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술 마시면 5만원 과태료"…서울역 금주구역 실효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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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역 광장 계단 아래.
3일 서울 중구와 용산구에 따르면 두 자치구는 오는 9일부터 서울역 광장 일대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다만 서울역 광장이 금주구역으로 지정되더라도 음주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주구역에서 서울로7017과 서울역 지하보도, 지하철 출입구, 광장 내 음식점 등 실내 시설은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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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나 그어놓고 "여기서 마셔라"
풍선효과로 관리 사각지대 넓혀
"규제보다 치료, 복지 지원 절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역 광장 계단 아래. 남성 7명이 바닥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이들이 서울역을 찾게 된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거처를 마련한 뒤에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서울역으로 발길을 돌린 사람도 있었고, 자활 의지가 있어도 제도적 한계에 막혀 외로움을 겪는 이도 있었다.
40년간 노숙 생활을 했다는 이병암씨(67)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의지할 데가 술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50대 김모씨는 "일을 나가면 기초생활수급비가 끊기니까 주변에선 차라리 돈을 벌지 말라고 한다"며 "할 일이 없다 보니 결국 모여서 술을 마시게 된다"고 했다. 남선우씨(62)는 오랜 지병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며 술로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3일 서울 중구와 용산구에 따르면 두 자치구는 오는 9일부터 서울역 광장 일대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중구는 서울역 광장과 역사 주변 실외 공간 1만3283㎡를, 용산구는 서울역 전면부와 서부 주변부 등 약 6570㎡를 각각 지정한다. 홍보·계도기간을 거쳐 내년 3월부터 금주구역 내 음주 행위 적발시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한다. 금주구역 지정에 대한 시민들의 찬성 여론도 높다. 중구가 광장 이용 시민 12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96.4%가 금주구역 지정에 찬성했다. 용산구 조사에서도 응답자 283명 가운데 85.2%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다만 서울역 광장이 금주구역으로 지정되더라도 음주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주구역에서 서울로7017과 서울역 지하보도, 지하철 출입구, 광장 내 음식점 등 실내 시설은 제외된다. 음주자들이 광장 인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만 해도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특히 지하보도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통행 공간인 만큼 음주자들이 몰릴 경우 안전사고와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역 지하보도를 통해 출퇴근한다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금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 때문에 지나가기 불안할 때가 있다"며 "광장이 아닌 지하도로 내려와 술을 마신다면 더 무서울 것 같다. 결국 시민들이 기피하는 장소만 하나 더 생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노숙인들 역시 금주지역 지정이 문제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노숙인 이씨는 서울역 건물 전면에 세워진 세로형 옥외 간판 아래를 가리키며 "여기는 단속 제외 구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단 경계선 밖에서 마시라고 하는데, 사실 여기나 저기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단속을 피해 지하도나 광장 밖으로 이동할 경우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씨는 광장 인근의 어두운 지하도를 가리키며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시는 곳"이라며 "기분이 상하면 술병부터 날아온다. 어제도 노숙인 한 명이 싸우다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고 전했다.
음주 장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경우 관리 책임을 둘러싼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역 광장은 중구와 용산구가 나눠 관할하고 역사 내부는 코레일이 관리하는 등 공간마다 관리 주체가 다르다. 중구 관계자는 "음주자들이 역사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코레일이나 민원을 접수하는 곳에서 대응할 것"이라며 "우선은 외부 공간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과태료 부과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거리 노숙인에게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하더라도 실제 징수로 이어지기 어렵다. 과태료를 납부하지 않더라도 당장 음주 행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데다 납부 능력이 없어 장기 미납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과태료 징수권은 원칙적으로 5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종료된다. 결국 과태료를 부과하고도 징수하지 못한 채 미납액을 결손 처리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리 생활의 어려움이 음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술을 마시는 장소만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금주구역 지정과 함께 알코올 의존 치료와 의료·복지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태료 납부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면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며 "규제 중심의 접근보다는 노숙인의 현실을 고려한 치료와 복지 지원이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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