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로 붕괴된 마을, 이름 없는 조직이 850여 가구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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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피스는 2015년 네팔 대지진부터 인연을 이어온 현지 NGO '나마스떼 네팔'과 함께 2026년 8월 26일 발생한 기후재난 홍수 현장을 2026년 9월 18일부터 조사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수는 지나갔지만 기후재난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음 재난에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는 사회'를 구축해가는 일입니다. 아래로부터 정부까지 시도하고 실험하고 실행한 일들을 돌아보고 연결하며 매뉴얼과 연결망, 그리고 네팔만이 아니라 지구적 협력의 그물망을 함께 만들어갈 때 비로소 기후재난에 대한 회복력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후재난의 시대,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기후위기와 재난에 세상과 함께 대응해가야 하기 때문이죠."
네팔의 기후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다음 빙하홍수가 일어나지 않는 지구'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2027년 1월 나마스떼 네팔과 곶자왈 작은학교 이매진피스는 네팔 기후재난 회복을 위한 평화캠프를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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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피스는 2015년 네팔 대지진부터 인연을 이어온 현지 NGO '나마스떼 네팔'과 함께 2026년 8월 26일 발생한 기후재난 홍수 현장을 2026년 9월 18일부터 조사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자말>
[임영신 기자]
2025년 1월, 네팔 히말라야 산길을 따라 르왕 마을로 오르던 길이었다. 30년 넘게 히말라야를 안내해 온 소셜투어 대표이자 나마스떼 네팔 이사인 라지 가왈리가 물었다.
"혹시 '히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아무도 답하지 못한 채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자 그가 답해 주었다.
"히말은 눈 덮인 봉우리를 뜻하는 네팔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건 히말이 사라져 가는 히말라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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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이 사라져가는 히말라야 "'히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히말은 네팔어로 눈 덮인 봉우리를 뜻하죠. 우리가 지금 오르고 있는 건 '히말'이 사라져가는 히말라야인 셈이죠." |
| ⓒ 이매진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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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년 8월, 빙하 홍수로 쓸려내려간 네팔의 강가 마을들 |
| ⓒ 나마스떼 네팔 |
인스타그램 연결이 850가구에 닿기까지
나마스떼 네팔팀은 우리에게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며 한 사립학교 캠퍼스로 우리를 안내했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푸른 생수통과 가스레인지, 옷가지, 식기 등 온갖 구호물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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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착한 물품을 함께 나르는 사람들 이사를 앞두고 있는 와중에도 새롭게 도착하는 물건들. 금방 들어선 사람이라도 도울 일이 있으면 즉각 일어나 손길을 보탠다. |
| ⓒ 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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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재난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채우려 모인 사람들일 뿐. 이름도 단체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백명에게 구호키트를 전달하고, 매일 수십명이 움직이며, 길이 끊어진 마을, 정부와 국제기구의 손이 닿지 않는 마을에 우리는 연결을 통해 다다릅니다. |
| ⓒ 도마(D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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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재난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채우려 모인 사람들일 뿐. 이름도 단체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백명에게 구호키트를 전달하고, 매일 수십명이 움직이며, 길이 끊어진 마을, 정부와 국제기구의 손이 닿지 않는 마을에 우리는 연결을 통해 다다릅니다. |
| ⓒ 도마(DOMA) |
"길이 끊긴 상황에서 정부와 군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고립지역 사람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죠. 답답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해보자며 인스타에 소식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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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를 통해 모여진 300명의 청년들, 재난 직후부터 구호활동을 시작해 "재난이 일어났는데 채워지지 않는 갭을 보게 되었죠, 누군가가 채워야한다면 뭐라도 해보자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되었고. 인스타를 통해 연결의 연결이 일어났죠." 850가구가 넘는 재해가구에 전해진 레스큐 백에는 태양광 랜턴과 충전지, 방수포와 식량. 구급약품 등 현장의 필요를 채우고 세상과 연결할 생필품들이 꾸려졌다. 그러나 하루하루 필요에 따라 구조키트에 담기는 물품은 변해간다. 현장과 소통하며 틈을 메우는 반응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
| ⓒ 도마(DO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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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려진 긴급구호 레드백이 전달되는 모습 현장의 필요부터, 현장에 물품이 도착하는 모습까지 SNS를 통해 전달되고, 발견된 필요는 바로 공유된다. 물건으로, 돈으로, 물품포장으로, 전달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재난의 강을 함께 건너는 네팔 젠지세대, 레베카 솔닛의 표현처럼 '재난 속에 피어나는 유토피아'를 함께 공유해가고 있다. |
| ⓒ 도마(DOMA) |
짐을 나르는 사이 누군가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소셜미디어(SNS) 홍보를 맡은 도마(DOMA)였다.
