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런도 놀랄 만한 '오디세이 그녀들'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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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가 침대 이야기를 꺼낸 건 이몽룡이 춘향이의 마음을 확인한 방식과 비슷해요."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먼저 치른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헬레네는 트로이에 간 적이 없다', '파리스와 함께 도망간 것은 헤라가 만든 헬레네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논쟁이 오갔죠.
헬레네가 실제로 트로이에 갔는지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갔다'는 말만 믿고 군대를 보내고,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 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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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 전선정, 소중한, 정교진, 최주혜 기자]
[이전 편] 개로 태어나라? 오디세이 세계관에서 돌연사하지 않는 법 https://omn.kr/2jsvr
"페넬로페가 침대 이야기를 꺼낸 건 이몽룡이 춘향이의 마음을 확인한 방식과 비슷해요."
"헬레네 논쟁은 고대 그리스판 가짜뉴스 논쟁인 셈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망각의 열매를 먹고 싶겠어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뒷세우스에게는 유혹적이었겠죠."
'망각은 신의 축복'이란 말이 <오뒷세이아> 세계관에서는 통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곳에는 잊고, 잊혀 괴로운 사람들만 남아 있으니까요. 망각의 열매를 먹고 귀향마저 잊은 오뒷세우스, 그런 남편을 차마 잊지 못하는 페넬로페. 전쟁의 피해자였지만, 전쟁의 명분으로 기억되는 헬레네와 우리 안에 외면하고 싶은 잔인한 본성을 일깨우는 키르케까지. 우리가 이 세계에 떨어진다면 과연 기꺼이 망각을 택할 수 있을까요.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가는(?) 천만영화 <오디세이>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건 영화 자체보다 오늘에도 유효한 고전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짜 뉴스와의 전쟁을 먼저 치른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지난 9월 21일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연구실에 모인 '교수(이태수·안재원)와 덕후(석민주씨)'는 영화 <오디세이>부터 <춘향전>까지를 오가며 영화 상영시간보다 긴 5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춘향과 몽룡의 재회가 페넬로페·오뒷세우스 커플 못지않게 험난했던 걸 보면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지 않은가 봅니다.
너무 어려운 말만 하면 오뒷세우스보다 집에 가고 싶어질 테니까요! 이번 편은 용산 아이맥스 관람에 성공한 이태수 교수님의 생생한 경험담부터 시작합니다. 다음 편에는 <오뒷세이아> 최고의 미남을 꼽아보겠습니다(스포: 오뒷세우스는 일단 탈락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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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화면 갈무리 |
| ⓒ tvN |
석민주(덕후) : 시도도 안 했어요.
안재원(교수) : 우리 (이태수) 선생님만 아이맥스로 봤네요.
기자 : 정말요? 어떻게 예매하셨어요?
이태수(끝판왕) : 단체로 관람했어요.
덕후 : 용산이었나요?
끝판왕 : 네 용산.
기자 : 그 어렵다는 용아맥을... 아이맥스로 본 <오디세이>를 총평해 주실 수 있을까요?
끝판왕 : 하도 아이맥스, 아이맥스 기대를 많이 해서 엄청난 기대를 갖고 봤어요. 내가 김해 장유라는 데서 사는데 거기서 전날 기차를 타고 올라와 서울서 자고 다음 날 들어가서 본 거예요. 그렇게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직접 보니까) '이거 속았네' 했어요(웃음). 아이맥스에 대한 저의 즉각적인 반응이에요. 우리 딸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본주의 시장에 낚인 사례 중 하나다'라고 하더군요(전원 웃음). 그 말에 동의해요.
기자 : 놀런 감독도 아이맥스로 보지 않아도 된다고 인터뷰했더라고요.
끝판왕 : (영화를 보기 전) 아이맥스와 일반 스크린의 차이가 무엇인지 사전에 교육도 받았어요(웃음). 정사각형 화면이라 아래, 위를 봐야 한다고 그래서 보다가 밑에도 좀 보고 위에도 좀 보고 그랬어요. 몰입되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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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오디세이> 중 칼륍소의 모습 |
| ⓒ 유니버설 픽쳐스 |
덕후 : 영화에서 로토스(망각의 꽃) 열매를 칼륍소에 붙여놨더라고요. 원작에서는 로토스를 먹는 '로토파고스족'이 따로 나오고, 오뒷세우스가 아닌 부하들만 열매를 먹어요. 그때의 오뒷세우스는 전쟁에서 이긴 승자예요. 굳이 망각의 유혹에 빠질 필요가 없죠. 그런데 영화 속 오뒷세우스는 산전수전을 다 겪고 홀로 남은 상태에서 로토스를 건네는 칼륍소를 만나게 돼요.
