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서해서 中 강압적 행동”...한국 발표엔 ‘중국’도 ‘서해’도 없었다

유지혜 2026. 11. 1. 07: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이 “서해에서의 중국의 강압적 행동”을 문제 삼았으나, 한국은 보도자료에 ‘서해’나 ‘중국’을 거론하지 않았다. 중국이 서해에 무단으로 구조물을 설치한 가운데 당사자인 한국보다 미국이 더 적극적으로 중국의 ‘회색지대 도발’을 통한 해양 영향력 확장 시도를 경계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3국 외교장관회의 뒤 미 국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시도, 동중국해와 서해에서의 중국의 강압적 행동(coercive behavior),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러시아·중국 간 협력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세 장관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했다”면서다.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가운데),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만해협과 관련한 논의의 주체는 루비오와 조현 외교부 장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 敏充) 일본 외상 등 세 장관이고, 서해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루비오로 돼 있다. 루비오는 서해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강압적 행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이는 지난 2018년부터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으로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양국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PMZ 내에는 어업 이외 시설물 설치나 자원 개발 등이 제한되지만, 중국은 양식시설이란 명분을 내세워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에 더해 중국 해경과 민간 선박이 구조물을 조사하려던 한국 조사선의 접근과 장비 투입을 막는 일도 벌어졌다. 시설물 주변 해역에서 중국 측이 한국의 활동을 제한한 것으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구조물 설치를 통해 실질적 영향력을 확대한 것처럼 서해에서도 비슷한 회색지대 수법을 쓰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뒤 중국은 관리시설 1기를 PMZ 밖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2기가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동중국해에서도 이어도 주변의 해양관할권을 둘러싼 이견과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군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이어도 상공의 한·중 방공식별구역 중첩 구역에는 중국 항공기가 연간 약 90~100회 진입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영공 침범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무력 과시로 볼 수 있다.

루비오는 이같은 중국의 행태를 염두에 두고 3국 장관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건 동맹에 대한 중국의 강압적 조치를 미국이 마냥 방치하지 않겠다는 경고 성격도 있어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9차례 이뤄진 3국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이 이처럼 서해 문제를 공개 거론한 건 처음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 측 보도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자세하게 담기지 않았다. 외교부는 “세 장관은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포함해 주요 역내 및 글로벌 정세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이와 관련 3국 간 소통과 공조를 한층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일방적 변경 시도의 주체가 누구인지, 이런 행위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일본 외무성은 “세 장관은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를 포함한 지역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3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역시 중국이나 동중국해, 서해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도 참여하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외교장관은 별도로 만나 명확한 대중 견제 메시지를 내놨다. 지난달 31일 애틀랜타에서 열린 회의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네 장관은 “자의적인 수출 제한을 포함한 경제적 강압과, 과잉생산을 초래해 핵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는 비시장적 정책 및 관행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핵심광물 수출 통제와 산업 과잉생산 문제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공동성명은 “쿼드 국가들은 ‘인도·태평양 해양감시 협력’ 구상에 따른 첫 훈련을 ‘시 드래곤 2027’에서 실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 드래곤은 각국 해상초계기가 실제 잠수함을 탐지·추적하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 대잠훈련이다.

이와 관련, 루비오는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쿼드의 향후 협력 방향에 대해 “수상뿐 아니라 수중(under the water)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항행의 자유에 어떤 위협이 존재하는지 더 잘 파악하기 위해 자원을 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대잠훈련을 쿼드의 정보 공유·해양감시 구상과 연결하고, 잠수함 탐지·추적 등 수중 감시 협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루비오는 또 동남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11월 16~18일)가 열리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쿼드 정상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사된다면 이는 2024년 이후 처음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 처음 참석하는 쿼드 정상회의가 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쿼드가 대중 기조 조율을 위한 정상급 협의를 재개하는 가운데 한·미·일 협력은 아직 정상 차원의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루비오는 “쿼드는 반중국 또는 어느 누구에 반대하는 연합이 아니다”며 특정 국가가 아닌 행동과 활동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활동이나 행동이 한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면 누구에게나 분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유지혜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