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운명, 아랍계 정당 19석에 달렸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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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27일 치른 총선의 공식 결과를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에게 넘긴다.
아랍 정당 두 곳, 공동명단과 라암당이 얻은 19석이다.
리베르만을 뺀 유대계 야권 41석에 아랍 정당 19석이 찬성하면 60표다.
이번 19석이 그다음 금기를 허물지는 이제 아랍 정당이 아니라 유대계 정당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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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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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야샤르당의 가디 아이젠코트 대표(가운데)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 ⓒ AFP 연합뉴스 |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로 뽑는 120석 가운데 과반 61석을 얻은 진영은 없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과 극우·초정통파 정당으로 이뤄진 여권은 53석으로 2022년 총선보다 11석 줄었다. 유대계 반네타냐후 정당들은 48석이다.
이스라엘에서 총리는 국민이 직접 뽑지 않는다. 공식 결과가 나오면 대통령이 각 당에 누구를 총리로 추천하는지 듣고, 일주일 안에 한 의원에게 정부 구성을 맡긴다. 현지 언론은 첫 위임이 야권 1당 야샤르당의 가디 아이젠코트 대표에게 갈 공산이 크다고 본다.
위임 받은 사람은 최대 42일 안에 의회 신임을 얻는 정부를 꾸려야 한다. 그사이 10일에는 새 의회가 문을 연다. 끝내 정부를 꾸리지 못하면 다시 선거를 치른다. 그때까지는 네타냐후 과도정부가 나라를 맡는다.
이 일정 내내 가장 많이 거론될 숫자가 있다. 아랍 정당 두 곳, 공동명단과 라암당이 얻은 19석이다. 종전 최고 기록 15석을 넘어선 역대 최다다.
두 정당이 얻은 표는 약 84만 표로 2022년보다 64% 늘었다. 아랍계 투표율은 53% 안팎에서 77% 안팎으로 뛰었다. 그래도 아직 제 몫에는 못 미친다. 아랍계는 유권자의 약 18%로, 의석으로 치면 22석가량이다.
'그래봐야'에서 '이번엔'으로
아랍계 시민은 오랫동안 투표장에 잘 가지 않았다. 투표해 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체념과 보이콧이 겹쳤다.
이번에는 달랐다. 투표율 87%로 전국 1위를 한 아랍 도시 사크닌의 시장은 이 투표를 주민들이 "살해당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한 비상 대응이라고 했다. 2023년 아랍 사회에서 범죄로 숨진 사람은 244명으로 사상 최다였다. 치안 책임자는 극우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었다.
가자 전쟁에 대한 분노와 네타냐후를 끌어내리겠다는 절박함도 더해졌다. 선거 당일 벤그비르가 나라를 "유대적이고 시온주의적으로" 지키자며 투표를 독려한 것이 오히려 아랍 유권자들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직도 달라졌다. 세 아랍 정당이 다시 공동명단으로 뭉쳤고, 활동가들은 베두인 마을을 집집이 돌며 여성들의 투표를 독려했다. 라암당의 만수르 압바스 대표는 개표 날 밤 "우리는 여기 있다. 변두리에 있지 않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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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헤르츨리야에 있는 야샤르당의 가디 아이젠코트 대표 자택 앞에서 시위대들이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 재임을 허용하기보다 이스라엘-아랍 정당들과 연정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
| ⓒ 로이터 연합뉴스 |
이스라엘의 불복에는 결이 하나 더 있다. 과녁이 특정 시민 집단이라는 점이다. 2015년 네타냐후는 선거 당일 "아랍 유권자들이 떼 지어 투표소로 몰려간다"며 지지층을 불러냈다. 2019년 리쿠드당은 아랍 마을 투표소의 참관인들에게 몰래카메라를 들려 보냈다.
문제 삼는 것은 개표가 아니라 아랍계 시민이 투표했다는 사실 자체다. 그래서 이들의 투표율이 오를수록 의심도 커진다. 이 의심은 투표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를 꾸리는 협상 테이블까지 따라간다.
