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안 지켜도 그만" 주주활동가가 본 4가지 문제

류승연 2026. 10. 3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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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시대,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은 고객과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기관투자자가 회사에 ESG 지침을 만들라거나 자사주를 소각하라고 요구하고 싶어도 정관 변경이라는 우회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개정 코드에는 기관투자자가 이사회를 점검할 때 이사들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충실했는지 살피라는 문구가 새로 들어갔다.

노 변호사는 "엄밀히 말해 기관투자자에게 관여 활동은 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코드를 지키려면 비용이 든다"며 "리서치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만큼 수익률이 나와야 운용사들도 코드를 지키고 싶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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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는 누구를 위해 일하나⑦] 노종화 변호사 "국민연금 정치 독립시키고, 약속 안 지킨 기관 빼야"

투자의 시대, 남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은 고객과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를 규정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 <오마이뉴스>는 자산운용사 265곳의 지난 10년간 투자 활동 20여만 건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세계 최초 도입국인 영국도 직접 찾았습니다. 한국 운용사들의 침묵과 영국의 대답을 전합니다. <편집자말>

[류승연, 복건우, 이진민 기자]

▲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가 9월 9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복건우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가 남의 돈을 맡은 '집사(steward)'로서 기업을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도록 한 자율 지침, 스튜어드십 코드가 10년 만에 옷을 갈아입었다. 적용 대상은 주식에서 채권·부동산까지 넓어졌다. 다른 기관과 손잡는 협력적 관여, 소송,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점검 같은 강도 높은 수단과 이행 점검 기준도 새로 생겼다. 시장에선 유명무실했던 제도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저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10년 전 처음 만들 때처럼 이번에도 판을 바꾸기보단 분위기에 밀려 마지못해 흉내만 내고 있거든요."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의 말이다. 노 변호사는 수년간 대기업 주총장을 누벼온 주주 활동가다. HDC현대산업개발 산재 사고 관련 안전경영 의무화를, 경영진 비리로 홍역을 치른 KT 사태에 대해서는 이사회 독립성 확보를 내걸고 목소리를 냈다. 그와 함께 개정 코드를 들여다본 이유다.

조문을 하나씩 짚어갈수록 그의 말에는 회의가 짙어졌다.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제도, 상법과 '5% 룰'이라는 법의 벽, 보수적인 법원, 정치에 휘둘리는 국민연금. 코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뿌리 깊은 문제들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그는 "가야 할 방향"이라고 했다. 개정 코드가 부딪힌 네 가지 벽, 그리고 그가 내놓은 해법을 차례로 들어봤다.

① '큰손'마저 뒷걸음질… 국민연금의 캐스팅보트 잔혹사

노 변호사에게 지난 10년은 기대보다 한계가 더 뚜렷했던 시간이었다. 자본시장의 결정적 순간마다 기관투자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큰손' 국민연금도 다르지 않았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국민연금 사례부터 쏟아냈다.

먼저 2019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맺은 파생상품 계약으로 회사에 큰 손실을 끼쳤다는 논란에 휩싸인 현정은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서 국민연금은 반대 대신 기권을 택했다. 국민연금의 표에 결과가 갈리는 '캐스팅보트'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 한 것이라고 그는 봤다.

다음은 2021년 삼성전자. 국정농단 사건 관련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이사들의 재선임 안건에서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됐다. 노 변호사는 "당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다루는 독립 자문기구) 안에서조차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그런데 알고 보니 제대로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국민연금은 이미 찬성으로 결론을 내놓은 상태였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올해 3월 LG화학.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털이 주주가 경영진에게 법적 구속력 없는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권고적 주주제안' 정관 신설안을 올렸다. 과거 비슷한 안건에 찬성했던 국민연금은 이번엔 반대했다. 노 변호사는 "의도된 반대였다면, 주주가 목소리를 낼 최소한의 수단이자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꼭 필요한 장치를 거부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달라지는 것도 있다. 개정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회사를 감시할 때 '재무적으로 중대한 ESG 요소'를 따지도록 지침을 손봤다. 국민연금도 위탁운용사를 평가할 때 수탁자책임 활동 배점을 늘리기로 했다. 이번엔 국민연금이 달라질 수 있을까.

노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기준을 아무리 높여도 이를 실행할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정치권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이 장관이고 여러 부처 차관들이 위원으로 들어와 있다. 민간위원이 있다고는 해도 영향력이 크지 않다"며 "독립성이 떨어지다 보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마치 집권 세력의 결정처럼 비친다. 솔직히 이를 부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두 가지다.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처럼 별도 운용 자회사(APG)에 기금 운용을 통째로 맡기는 방식, 또는 일본 공적연금(GPIF)처럼 의결권을 위탁운용사에 전부 맡기고 그 결과만 평가하는 방식이다. 노 변호사는 "일본처럼 민간 운용사에 의결권을 완전히 위임하고 평가만 하거나, 네덜란드처럼 국민연금을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켜야 한다"고 했다.

② 관여 수단 늘렸다지만… 상법과 '5% 룰'이라는 벽
▲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가 9월 9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복건우
개정 코드는 기관투자자에게 더 센 수단을 쥐여줬다. 비공개 면담 같은 소극적인 방식을 넘어 다른 기관과 손잡는 '협력적 관여'의 근거를 처음 마련했다. 소송 참여나 투자 철회처럼 회사를 압박할 강수도 담았다. 관여 대상도 국내 상장주식에서 채권·부동산·인프라·비상장주식, 해외자산까지 크게 넓혔다.

