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애니메이션 쏟아지는 프랑스, 아동용 애니만 만드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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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프(BIAF)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올해로 28회째를 맞았다. 23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열린 2026 비아프는 자타공인 한국 제일의 애니 축전이다.
심지어는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몸값이 비싸다며 해외 협업으로 눈 돌리는 사례까지 잇따르고 있어, 일선 애니메이터가 경력을 쌓을 기회 또한 찾기가 쉽지 않다.
비아프에서 소개되는 최신 세계 애니의 경향 가운데서 프랑스는 일본, 미국 등과 함께 가장 주요한 흐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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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기자]
비아프(BIAF)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올해로 28회째를 맞았다. 23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열린 2026 비아프는 자타공인 한국 제일의 애니 축전이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한국 애니는 산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독특한 위상을 지녔다. <아기상어> <뽀로로> <핑크퐁> <캐치! 티니핑> <베베핀> 등으로 대표되는 유아용 애니에서 한국 애니는 K컬쳐의 한 축으로써 세계에 우뚝 서 있다. 그저 작품만이 아니라 장난감과 문구 등으로 연결되는 산업적 파급 또한 분명해서 세계적 회사들과의 협업과 OTT 서비스를 통한 유통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한 지 오래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기획력에 더해 2D와 3D 모두에서 고른 제작 능력 등이다. K컬쳐 효과랄까. 적어도 문화상품에 있어 한국 것은 얼마간 품질이 보증된다는 인식 또한 상승효과를 견인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 한국 애니는 절망의 길을 걷고 있다. 오랜 기간 독자적인 극장용 애니 생태계를 만들지 못해 해마다 변변한 성공작 한 편을 내지 못하고 고전해온 세월이 길다. 지난해 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퇴마록>을 두고 성공이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작비를 절반가량 회수하는 데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두운 면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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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흑의 핵심 스틸컷 |
| ⓒ BIAF |
2026 비아프 장편 심사위원상의 주인공은 호제리우 누네스의 <암흑의 핵심>에 돌아갔다. 원제인 'Heart of Darkness'를 적으면 아마도 짐작하는 이들이 있을 테다. 저 유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원작으로도 유명한 조지프 콘래드의 고전 소설을 애니화한 작품이다. 앞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그대로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라질의 미래상을 배경으로 한 SF로 작품을 변주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현란한 그래픽 애니의 스타일로 그려지는 파격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브라질의 미래상이 원작 못잖게 보는 이에게 즉각적인 충격을 안긴다.
나는 이 애니가 코폴라의 명작보다도, 또 콘래드의 원전보다도 더 탁월한 지점을 몇쯤은 확보하고 있다고 적으려 한다. 비아프 2026이 버금상인 심사위원상을 안긴 이유도 여기에 있을 테다.
시작은 가까운 미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삼바로 대표되는 라틴음악의 발상지로 유서 깊은 대도시지만, 리우데자네이루엔 분명한 명암이 있다. 산비탈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무허가 빈민촌 파벨라(Favela)와 그곳까지 닿지 않는 치안 공백, 이로부터 빚어진 범죄집단의 존재가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한다. 치안뿐 아니라 국가가 담당해야 할 교육과 의료, 보건마저 내팽개쳐진 암울한 현실을 <암흑의 핵심>은 기꺼이 저의 주재료로써 수확해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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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흑의 핵심 스틸컷 |
| ⓒ BIAF |
원작이 그러하듯 이야기는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 사라진 공권력의 대행자 커츠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꾸려진다. 어떤 위험한 임무도 거침없이 해결했다는 전설적인 경찰 간부 커츠가 연락이 두절돼 수뇌부를 그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수도에서 파견된 특수경찰 말론이 그 임무를 맡았는데, 빈민가 문화와는 거리가 있는 잘 배운 간부란 특징이 작품 가운데 그를 다른 이들과 구분 짓는다. 그만큼 근미래 리우데자네이루는 배우지 못한 이들이 널려 있는 도시다. 그리고 말론은 이렇다 할 지원도 없이 달랑 부하 경찰 한 명만 데리고 자체적으로 조달한 보트를 타고서 선장과 그 어린 조카 등과 함께 커츠를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거의 그림자나 다름없어 보이는 검은 외형으로 공권력을 표현하는 호제리우 누네스의 연출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강렬한 흑과 백의 대비, 또 그 사이에서 더욱 선명한 피의 색채가 또한 보는 이에게 감각적으로 새겨진다. 펜화의 질감으로 그린 선과, 소위 네온컬러 연출이라 불리는 선명함과 흐릿함의 대비 또한 저만의 스타일로 화한다.
