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어머니'는 어떻게 미국 모성의 아이콘이 됐나

박홍순 2026. 10. 3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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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의 <화가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숭고한 모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통한다.

어머니의 삶이라든가 모성의 표현은 그의 예술관과 한참 거리가 있었기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이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모성에 합당한지, 이를 알려주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굳이 부모의 사랑과 별도로 '모성'이라는 거창하고 모호한 개념을 만들고, 여성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자 의무로 부과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샤리 서러는 <어머니의 신화>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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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모성애 ④ 어머니의 신화?

[박홍순 기자]

▲  제임스 맥닐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 1871년
ⓒ 퍼블릭 도메인
미국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1834~1903)의 <화가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숭고한 모성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통한다. 워낙 유명해져서 다양한 패러디 작품이 나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을 접하면 평범해 보인다. 노년기 초입에 들어선 여인이 단정한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특이하다면 측면 모습을 담았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숭고한 어머니의 표상이 된 그림

게다가 휘슬러의 어머니 초상이니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게 없기도 하다. 사실 그녀를 모델로 그리게 된 이유도 무언가 기대하던 감상자들에게는 맥이 빠진다. 나중에 어머니의 편지에 따르면, 어느 날 예정된 모델이 사정이 생겨 그의 작업실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작업실에 있던 어머니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제안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화가도 모델이 누구냐에는 주목하진 않았던 듯하다. 원래의 작품 제목이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얼굴과 손의 혈색 말고는, 온통 회색과 검은색 계열이다. 무채색을 바탕으로 벽과 바닥의 사각형과 인물의 곡선이 대비된다. 다양한 크기와 비율의 사각형이 배열되어 있다. 액자는 가로로 긴 사각형이고, 흰색·회색과 검은 테두리의 조합이다.

커튼은 세로로 길게 벽면을 가르며 율동감을 준다. 어머니의 검은색 옷은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색채와 형태의 조화에 초점을 맞추었고, 어머니는 조형적 요소의 하나로 다루어진 느낌이다. 평소에 "예술은 자연 세계의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본질상 조화로운 색채의 배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라고 했던 그의 예술관이 반영된 배치였다.

건조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었기에 1872년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전시되었을 때 비평가와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당시 영국에서는 장식적·감상적 요소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빅토리아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시기(1837~1901)에 건축·가구·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유행한 양식이었다.

과거의 고딕·로코코·르네상스 양식에서 세밀한 형태, 풍부한 곡선, 강렬한 원색 등을 선택해 화려하게 연출했다. 풍부한 서사와 감정이 담긴 문학이나 전설을 소재로 삼아 흥미를 돋우었다. 미술에서는 세밀한 묘사, 장식적 표현과 원색을 선호한 '라파엘 전파'가 대표적이었다.

대다수 평론가와 대중의 선호가 여기에 쏠려 있었으니 무채색과 사각형 구성이고, 서사나 감정이 배제된 휘슬러의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왔을 리 만무했다. 그는 감상이나 도덕적 관념의 표현을 반대하고, 조형적 매력 중심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했다. 어머니의 삶이라든가 모성의 표현은 그의 예술관과 한참 거리가 있었기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림이 전시된 영국에서 차가운 반응이었으니,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더했다. 오랜 기간 잊힌 작품이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계기로 대중의 눈에 들어왔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모병 포스터를 비롯한 전쟁 관련 홍보물에 이 그림이 사용되면서 갑자기 명성을 얻었다. 숭고한 모성 이미지를 통해 군인들에게 가족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촉구하려는 의도였다.

1929년에 시작된 미국 대공황 시기에 다시 한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32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빌려 2년간 미국 18개 도시를 순회하며 전시회를 열었다. 이 기간에 무려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이즈음 열린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도 주요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아이를 지키는 강인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통해 경제적 어려움에 신음하던 미국인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다. 아예 이 그림을 활용한 우표도 발행했다. 우표에는 "미국의 어머니들을 기리고 추모하며"라는 문구가 있었다. 몇 년 후에는 이 그림이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대형 공공 조형물의 주제로 선정되었다. 이후 미국에서 숭고한 모성의 상징이 되었다.

모성의 보편적인 기준이 있는가?