노 변호사는 "큰 그림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했다. 특히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대상 확대가 꼭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이번 개정을 계기로 기업들에 저탄소 전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며 "기관들이 재생에너지 같은 사업을 새로운 투자 기회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은 2030년까지 1000억 달러를 기후 대응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수단이 늘어난 것과 그 수단을 현장에서 쓸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했다. 현행 상법에서 주주가 주총 안건을 직접 내는 주주제안은 이사 선임이나 정관 변경처럼 법적으로 주총 승인이 필요한 사항에만 할 수 있다. 기관투자자가 회사에 ESG 지침을 만들라거나 자사주를 소각하라고 요구하고 싶어도 정관 변경이라는 우회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협력적 관여도 걸림돌이 크다. 여러 기관이 뜻을 모으면 자본시장법상 '공동보유자'로 묶여 지분을 합쳐 보고해야 하는 '5% 룰(대량보유 보고 의무)'에 걸릴 수 있다. 주주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손에 쥔 패를 먼저 보여주는 꼴이다.

노 변호사는 실제로 힘을 모으려던 소액주주들이 회사로부터 '5% 룰 위반' 주장을 받아 의결권을 제한당할 뻔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다행히 하급심에서 공시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지만, 그런 소송 비용과 법적 위험을 떠안고 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소송과 투자 철회에는 더 회의적이었다. 그는 "대형 자산운용사가 다른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건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민연금조차 지난 10년간 대표소송은 한 건도 내지 않았고, 삼성물산 합병 건에 직접 소송을 낸 게 유일한 실적"이라고 했다. 투자 철회를 두고도 "지배주주 입장에선 '나가주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③ '주주 충실의무' 넣었는데… 법원은 준비가 됐나

개정 코드에는 기관투자자가 이사회를 점검할 때 이사들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충실했는지 살피라는 문구가 새로 들어갔다. 지난해 상법에 명시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코드에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노 변호사는 코드와 상법 개정이 맞물려 효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에 선을 그었다. 조항은 바뀌었지만 "정작 법원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제대로 적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발전한 충실의무 법리는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엇갈릴 때 경영진에게 그 결정이 정당했다는 걸 직접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배제하지 않았는지, 주식 매수 가격이나 합병 대가가 소액주주에게도 공정했는지, 절차와 가격 두 측면에서 경영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한국 법원은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노 변호사는 "상법 개정 전에도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는 이미 있었고, 여러 사건에서 주주인 원고들이 미국식 법리를 적용해달라고 주장했다"며 "그런데 우리 법원은 '충실의무가 입증 책임이나 절차·가격 측면의 공정성을 보장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이해충돌 사안이라고 해서 더 깐깐하게 봐야 한다는 법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법률가인 그조차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의무와 충실의무의 경계가 아직 모호하다고 했다. 상법이 바뀌면서 시장에선 법원이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법원이 그 기대에 맞는 판결을 내놓지 않으면 기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해법은 판례가 쌓이는 것뿐이라고 그는 봤다. 주주 충실의무가 이제 막 법에 들어온 만큼 판결로 구체적인 법리와 심사 기준이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 변호사는 "주주 보호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보여줄 판례가 나와줘야 한다. 이제는 법률이 자본시장을 따라와야 한다"며 "그래야 스튜어드십 코드 단계에서도 '주주 충실의무가 작동한다'는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④ 형식은 갖췄지만… 당근도 채찍도 없는 점검
▲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가 9월 9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복건우
변화는 또 있다. 개정 코드는 이름만 걸어둔 '유령 집사'를 걸러내려고 10년 만에 이행 점검 절차를 새로 만들었다. 올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68개 기관이 첫 점검을 받는다. 앞으로 기관투자자는 해마다 수탁자책임 활동보고서를 한국ESG기준원에 내야 한다. 노 변호사는 "형식적으로나마 안 하던 점검을 하게 된 건 의미 있는 변화"라고 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했다. 잘했을 때 받는 보상도, 못했을 때 받는 불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는 "엄밀히 말해 기관투자자에게 관여 활동은 돈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코드를 지키려면 비용이 든다"며 "리서치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만큼 수익률이 나와야 운용사들도 코드를 지키고 싶어질 것"이라고 했다.

희망의 싹이 없는 건 아니다. 행동주의펀드를 중심으로 관여 활동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조금씩 쌓이고 있다고 그는 봤다. 노 변호사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게 중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여준다는 신뢰와 경험을 시장에 꾸준히 쌓아가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점검을 민간 자율기구인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와 한국ESG기준원에 맡긴 구조도 한계로 꼽았다. 노 변호사는 "점검 결과를 공개하고, 지침을 이행하지 않은 기관은 코드에서 빼낼 수 있어야 한다"며 "이건 연성규범의 틀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기관을 제외하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적어도 이 정도 강제력은 담겼어야 했다는 얘기다.

그가 몸담은 경제개혁연대는 애초부터 이행 점검을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이 직접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이날도 "영국처럼 감독기관이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코드 참여 배제 여부를 결정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했다.

한국의 주주 활동가가 영국에 던진 질문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기자가 곧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운영하는 재무보고위원회(FRC)와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ICGN) 등을 취재할 예정이라고 하자 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내내 냉정한 진단을 이어가던 그가 작게 웃으며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영국 자산운용사들의 '타깃'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시장에도 꼭 들어와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한국 기관투자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바깥에서라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답을 찾아 이제 런던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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