원작이 지닌 힘은 문명으로부터 비문명으로, 소위 질서가 없는 아프리카 내륙으로 보내진 인물이 그곳에서 근대 제국주의의 착취를 뒤집어 깨닫게 되는 순간의 충격을 포집해 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코폴라는 그를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의 두 나라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옮겨 세계제국 미국의 폭력과 착취의 민낯을 포착해 냈다. 호제리우 누네스는 여기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간다. 근미래 브라질에서 대영제국이며 미국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브라질의 공권력과 무법지대인 파벨라의 폭력과 가난이 선명하게 대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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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흑의 핵심 스틸컷 |
| ⓒ BIAF |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마주하는 세계는 그러나 그 인식이 결코 온전하지 않다는 걸 일깨운다. 실재하는 세계는 말론의 배움, 이해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말론의 인식 안에서 그는 무질서할 뿐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도 나름의 질서가 자리한다. 말론이 점점 더 강을 거슬러 오를수록, 그러니까 제 인식이 안온하게 작동하는 세계로부터 멀어질수록 그의 인식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실재하는 세계를 포용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인식은 쓸모없어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암흑의 핵심>이 위대해지는 건 그 결말부에 이르러서다. 19세기에 쓰인 고전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보다도 더욱 파괴적으로 <암흑의 핵심>은 파격적인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악의 심장을 향해 나아간 말론의 여정은 마땅한 위협과 위기, 폭력과 무질서를 맞닥뜨린다. 그러나 공포와 편견, 또 그릇된 인식을 벗어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제가 바라본 위협과 폭력, 무질서가 전과는 전혀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환이다. 암흑인 줄 알았던 것이 암흑이 아니고, 악마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악마가 아니다. 그 반대다.
실종된 커츠와 만나 겪는 일련의 이야기는 <암흑의 핵심>의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 말론은 그 여정을 통하여서, 그 전의 사려 깊게 얻어진 배움으로써,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전 타고난 비범함 덕분에 모두가 물러나길 택할 때에 기꺼이 전진한다. 그 결과, 세상이 강요하는 흔한 인식을 깨고서 진실과 마주한다. 저를 보낸 세계가 도리어 암흑이고, 제가 악인 줄 알았던 것에 빛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빛이 파괴되는 무력함을 또한 그는 마주하게 된다. 고전은 그렇게 고전이길 거부하며 오늘의 세계를, 나아가 현실이 중력을 미치는 근미래의 영토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과연 심사위원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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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AF 포스터 |
| ⓒ BIAF |
반면 프랑스가 애니강국이란 얘기를 금시초문이라 여기는 독자가 적잖을 테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역대 비아프 대상작만 추려보아도 그 사실이 단적으로 확인된다. 2025년 <리틀 아멜리>부터 2023년 <치킨 포 린다!>, 2022년 <개와 이탈리아 사람은 출입할 수 없음>, 2016년 <손 없는 소녀>가 모두 프랑스 작품이다. 2021년 <남매의 경계선>, 2019년 <환상의 마로나>, 2018년 <멋진 케이크!>도 프랑스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들이다. 비아프에서 소개되는 최신 세계 애니의 경향 가운데서 프랑스는 일본, 미국 등과 함께 가장 주요한 흐름을 이룬다. 특히 작가주의적 애니로 한정하면 다른 나라 작품을 압도한다.
브라질의 가능성 있는 작가 호제리우 누네스에게 프랑스 애니 제작진이 기꺼이 손을 내밀고 지원한 결과가 <암흑의 핵심>이다. 단순히 자금지원뿐 아니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뱅상 카셀과 같은 명배우가 성우로 참여했고, 프랑스 저명 스튜디오가 실제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해 철학적 깊이는 물론 기술적 완성도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이다. 저변이 아직은 약한 라틴아메리카 애니 창작자가 프랑스의 저력 있는 제작자들과 만났을 때 탁월한 합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준다.
국경을 넘어서까지 작동하는 산업의 저력은 미술과 영화의 경계에서 애니라는 창구를 열어젖힌 프랑스의 오늘이 어떤 바탕 위에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게끔 한다. 반면 성인용 애니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독립애니로만 명맥을 이어가는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자본과 산업은 한국을 떠나 오로지 비용의 효율만을 구하고, 창작자는 도전과 실패의 무대를 잃은 채로 하루하루 나이만 들어간다. <암흑의 핵심>이 거둔 성취로부터 오늘 한국 애니의 초라함을 발견하는 건 그저 일선 창작자의 실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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