몇 걸음이면 닿는 거리
겉으로 보면 19석이 정부로 가는 길은 막혀 있다. 네타냐후는 아랍 정당과의 협력을 "수치"라고 했다. 유대계 야권도 중도좌파 민주당을 빼면 아랍 정당과 내각에 함께 앉겠다는 곳이 없다.
야샤르당의 아이젠코트 대표는 아랍 정당들이 자신의 연정 조건에 못 미친다고 했다. 역시 야권의 대표주자인 우파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와 세속 우파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전 국방장관도 아랍 정당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밑에는 유대 국가의 정부는 유대계 다수가 세워야 한다는 '시온주의 다수'의 원칙이 깔려 있다. 2018년 제정된 민족국가 기본법은 민족자결권을 유대인 고유의 권리로 못 박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이 원칙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맞은편에는 모든 시민의 표가 같은 무게를 가져야 한다는 시민적 평등의 원칙이 있다. 유대계 야권에서는 민주당이 거의 유일하게 이 입장을 편다.
민주당은 8석이다. 숫자로만 보면 소수 의견이다. 그런데 정부까지의 거리를 재 보면 의외로 멀지 않다. 이 원칙이 정부로 이어지는 데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막지만 않으면 된다. 이스라엘에서 정부는 의회 신임투표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많기만 하면 출범한다. 61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권은 어느 쪽에도 세지 않는다.
이 규칙을 지금 의석에 대 보면 이렇다. 리베르만을 뺀 유대계 야권 41석에 아랍 정당 19석이 찬성하면 60표다. 네타냐후 진영은 53석이다. 리베르만이 반대 대신 기권만 해도 정부가 선다.
아랍 쪽은 이미 몇 걸음을 내디뎠다. 라암당은 이스라엘을 유대·민주 국가로 인정했고, 공동명단은 장관 자리 없이 밖에서 돕겠다고 했다. 남은 걸음은 유대계 야권의 몫이다. 라암당에 대한 판단을 고쳐 쓰고, 리베르만이 한 걸음 비켜서면 된다. 누구에게도 시민적 평등을 외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길을 막지만 않으면 된다.
질문은 그다음이다. 문턱을 넘은 19석이 정부 안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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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3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는 총리 관저 밖에서 총선 이후 네타냐후 축출을 위해 유대-아랍 연립 정부 구성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
| ⓒ AFP 연합뉴스 |
그러나 기대가 착각이 돼서는 안 된다. 19석은 이스라엘 시민의 표다. 같은 팔레스타인 민족이라도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시민과 서안·가자지구 주민은 처지가 다르다. 서안과 가자의 주민은 이스라엘 시민권의 보호 밖에 있고, 이 선거에 투표하지도 못했다.
아랍 정당들도 하나가 아니다. 라암당은 생활 의제에 집중하는 이슬람 보수 정당이고, 공동명단은 좌파와 민족주의 정당의 연합이다.정부에 들어가겠다는 쪽은 라암당이다.
아랍 정당의 입각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도 아니다. 아이젠코트의 연정 조건에는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인정하고 가자에서 그 군사·통치 능력을 없애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정부에 들어가는 순간 그 조건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19석이 작은 것은 아니다. 역사의 진전이 늘 완벽한 조건과 흠 없는 세력을 기다려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츠하크 라빈 정부는 한때 아랍 정당 5석의 외부 지지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소수정부였다. 그 불안한 정부가 오슬로 협정(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이스라엘 정부가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분쟁 종식을 논의한 평화협정)을 밀고 나갔다.
2021년에는 네타냐후마저 라암당의 지지를 타진했고, 라암당은 결국 반대편 연정에 들어갔다. 그 연정은 1년 만에 무너졌지만, 아랍 정당이 정부에 앉는 일은 더 이상 상상 밖의 일이 아니게 됐다.
부족한 조건에서 부족한 대로, 금기는 그렇게 하나씩 허물어졌다. 이번 19석이 그다음 금기를 허물지는 이제 아랍 정당이 아니라 유대계 정당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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