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근의 경제를 묻다] “30년 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이대로는 못 간다”

조민근 2026. 11. 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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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조민근 논설위원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끝나자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뤄놓은 구조개혁의 호기’라는 분석이 나왔다. 2년간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데다, 반도체 초과 세수로 재정 실탄도 넉넉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기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길을 열어야 할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무한 정쟁을 넘어 각각의 집안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정부 역시 정책 동력이 약화하고, 방향성까지 흔들리면서 현안 대응에 급급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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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충격 겹치며 청년 고용절벽, 특단 대책 필요
직무급 확대하고,‘2+2’기간제 연장 고려해야
메가 프로젝트는 제도·인프라 혁신 위한 전략
송전망 병목·‘주52시간 근무’규제 풀어줘야
60대 이상이 과반인 국회, 청년 발언권 제약
」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만났다.전민규 기자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김성식(68)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만나 물었다. 보수·중도 계열의 재선 의원 출신인 그는 정계의 대표적 ‘정책통’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조언하는 헌법기관의 장관급 부의장에 위촉됐다. 현 정부의 대표적 ‘통합형 인사’였다. 그리고 그는 지난 4월 첫 전체회의에선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를 제기했다. 사회 안전망의 강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현 여권에선 쉽사리 언급하지 못하던 주제였다.

김 부의장이 인터뷰에서 꺼내 든 화두는 “성장다운 성장, 포용다운 포용”이다. 보수와 진보의 어젠다를 아우른다. 성장정책은 단기 부양을 넘어 제도와 인프라의 혁신, 인적자원 투자를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을 겨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용정책 역시 영향력 큰 집단이 아닌 목소리가 약한 집단, 특히 미래세대인 청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미·중 갈등이 만든 ‘5년의 숨구멍’

Q : 자문회의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최근에는 ‘메가 프로젝트’를 주제로 세 차례 릴레이 공개 포럼을 열었다. 이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A : “미·중 패권 경쟁과 AI(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라는 두 가지 거대한 지각 변동이 동시에 덮친 시기다. 이게 오기 전까지는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질식사’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기회의 시간은 앞으로 5년 정도로 본다. 이른바 ‘5년의 숨구멍’이다. 이 기간 동안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 경제 체질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중화학공업 육성,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정보화 이후 한동안 국가 차원의 비전과 실행 계획을 담은 종합적인 경제 전략이 실종된 상태였다. 메가 프로젝트가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기폭제로 삼아 반도체와 AI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차세대 성장엔진까지 점화해야 한다.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하는 국가 차원의 경제전략으로 삼자는 것이다.”

Q : 메가 프로젝트에 경제 체질을 끌어올리는 플랫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건가.
A : “그동안 지연된 규제 완화, 그리고 전력·용수 등 핵심 산업 인프라의 고질적 지체 문제를 메가 프로젝트라는 큰 틀에서 풀어보자는 것이다. 반도체 팹(Fab) 증설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와 첨단 소프트웨어를 긴밀하게 결합한 이른바 ‘소소부장’ 생태계를 공고히 하면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전반에 AI 전환(AX)을 빠르게 확산시켜야 한다. AI 시대에 고용이 위협받는다지만 정작 제조 현장에서 AX 전환을 가이드할 전문 인력이 거의 없다. 제도와 인프라 혁신, 그리고 인력 양성이 함께 하는 종합적인 경제전략이 돼야 한다.”

Q :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A : “당장은 송전망이 병목(bottle neck)이다. 2030년까지 준공 예정된 345㎸의 송전선로의 70%가 미착공 상태다. 변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는 여전히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계획대로 추진하려면 송전망 건설 속도를 기존의 6배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기존의 인허가 방식과 행정의 속도대로라면 반도체 공장이 다 지어져도 전기를 넣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아니 팹 건설도 계속 지연될 것이다. 통상적인 방법으론 풀 수 없다. 원전 건설에 준하는 파격적인 지원과 함께 참여 공모 방식을 도입해 주민 수용성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는 제안을 한 건 그래서다.”