모성과는 별 관련이 없이 형식적인 조형미에 초점을 맞추었던 그림이 어느 날 모성의 상징으로 변신하는 마법이 벌어진 것이다. 국가가 모성의 가치를 유포해 국민의 관심이 가족에 머물게 함으로써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 또한 전쟁 시기에 모성을 국가주의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모성과 가족이 일종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다.
▲  장 바티스트 그뢰즈 <응석받이 아이> 1765년
ⓒ 퍼블릭 도메인
휘슬러의 그림이 상징으로 자리 잡은 과정처럼, 모성이 여성의 원초적 본성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장된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그러한 생각의 한 부분으로 모성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뒤따른다. 어머니와 아이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모성에 합당한지, 이를 알려주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 화가 장 바티스트 그뢰즈(1725~1805)의 <응석받이 아이>는 모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나아가 그러한 기준을 확정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제목 그대로 응석받이 행위를 하는 아이와 이를 나무라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현대의 가정에서도 행위의 종류만 다를 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지금 아이는 빨리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뿐이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후다닥 밖으로 나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 눈치다. 어머니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놀러 나가겠다는 다짐을 받아 놓은 듯하다. 아이는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상황이라 익숙하다. 어머니의 시선을 어지럽힌 후에 접시의 음식을 강아지에게 준다. 몰래 한다고 한 행위지만 어머니에게 금방 들키고 만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강아지를 가리키며 나름대로 혼내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엄하게 혼내는 느낌이 아니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비친다. 매번 웃으며 넘기고, 방관하거나 잘못조차 감싸는 일이 반복된다. 아이는 갈수록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응석을 부리는 아이가 되어간다. 제목을 고려할 때 화가는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의 잘못이나 억지를 수시로 묵인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결국 버릇없는 인간을 만든다는 경고를 보낸다.

모성을 중시하고, 일상에서 아이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라고 주장하는, 개인 심리학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조차 <삶의 의미>에서 응석받이의 문제를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한다.

'계속 어머니 품에서만 보호되어 온 아이가 더는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없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 문제아 중에는 응석받이에게서 볼 수 있는 여러 형태가 나타난다. 어머니의 주의를 끌기 위해 고심하고 환경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한다.'

그에 의하면 응석받이는 언제나 어머니를 자신에게 묶어 두고 독점하려 한다. 문제는 아이 시절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이 정서를 그들의 인생 스타일에 추가시켜 가는 것"이다. 응석받이로 성장하면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지배하려는 성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경향 때문에 동료 의식 형성에 실패한다. 아들러는 인생의 실패자 중에는 응석받이로 자란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모성이 응석받이 허용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이 생긴다. '적절한' 사랑과 '과도한' 사랑의 경계는 무엇인가? 영유아 시절에 아이가 원할 때 늘 옆에 있으면서도, 아이가 어머니를 통해 욕구 실현이라는 충족감을 느끼면서도 과보호와 전혀 다른 관계가 이루어지는 기준이 무엇인가?

아이의 자립적·자율적 성격이 중요하면 모성보다 다른 면을 강조해야 하지 않은가? 특정 성격은 영유아 시절을 놓치면 나중에 형성되기 어렵다. 이를 위해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일부러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협력하는 성격을 형성하려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도록 일찍부터 관련 시설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신비로운 모성은 신화인가?

현실에서 어머니와 밀착된 관계가 갈등을 낳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아이가 원하는 바와 어머니가 바라는 바가 일치하지 않을 때 갈등이 생긴다. 부모는 흔히 '사랑하기 때문'이라거나 '자식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간섭한다. 수많은 아이가 어느 순간 어머니에게 격하게 반발하고, 대화가 단절되는 경험을 한다. 갈등이 반복되고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느끼는 복잡한 심리에 빠지곤 한다.
▲  에곤 실레 <엄마와 아기> 1912년 / 1908년
ⓒ 퍼블릭 도메인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엄마와 아기>는 성장기의 갈등이 평생 냉랭한 관계로 고착된 사례를 보여준다. 여러 해에 걸쳐 같은 주제의 그림을 꽤 많이 남겼다. 그런데 하나 같이 통념적으로 떠올리는 따뜻한 분위기와 상당히 다르다. 모성은커녕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서로 경계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바닥에 깔려 있다.

