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열' 김경란 "故 최불암, 날 막내딸처럼 아껴…연극 시작하게 해준 분" (인터뷰)

김현정 기자 2026. 11. 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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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 출신 배우 김경란이 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에서 오열하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낸 가운데 고인과의 오랜 인연을 떠올렸다.

김경란은 엑스포츠뉴스에  "KBS에 입사하고 청주 순환근무를 다녀오자마자 2003년 투입됐던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 최불암 선생님을 만난 게 첫 인연이었다. 저를 정말 많이 응원해주신 어른이셨다. 제가 9시 뉴스를 할 때도 너무 축하해주시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며 최불암과의 첫 만남을 언급했다.

최불암은 김경란이 연극 무대에 발을 들이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자 최불암은 김경란에게 연극 출연을 제안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예술감독과 배우로 연극 '시유어게인'을 함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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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 출신 배우 김경란이 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뒤 고인과의 오랜 인연을 떠올렸다.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KBS 아나운서 출신 배우 김경란이 故 최불암의 마지막 길에서 오열하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낸 가운데 고인과의 오랜 인연을 떠올렸다.

최불암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30분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해 '수사반장', '전원일기' 등 드라마 130여 편, 영화 90여 편, 연극 55편에서 활약하며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았다.

故 최불암의 발인식은 2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진행됐다.

김경란은 고인의 빈소를 찾은 뒤 유족 및 동료 배우들과 함께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슬픔에 잠겨 오열하면서도 고인의 아내인 김민자의 곁을 지키며 부축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김경란은 엑스포츠뉴스에  "KBS에 입사하고 청주 순환근무를 다녀오자마자 2003년 투입됐던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 최불암 선생님을 만난 게 첫 인연이었다. 저를 정말 많이 응원해주신 어른이셨다. 제가 9시 뉴스를 할 때도 너무 축하해주시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며 최불암과의 첫 만남을 언급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도 이어졌다. 故 최불암은 1981년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은 뒤 19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국내외 취약계층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활동을 이어왔다. 김경란은 2010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고 각종 행사의 진행을 맡았다.

김경란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선생님을 또 뵀다. '참 인연이 깊구나. 선생님도 여기 계시고 나도 여기 함께 몸담게 됐구나' 했다"고 말했다.

최불암은 김경란이 연극 무대에 발을 들이는 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김경란은 "선생님이 TV나 드라마 배우로 많이 활동하셨지만 정말 연극을 사랑하셨다. 연극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셨다. 나도 연극 무대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놀랍고 '어떻게 같은 인간인데 작품 속 세계로부터 우리를 끌어당길까' 하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연극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라고 말씀드렸다"고 떠올렸다.

그러자 최불암은 김경란에게 연극 출연을 제안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예술감독과 배우로 연극 '시유어게인'을 함께하게 됐다.

김경란은 "'선생님, 저도 연기를 배워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연기를 뭘 배워. 그냥 하면 되지'라고 하셨다. 나는 진짜 그냥 하면 되는 줄 알고 막무가내로 부딪혔다"며 웃음 섞인 추억을 전했다.

처음 오른 연극 무대는 쉽지 않았다. 그는 "부끄러운 김경란의 모습으로 무대에 있는데 '나는 왜 좀 편해지고 즐거워지지 않고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얼떨결에 '사랑해 엄마'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불암과 다시 한번 작품으로 만날 기회도 있었다. 2020년 준비한 연극 '세월이 가면'이었다. 당시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극장이 폐쇄되고 공연이 취소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관객과 만나야 했다.

김경란은 "선생님의 어머니가 하셨던 '은성'이라는 주점에 여러 문인과 당대 예술가들이 모였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을 녹여낸 작품이었다. 선생님은 복덕방 주인 역을 하셨고 나는 박인환 시인이 돌아가신 뒤 세 아이를 키우는 아내 역을 맡았다. 그때 최불암 선생님과 원 없이 작업했다. 무대에 못 올라간 게 너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연극을 하면서 '왜 시간만 흐르는 것 같고 나아지는 것 같지 않지? 여전히 부끄러운 나로 무대에 서는 건가'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백사장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더라"고 비유했다.

이어 "한 발 한 발 선생님을 따라 걸어왔는데 뒤를 보니 생각보다 너무 많은, 7년이라는 시간을 걸어왔다. 백사장은 안 보이고 앞은 망망대해고, 돌아가기에는 애매하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 모르겠어서 그때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워크숍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가고 수업도 듣고 책도 보고 공부했다. 책을 씹어 먹듯 공부했다. 2024년부터는 쉬지 않고 작품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도 두 작품을 같이 하다가 한 작품이 끝났고 지금은 한 작품을 하고 있다. 걸음마를 배워 이제 선생님과 같은 무대에서 버텨볼 만한 힘을 살짝 지닌 것 같은데 떠나셔서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김경란은 최불암에 대해 "어떤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늘 칭찬하고 격려해주셨다. 아이가 갑자기 뒤집기를 했다고 하면 '뒤집기가 너는 너무 특별하고, 해낸 게 너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최불암이 보내준 문자메시지를 떠올리며 "문자를 시인처럼 보내주셨다"라며 "그냥 '수고했어', '잘했어'가 아니었다. 2022년에는 '참 잘했어. 아름다운 것은 둘째고 연극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이야'라고 해주셨다"고 전하기도 했다.

2023년 김경란의 공연을 본 뒤에는 '반듯한 몸의 중심, 깊은 시선으로 상대와 객석을 잡는 기본적인 무대 서기. 어느새 그런 관록이 배었는지, 함께 본 모두가 함께 4중주로 합창을 했지. 멋졌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김경란은 "무슨 메시지를 보내셔도 '수고했다', '잘했다'라는 당연한 단어가 아니라 화법이 시인 같았다. 내가 해야 할 몫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너무나 시적으로 격려해주시니 받을 때 감동이 컸다"고 떠올렸다.

그런 최불암의 별세는 김경란에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김경란은 최불암의 딸과 동갑으로, 고인이 자신을 막내딸처럼 아꼈다고 했다.

그는 "최불암 선생님과 김민자 선생님, 저까지 셋이 '최불암의 숲 이야기 어울림'이라는 프로그램도 함께했다. 최불암 선생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두 분과 계속 인연을 두고 지냈다. 그래서 김민자 선생님도 챙기고 연락드리면서 조심스럽게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해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보를 접했다는 김경란은 "케냐를 다녀와서 최근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화요일에 한국에 왔는데 목요일에 돌아가셨다. 너무 믿어지지 않았다. 어제 장지까지 가서야 최불암 선생님이 '나 이제 떠났어. 이제 인정해'라고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슬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눈물은 나는데 인정은 안 되는 상태가 3일 내내 반복됐다. 어제야 비로소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확인을 받은 기분이었다"라며 먹먹한 심경을 전했다.

사진= 엑스포츠뉴스DB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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