Q : 규제도 투자를 막는 병목으로 지적된다.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는 부처 간 이견도 노출됐다.
A : “빠른 시간 내 조율을 마쳐야 한다. 메가 특구 내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는 고소득·전문직에 한해 풀어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기본적인 건강권을 챙긴다는 전제에서다. 대학원 동료 3명이 스타트업을 하는데 한 명이 등기이사라고 쳐보자. 한 1년 집중적으로 기술 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머지 두 명은 주 52시간만 연구해야 한다면 성장할 수 있을까.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그런 규제는 없지 않나.”
구조개혁 위해서라도 안전망 필요

Q : 대통령이 참석한 전체회의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꺼내 주목을 받았다.
A :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한 문제다. 기존의 정규직 제도로는 비용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으니 비정규직 제도를 만들었다. 고용도 보장 안 되고, 임금도 절반이고, 심지어 정규직과 목욕탕도 같이 못 쓰는 투트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년이면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30년이 된다. 계속 이렇게 갈 수 있나를 물어야 할 때가 됐다. 호봉 중심의 연공급이 아닌 역량과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부터 확대하면서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한번 실패하면 일어서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수능 점수 1점으로 승패를 가르는 문화도 바꿔야 한다. 구조개혁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받쳐줘야 한다는 얘기다.”

Q : 청년들의 고용 상황이 어렵다. 당장 시도해 볼만 한 건 무엇인가.
A : “일자리 절벽 상황을 고려해 3년 정도는 특단의 대책을 써야 한다.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청년들에게 실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현장 파견형 AI 전문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또 2년으로 제한된 기간제 사용 기간을 노사 당사자 간 합의로 최대 4년까지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2+2 제도’ 같은 보완책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이 청년들을 더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충분한 숙련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자는 취지다. 지금은 23개월이 지나면 기간제는 다 해고다. 기업도 어차피 2년밖에 고용하지 못할 걸 아니 숙련도 잘 안 시킨다. 만약 4년 정도 기간제를 운용할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숙련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중 괜찮은 인력은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Q : 사회적 안전망으로 ‘국민활동 급여제도’도 제안했는데.
A : “우선 직업훈련을 받으면 소득보장을 해주고, 2단계로 양육 돌봄도 지원 조건에 포함하자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1~2년은 든든하게 받쳐주자는 취지다. 지금은 전직 훈련 때 훈련비만 약간 지원하고, 양육 때 고용보험 가입자만 수당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600만~700만명이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AI 시대에 686세대 과잉대표

Q : 청년세대의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A : “우리 정치는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심각한 대표성 위기에 빠져 있다. 22대 국회 기준으로 30대 이하 유권자 비중이 30%인데, 국회의원 비중은 4.7%에 불과하다. 반면 60대 이상 의원은 55.7%에 달해 절반을 훌쩍 넘는다. 386세대가 어느새 686세대가 됐고, 법조인들이 턱없이 과잉대표돼 있다. AI 에이전트가 경제 행위자로 나서는 전환 과정에서 기존 제도를 시급히 손봐야 할 판에,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진영을 막론하고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극단적 정쟁과 진영 논리가 미래의 에너지를 오랫동안 억눌러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압력솥에 증기가 꽉 찼다. 그들에 걸맞은 발언권과 의석이 배분될 수 있도록 공천과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미래 인재를 찾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정치권이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걷잡을 수 없는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Q : 오랜 기간 정치의 눈으로 정책을 봐 왔다. 현 정치권에 아쉬운 부분은.
A :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행정이 아니라 정치다. 그런데 지금 정치는 그런 기능을 상실한 채 땜질 처방과 상대방 탓에만 열중하고 있다. 지난번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과연 여당이 맞나 싶었다. 당내 갈등으로 국정 동력을 떨어뜨리면서 최소한의 반성도, 조심스러움도 없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하루속히 정책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보수도 이념의 극단으로 가며 정치적 재미를 보려 해선 안 된다. 지난 내란과 연관된 부분을 아직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이 그나마 평가해줬던 책임성마저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약간의 반사 이익을 얻는다고 미래가 있겠는가.”
◆김성식=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노총 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을 거쳤다.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됐고, 1987년 이후 사면 복권됐다. 통합민주당에 참여한 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재선됐다. 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 위원장을 지낸 경제 정책통으로 다당제 연합정치 실현을 추구해왔다.

조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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