서 자리를 바꿀 것이다. 그러나 봄의 꽃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눈은 지금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주에서 보면 겨우 23.4도의 기울기다. 그 각도가 우리에게 사계절을 선물했다. 해마다 계절이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은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에 감사해야겠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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