호메로스 작품에서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 때'가 완전한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 이름이 잊히면 안 되고, 망각에 저항해야 하는데 오뒷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서 죽은 사람처럼, 완전히 잊힌 사람처럼 취급받고 본인도 로토스를 먹어서 기억을 잃었죠. 왜 인간이 망각을 선택하는지, 그럼에도 왜 이에 저항을 해야 하는지를 영화에서 잘 보여줬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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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오디세이> 중 페넬로페의 모습 |
| ⓒ 유니버설 픽쳐스 |
교수 : 둘의 침상은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졌어요. <오뒷세이아>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재료가 사실 올리브 나무예요. 폴리페모스를 찌른 무기도,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드는 무기나 선박도 같은 나무예요. 중요한 건 침상의 재료보다 침상을 같이 쓰는 오이코스(οἶκος, 가족·집)의 회복이에요. 나와 함께 고통을 나누는 상대, 즉 부부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인 거죠.
덕후 : 그 침상은 나무뿌리와 연결돼서 움직일 수 없어요. 그래서 페넬로페가 원작에서 오뒷세우스와 재회했을 때 그를 시험하려고 유모한테 '우리 방에 있는 침대를 옮겨주세요'라고 말해요. 오뒷세우스는 '그 침대는 못 움직입니다. 제가 만들어서 압니다'라고 반응하죠. 그렇게 해서 둘의 관계를 확인해요.
교수 : <춘향전>에서 몽룡이가 춘향이한테 (암행어사 출두 이전) 일부러 걸인 행색으로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죠. 또 <오뒷세이아>의 시작인 트로이 전쟁이 한 가정의 파괴였던 것과 대구 되는 결말로 한 가정의 회복을 보여준 것도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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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벤스 作 <파리스의 심판> |
| ⓒ 런던네셔널갤러리 |
덕후 : 트로이 전쟁은 남성들에 의한 패권 다툼이었지만, 되레 헬레네가 명분으로 몰려요. 그럼에도 또 다른 피해자인 페넬로페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전쟁의 비 존엄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왜 항상 사과하는 쪽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지를 지적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기자 : 영화를 보고 헬레네를 다룬 작품이 또 없을지 찾아봤는데 스테시코로스(고대 그리스 서정시인)과 에우리피데스(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작품 등이 있더라고요.
교수 : 두 작품에서 나오는 것이 헬레네 논쟁이에요. 과연 헬레네가 진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맞는지 싸움이 붙죠. '헬레네는 트로이에 간 적이 없다', '파리스와 함께 도망간 것은 헤라가 만든 헬레네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논쟁이 오갔죠.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핵심적인 논제이기도 했어요. 헬레네 논쟁은 결국 말과 이야기가 짓는 폐해에 대한 논쟁이거든요.
기자 :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요?
교수 :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말에만 빠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죠. 헬레네가 실제로 트로이에 갔는지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갔다'는 말만 믿고 군대를 보내고,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 같은 거예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도 로고스(말, 이야기)가 빚은 허상이 집단 감정으로 번지고,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줍니다. 요즘으로 치면 가짜뉴스의 폐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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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오디세이> 중 키르케의 모습. |
| ⓒ 인스타그램 채널 'theodysseymovie |
덕후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질투하는 키르케>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상상했는데 영화에서는 시골의 인자한 중년 여성으로 등장해서 의외였어요. 그런 여성이 건네는 음식이라면 정말 아무런 의심 없이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끝판왕 : 키르케는 원작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의 캐릭터예요. 영화에서는 놀런 감독이 자기 메시지를 전달하기 적합한 모습으로 바꾼 거 같고요. 헬레네도 실제로 더 복잡한 캐릭터인데 그 복잡성을 드러낼 수 없도록 묘사했더라고요. 두 캐릭터 모두 카메오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임을 전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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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오디세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석민주씨, 이태수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서양고전문헌학 교수(카메라 모니터 내 왼쪽부터). 카메라 모니터 밖은 사회를 맡은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
| ⓒ 정교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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