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자리보다 성장을 향한 도전"…자동차 유리천장을 깼다

한예주 2026. 11. 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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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잘하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면 그 회사를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 부사장은 "상무가 돼야겠다거나 부사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한 적은 없다"며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느냐보다 계속 성장하면서 경력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독일의 일·학습 병행 직업교육 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등이 자동차 정비 현장 실습과 대학의 이론교육을 병행하며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내가 잘하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면 회사를 떠나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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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정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부사장 인터뷰
25년간 IT·자동차업계서 경력 쌓아
두 아이 키우며 경력단절 없이 성장
"후배 여성들,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내가 일을 잘하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면 그 회사를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나정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부사장은 남성 중심의 IT·자동차업계에서 25년간 경력을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리한 상황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성별에 따른 제약을 자신의 한계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다.

2001년 한국IBM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재무관리와 영업기획, 제품기획, IT솔루션 영업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2010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로 자리를 옮겨 자동차업계에 뛰어들었고, 네트워크 개발과 인재 양성 분야를 거쳐 2023년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일과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경력만큼은 놓지 않았다.

김 부사장은 "상무가 돼야겠다거나 부사장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한 적은 없다"며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느냐보다 계속 성장하면서 경력을 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자신보다 동료들이 더 빛나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지난 25년의 경험과 여성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나정 벤츠코리아 부사장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벤츠코리아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IT 기업에서 자동차업계로 옮긴 계기는.

▲IBM을 정말 좋아했다. 다만 당시에는 일에 너무 파묻혀 살았다. 내가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업종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새로운 산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성장하는 일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시도하면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당시 국내 수입차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큰 시기였다.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직한 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루할 틈 없이 일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오면서 벤츠가 성장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나.

▲거의 없었다. 상무가 돼야겠다거나 부사장이 돼야겠다는 목표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돌아보면 누군가 새로운 일을 제안했을 때 크게 거절한 적이 없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생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미리 판단하기보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것 같다. 특히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성장하면서 경력을 끊지 않는 일이었다.

-25년 경력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성과는.

▲아무래도 '아우스빌둥(Ausbildung)'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트레이닝 아카데미 업무를 맡으면서 처음 접했다. 독일의 일·학습 병행 직업교육 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 등이 자동차 정비 현장 실습과 대학의 이론교육을 병행하며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처음에는 여러 자동차 브랜드가 참여를 논의했지만 투자 부담이 컸고 의견을 모으기도 어려웠다. 기존에도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굳이 새롭게 시작해야 하느냐는 시선도 있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니 오히려 왜 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청소년들에게 4년제 대학 진학 외에 새로운 진로를 열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단기적인 손익보다 사회공헌 차원의 중장기 투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함께 국내 도입을 추진했다. 2017년 시작한 프로그램이 회사에 의미 있는 유산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김나정 벤츠코리아 부사장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벤츠코리아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을 이어왔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0년 벤츠로 이직할 당시 아이들이 5살과 3살이었다. 가장 손이 많이 갈 때였다. 새로운 업계에 적응하면서 육아까지 병행해야 했다. 당시에는 일하는 엄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지금만큼 형성되지 않았다. 어떻게 일하면서 아이까지 키우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출산휴가도 아이마다 3개월씩 사용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육아휴직 등 제도적 지원이 많이 늘었다. 내가 누리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사회가 발전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이들을 보면 내가 잘한 선택이었을까 고민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남성 중심의 업계에서 여성으로서 제약은 없었나.

▲분명히 있었다. 과거에는 IT업계도 자동차업계도 여성이 소수였다. 그중에서도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더 드물었다. 다만 여성이라서 불리하니 더 보상받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강점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하는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면 회사를 떠나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몸담았던 회사들은 여성에게 기회를 주는 문화가 있었다. 물론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기업이 여성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나 역시 이제는 그런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원이 된 뒤 일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내가 일을 얼마나 잘 완성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과 이해관계자가 많아진다. 이제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빠르게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직원에게 '당신을 믿으니 알아서 해보라'고 하는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사람을 믿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나는 의견이 강한 편이라 처음부터 함께 일하기 쉬운 스타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좁혀가면서 결국 하나로 모이는 순간에 큰 보람을 느낀다.

김나정 벤츠코리아 부사장이 서울 중구 남대문로 벤츠코리아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미래 자동차 산업에 필요한 인재의 역량은 무엇인가.

▲자동차가 달라지면서 기술 인력에게 필요한 역량도 크게 바뀌고 있다. 과거 정비사가 기계장치를 고치는 '메커닉'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전기차 배터리와 소프트웨어까지 이해하는 엔지니어가 돼야 한다. 아우스빌둥 교육과정에도 전동화 관련 내용을 반영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술적인 역량 못지않게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차량의 고장을 진단하더라도 그 결과를 해석하고 고객에게 설명하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아우스빌둥 교육과정에 정치·경제·사회 관련 내용이 포함된 이유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오히려 그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I 시대일수록 사회를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은가.

▲더 높은 직책을 맡는 것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동료가 되고 싶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리더가 목표다. 나를 빛나게 하기보다는 나로 인해 팀원들이 더 빛났으면 좋겠다. 내가 애정을 갖고 추진했던 아우스빌둥 같은 프로그램도 회사에 중요한 유산으로 남았으면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이다.

-여성 후배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조언은.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여성들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커리어를 위해 결혼을 미룰 수도 있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잠시 일을 멈출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 역시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고 일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20년 넘게 그렇게 살아보니 결국 내가 나를 놓으면 안 되겠더라.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너무 먼 미래의 목표에 강박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반드시 어떤 직책에 올라야 한다고 스스로 틀을 만들어놓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를 잘 아는 동료와 상사들이 때로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솔직한 이야기도 해준다. 나 역시 그런 조언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고 관심 있는 일을 주변과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후배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다. 일과 가정에서 여러 역할을 해내려면 자신을 관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나는 정리 정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를 정리하는 작은 행동에서도 성취감을 얻는다. 주변이 정리돼 있어야 머릿속도 정리된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변화보다 작은 좋은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바쁜 일상에서 자신의 리듬이 흐트러질 때 다시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김나정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부사장은연세대학교에서 생명공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2001년 한국IBM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재무관리와 영업관리·기획, 제품기획, IT솔루션 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0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합류해 판매·서비스 네트워크 개발을 담당했으며, 2017년부터 트레이닝 아카데미 총괄을 맡아 자동차 전문 인력 양성에 힘썼다. 독일식 일·학습 병행 직업교육 프로그램인 '아우스빌둥'의 국내 도입에도 참여했다. 메르세데스-벤츠 글로벌 트레이닝 거버넌스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3년 10월 네트워크 개발 및 트레이닝 아카데미 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선임됐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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