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의 문화노트] 국립중앙박물관 700만 관람객 시대, 새 관장의 조건

강혜란 2026. 11. 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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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문화선임기자

“유홍준 관장한테 한가지는 인정한다. 박물관에 젊은층 끌어들이기가 역대 숙제였는데, 그걸 해냈다. 다른 나라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니까.”

유홍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친일파 유묵 셀프 전시’ 사태로 1년 3개월 만에 물러날 당시 한 박물관계 원로가 씁쓸하게 한 말이다. 속된 말로 ‘시원섭섭함’이 비쳤다. 유 전 관장의 인지도가 국중박 관람객 650만 명 돌파에 일조했다고 보기 때문일 테다. 올해 관람객 700만 명을 내다보는 상황에서 후임 관장 인사를 둘러싼 박물관계 기대와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큰 이유다.

역설적으로 유 전 관장의 불명예 퇴진은 이 자리에 대한 주목도를 한껏 높였다. 애초 기틀을 다진 건 김재원·김원룡·황수영·최순우 등 초창기 전문가 출신들이었다. 참여정부 때인 8대 이건무 관장부터 차관급으로 승격되면서 외부 수혈이 잦아졌어도 학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물이 맡는 전통은 이어졌다. 다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특성상 정권의 부침에 따라 임기가 흔들리곤 했다. 법인 이사회가 관장을 선임하고 장기 재임하는 해외 주요 박물관과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공공성·전문성·청렴성 없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자리란 게 이번 사태로 재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25년 연간 관람객이 세계 3위 규모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박물관에 걸려 있다. 강혜란 기자

700만 관람객 시대를 이어갈 새 관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외부 인사라고 안 되는 건 아니다. 새로운 시각과 활력으로 박물관의 국제화·대중화에 기여하면서도 학예실의 전문성을 존중할 인사여야 한다.”(A교수) “한층 커진 체급에 맞게 구성원을 이끌어갈 경영자적 역량이 요구된다. CEO 출신이면 어떠냐.”(B관장) “가장 시급한 건 명예와 신뢰 회복이다. 정권의 필요에 휘둘리지 않고 박물관의 중장기 비전을 세우고 이끌 수 있어야 한다.”(C관장) 공통적으로 지적한 건 “유물 관리와 검증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과 국민에게 열린 박물관을 만드는 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였다. “예전엔 대통령의 친구라더라, 여사(영부인) 추천이라더라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엔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이 와야 된다”는 말에 위기의식이 배어났다.

유물의 검증 실패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인사 검증 실패는 조직 전체에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81년 역사 동안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 된 자리에 이번에야말로 박물관의 미래를 맡길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새 관장에게 당부하고 싶다. 곳곳에 붙어 있는 ‘2025년 연간 관람객 세계 3위’ 현수막부터 치워달라. 박물관의 명예와 권위는 그런 숫자놀음에서 오지 않는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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