두 그림만 봐도 경계와 불안의 느낌이 짙게 묻어난다. 왼쪽 그림은 어머니가 껴안고 얼굴을 바짝 대고 있는데, 아기는 두려움에 가까운 표정과 손동작을 보인다. 오른쪽 그림은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산한 기운이 느껴질 만큼 숨겨진 의도가 담긴 느낌이다. 두 손으로 아이 머리를 감싸고 있어서 마치 어머니의 의도대로 짜 맞추는 강압적 분위기를 풍긴다.

실레와 어머니의 관계가 그림에 반영된 듯하다. 어려서부터 갈등이 깊었다.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아이의 미술 재능이었다. 실레는 일찍부터 예술적 열정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고, 가족을 부양할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자라길 요구했다. 화가의 길을 걷자 어머니는 저주가 담긴 편지를 보냈고, 실레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지닌 채 살았다. 성장기부터 축적된 갈등이 원망 가득한 그림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아이의 성향이나 꿈과 무관하게 초등생부터 혹독한 입시 경쟁으로 내모는 어머니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현실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진정 바람직한 관계는 아이의 성향과 꿈, 자율적인 선택을 존중하고 뒷받침하려는 노력에서 생긴다. 우리는 이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역할이라고 부르면 된다.

여기에 굳이 부모의 사랑과 별도로 '모성'이라는 거창하고 모호한 개념을 만들고, 여성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자 의무로 부과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샤리 서러는 <어머니의 신화>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밝힌다.

'훌륭한 어머니라는 개념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졌다. 사람이 만들었지 자연의 법칙은 아니다. (…) 모성의 신화를 벗김으로써 교육·정책·정신요법·도덕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환경을 만드는 통제의 가능성을 확대할 수 있다. 가족 환경 안에서 공동선을 위한 개인 희생이 있을 수 있지만, 언제나 어머니만이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희생은 공유될 것이다.'

모성이 자연적 본성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화의 산물이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단계에서 사회의 요구에 따라 인위적으로 강조되고 유포된 관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서러는 몇 가지 역사적 변화를 통해 설명한다. 신화시대에 어머니 여신은 출산뿐만 아니라 변화·죽음·부활을 관장할 만큼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자연적 삶에 가장 가까웠던 선사시대 어머니들은 자녀를 양육했지만, 자녀에 속박되지는 않았다.

근대 이전만 해도 어머니는 생산 활동에 중요한 한 부분으로 참여했기에 육아·가사에 특화되어 있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함께 여자의 노동 가치가 추락하고, 가정 내 남자의 권위가 강해지면서 모성이 강조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러는 모성이 자연 본성이 아니라 역사상 큰 변화를 겪었으며 특정한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관념이라는 것이다.

영국 사회학자 페이스 엘리엇도 <가족 사회학>에서 모성의 변화를 검토하며 유사한 근거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에는 가사 노동과 생산 노동은 쉽사리 분리될 수 없었다. 어머니들은 생산 활동에 널리 참여했기에 육아·가사는 가족 구성원 전체에 분담되었다.

엘리엇은 산업화와 함께 어머니는 주부로서 육아·가사에서의 역할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공장 중심의 생산 체계가 자리 잡은 결과, 생산 활동과 가족 활동이 분리되면서 성별 분업이 심화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즉 자본주의 산업화와 동시에 나타난 여성의 경제적 의존에 따라 육아·가사를 어머니의 지배적인 역할로 고정했다. 이를 여성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모성을 일종의 도덕률로 유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서러는 모성이 신화임을 밝혀냄으로써, 어머니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적 관행과 도덕률을 극복하고, 양육과 가사에 동반되는 희생을 공유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한다. 어머니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개별 가족 구성원 전체는 물론이고 사회적 대응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간에게 자연 본성이 있다면 서로를 돌봐주는 능력이 아닐까? 인간의 아이는 긴 성장기를 가짐으로써 뇌의 기능이 고도로 발전하도록 진화했기에 오랜 기간 보살핌이 필요로 됐고, 이를 위해 육아·가사에서의 협력이라는 특성이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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