"피해현장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재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여기 와서 함께 짐을 나르고 패킹하며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 고맙다고 할 때 너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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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담당자 도마 SNS 소통 담당자 도마_긴급구호 키트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어떻게 꾸려지는지 영상을 통해 소통하며 설명하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p/DcqpHIYoOCc/ |
| ⓒ 도마(DOMA) |
이번 홍수에서 정부는 구호물자 수집과 배분을 지자체를 통해 조정하는 '원도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그럼에도 정부란 여전히 크고 느린 조직이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현장에 정부가 감당하지 못하는 틈이 보이면 청년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갔다. 체제와 협력하면서도 동시에 견제하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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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복지원을 막기 위해 물품지원요청 목록을 만들고 체크하는 닥시나와 활동가 "중요한 건 필요한 물품을 필요한 곳에 중복되지 않게 전달하는 거예요. 항상 그 퍼즐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딱 맞을 때 가장 기쁜 일이 되기도 하죠." |
| ⓒ 이매진피스 |
"한번은 텐트 20개를 싣고 가던 중 그곳에 이미 텐트 30개가 지원됐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차를 돌려 다른 곳에 전달했어요. 소통이 없었다면 허비됐을 텐트들이 제자리를 찾아간 거죠."
수요기반 구호는 하루하루 현장에서 함께 판단하며 반응하는 일이었다. 몇 주가 지나며 강가의 마을 대신 카트만두의 친척 집 등으로 옮겨 온 이재민들을 위해 창고를 마켓처럼 열기도 했다.
"구호품을 받는 처지가 됐다고 해서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을 순 없잖아요."
속옷부터 겉옷까지 찾아온 사람들은 필요와 취향에 따라 직접 골랐다. 신발이며 필요한 물품까지 공유창고처럼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갈 수 있었다. 고립지역에 보내지는 꾸러미에 들어갈 수저나 위생용품 등은 가능하면 새것으로 구매해서 키트를 꾸렸다. 구호받는 사람이 존중받고 보호받는다는 감각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요를 먼저 묻고 도움이 닿지 않은 곳에 물품을 보낸다는 단순한 원칙으로 끊임없이 소통하며 끊어진 관계를 잇고 새로운 길을 놓아갔다.
한 달째 집에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에 며칠은 이재민처럼 창고에서 자고 있다는 아심에게 무엇이 이토록 이 일에 전심을 다하게 하는지 묻자 그는 무심코 답했다.
"저는 신두팔촉 출신이에요."
그 말에 곁에 있던 라지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웃는다. 신두팔촉은 2015년 대지진 때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었다.
"재해는 한순간이지만 트라우마는 오래가죠."
지진이 지나간 뒤에도 그의 어머니는 한동안 우기만 오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온을 주던 강이 불안 속에 지켜봐야 하는 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집과 마을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구호텐트에서 지원물품으로 살아야 했던 기억은 그를 '다른 구호'의 길에 서게 했다.
"물건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 더 필요한 일 아닐까요?"
아심은 그 질문의 답을 동료들과 함께 찾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한 달째 그곳을 지키는 청년들에게 이후의 계획을 묻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답했다.
"변화를 만드는 데 꼭 단체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때로는 몇 사람과 조금의 의지, 그리고 약간의 수고면 돼요. 우리는 그저 그 자리에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 아닐까요?"
그 말은 그대로 SNS에 이들을 소개하는 문장이 되었다.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는 사회"
저마다의 현장에서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기후재난의 최전선에서 각각의 역할을 감당했던 이들이 긴급구호에서 삶의 재건으로 나아가는 이후의 걸음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닥시나는 이번 홍수 때 정부가 보낸 대피 문자의 한계를 꼬집었다.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문자가 무슨 의미가 있죠? 갑자기 불어난 강 앞에서 어디가 안전한지 누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보다 세세한 대응체계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포개어졌다. 홍수가 집을 덮친다면 집은 대피처가 될 수 없다.
제이슨의 생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엔지오나 제도화된 구호보다, 실천하는 사람들이 직접 임팩트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 젠지세대에게 더 맞는 실천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관계망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2015년 대지진부터 2026년 빙하홍수까지 현장을 지켜 온 라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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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기후재난 회복력 네트워킹을 위한 연결의 식탁 _ 9월 26일 카트만두 카르마커피. 청년활동가 제이슨, 닥시나, 아심, 도마와 나마스떼 네팔, 이매진피스가 함께한 네팔 기후재난 회복력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간담회 |
| ⓒ 이매진피스 |
히말라야의 기후홍수를 만들어낸 것은 우리의 제국적 생활양식이며, 그 대가를 가장 책임 없는 이들이 치르고 있다는 연루의 자각이 없다면 다음 기후재난은 막을 길이 없다. 네팔의 기후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다음 빙하홍수가 일어나지 않는 지구'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다음 재난에 다시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는 사회', 그 출발점에는 이미 재난의 강을 함께 건너는 네팔 사람들이 서 있다. 그 다른 한쪽 끝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연결과 공존의 감각, 연루에서 연결로 나아가는 전환의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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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기후재난 회복기금 홍수는 지나갔지만, 기후재난은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속보가 사라지고, 긴급구호에서 재건으로 전환되는 지금 네팔에 필요한 것은 다음 재난에 다시 제로에서 시작되지 않는 기후재난 회복력 네트워크를 구축해가는 일입니다. |
| ⓒ 이매진피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매진피스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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