킁킁 대며 한 모금... 나홀로 차 이름 맞히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단총일까요? 아쉽게도 차를 준 사람도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림에 어울리는 잔과 차호를 고르고, 그 분위기에 맞는 차까지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차의 이름부터 잘못 짐작한 셈이지요.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 차 한 잔으로 일상에 쉼표를 찍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24절기와 동양화를 오가며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합니다. <편집자말>
[노시은 기자]
|
|
| ▲ 팔준도 장승업(張承業, 1843~1897) 지본담채 각 159.5×38.0cm, 간송미술문화재단 |
| ⓒ 간송미술문화재단 |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생생한 말 그림
|
|
| ▲ 팔준도 장승업(張承業, 1843~1897) 지본담채 각 159.5×38.0cm 중 일부,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
| ⓒ 노시은 촬영 |
|
|
| ▲ 이토록 생생한 말이라니! 당장이라도 그림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장승업 팔준도 일부,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
| ⓒ 노시은 촬영 |
장승업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삼원(三園)'으로 불리는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을 두고 흔히 호방하다거나 거침없다고 평가하죠. 그런데 <팔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힘찬 필치 못지않게 섬세한 관찰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개를 숙인 말의 눈길이나 달리는 말의 근육과 움직임까지, 장승업은 말들의 서로 다른 성격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
|
| ▲ 나는 왜 이 차를 무이암차라고 굳게 믿었던 것일까? |
| ⓒ 노시은 |
당삼채 가운데는 말을 빚은 도자기도 많습니다. 당나라 사람들은 말을 흙으로 빚어 녹색과 황갈색 등의 유약으로 장식했고, 상당수는 무덤에 함께 묻는 부장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삼채의 말도 장승업의 말처럼 그 생김새가 제각각이지요. 그림 속 말을 보다가 당삼채의 말을 떠올리고, 마침내 찻장에 넣어둔 잔까지 생각이 미친 셈입니다.
잔을 정하니 차호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유약을 입히지 않고 구운 무유소성 차호입니다. 표면의 거친 흙빛과 고블렛 잔의 녹갈색이 제법 잘 어울립니다. 그렇다면 차도 묵직한 것이 좋겠지요. 아껴뒀던 차를 꺼냈습니다.
이름 모를 차
|
|
| ▲ 무화과 피낭시에에 곁들이자 단총의 특징이 도드라지며 본색을 드러냈다. |
| ⓒ 노시은 |
그림과 차도구에 어울리는 차까지 마련했으니 이제 마셔볼 차례입니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자 고개가 갸웃해졌습니다. 어라? 분명 암차 같은데, 무언가 다릅니다. 처음에는 화향이 강한 수선(水仙) 종류인가 싶었습니다. 구운 향 뒤로 꽃향기도 느껴지고, 차의 두께도 제법 묵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암차에서 즐기는 특유의 시원한 여운 대신, 혀에 살짝 감기는 쌉싸름함과 떫은맛이 남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요. 결국 차를 구해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암차인지 궁금하다고요. 돌아온 대답에 그만 놀랐습니다. 암차가 아니라 봉황단총(鳳凰單叢)이랍니다! 어쩐지! 마시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
|
| ▲ 독특한 모양에 끌려서 모시고 온 고블릿 잔은 왠지 모르게 당삼채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
| ⓒ 노시은 |
봉황단총은 향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구분합니다. 꿀과 난초를 연상시키는 밀란향(蜜蘭香), 치자꽃을 떠올리게 하는 황지향(黃枝香), 목련 향을 닮은 옥란향(玉蘭香) 등이 대표적이지요. 그중 제 마음이 기운 것은 행인향(杏仁香)이었습니다.
행인은 살구씨 속 알맹이를 가리키는 말로, 행인향은 아몬드처럼 고소한 견과류의 향미가 특징인 단총입니다. 여기에 은은한 꽃향이나 과일향이 어우러지기도 하지요. 배화 정도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는데, 강하게 홍배한 행인향이라면 제가 처음에 암차로 착각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됩니다.
물론 향과 맛만으로 정확한 차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제 입안에 남은 견과류 같은 고소함과 은은한 꽃향을 떠올리니 행인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
| ▲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무화과와 크림치즈가 올라간 피낭시에를 곁들여 티타임을 즐겨보았다. |
| ⓒ 노시은 |
한 입 베어 물자 부드럽고 달콤한 과자 속에서 무화과 씨가 오도독 씹힙니다. 크림치즈의 부드러운 산미도 느껴지고요. 여기에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조금 전까지 두드러졌던 구운 향 뒤로 단총 특유의 풍미가 한층 살아납니다. 아몬드와 버터의 고소함, 무화과의 달콤함이 차의 쌉싸름한 끝맛과도 제법 잘 어울립니다.
|
|
| ▲ 봉황단총 행인향의 탕색은 맑은 황토빛에 가깝다. |
| ⓒ 노시은 |
장승업의 <팔준도>에서 시작한 차 시간이 이렇게 뜻밖의 봉황단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림에 어울리는 잔과 차호를 고르고, 그 분위기에 맞는 차까지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차의 이름부터 잘못 짐작한 셈이지요.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처음부터 단총인 줄 알았다면 이 무유소성 차호 대신 백자처럼 유약을 입힌 도자기나 유리 다구를 골랐을 겁니다. 향을 섬세하게 감상하기에는 그편이 더 좋았을 테니까요. 오늘의 차호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을 선사했지만, 행인향으로 짐작되는 이 차가 본래 어떤 향을 품고 있는지는 아직 다 만나지 못한 기분입니다.
다음에는 백자 개완에 우려봐야겠습니다. 그때도 행인향이라고 생각할지, 또 다른 차의 이름을 떠올리게 될지 궁금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 이메일, 외부에 넘겼다" AI 정보 유출의 피해자가 됐다
- "태움 당하면 어떻게 할 거야?" 간호학과 학생들의 놀라운 답변
- '전망 없다'던 세르비아어, 이걸로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 '화가의 어머니'는 어떻게 미국 모성의 아이콘이 됐나
- "작가가 아니라 디자이너" 이 기업이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
- 같은 한국말인데, 왜 물어보기 두려웠을까
- 2년 기다려 첫 사진 찍은 남자가 '문어잡이 배'까지 산 이유
- "트럼프, '지쳤다' 보도에 격분해 쉬려던 주말유세 재개"
- "파병 반대, 아이들이 보고 있다"... 1206명 교사 선언
- 국방위원장 진성준 미 비자 결국 발급... 예정대로 미국방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