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이 싫다"던 소녀는 왜 빈티지 가게를 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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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가 진짜 싫었어요."
어머니가 30년 동안 빈티지 옷가게를 운영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수많은 옷을 접했지만, 전 씨에게 빈티지는 그저 누군가 입었던 '헌 옷'이었다.
전씨가 빈티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대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배우를 지망하던 시절 이 기법을 배운 전씨는 빈티지 옷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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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제 기자]
"빈티지가 진짜 싫었어요."
서울 연희동에서 빈티지 편집숍 '프리즈프레임(Freeze Frame)'을 운영하는 전소은 씨의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어머니가 30년 동안 빈티지 옷가게를 운영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수많은 옷을 접했지만, 전 씨에게 빈티지는 그저 누군가 입었던 '헌 옷'이었다. 빈티지를 낡은 옷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싫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빈티지 옷을 직접 고르고 판매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담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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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지프레임 내부 사진 |
| ⓒ 손민제 |
헌 옷에서 발견한 개성
전씨가 처음부터 빈티지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친한 지인의 추천으로 빈티지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옷에 대한 애정보다는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직접 옷을 고르고 판매하면서 빈티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일을 하다 보니 빈티지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빈티지 옷들에서는 다른 옷들에게서 보기 힘든 '개성'이 보이거든요."
전씨가 발견한 빈티지의 매력은 옷마다 다른 개성이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봉제 방식과 소재, 손으로 직접 만든 옷에 남아 있는 제작자의 손길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오늘날의 패션과 달리, 빈티지에는 만들어진 시대의 취향과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옷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자신만의 편집숍 프리즈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녀는 요즘 사람들이 점점 비슷한 옷을 입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패션을 쉽게 접하고 따라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워졌다고 생각한다. 유행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전씨가 빈티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대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전씨는 과거 연인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관계에 쏟았다. 그러나 관계가 끝난 뒤에는 자신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 사람과 연애하면서 함께 일도 했는데, 그때 제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이후 헤어지고 나니 제 안이 텅 빈 것 같았어요. 성격도, 취향도, 개성도 모두 사라진 것 같은 거예요."
그는 이후 자신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의 취향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전씨에게 개성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옷을 입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선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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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하는 착장으로 사진을 찍는 전소은 씨의 모습 |
| ⓒ 손민제 |
좋은 옷보다 나에게 맞는 옷
자신의 취향은 확고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 기준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손님이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도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자신이 추천한 옷이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옷을 이렇게 입으라고 말하면 그게 정답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잖아요. 전 패션에 그런 규칙이 생기는 게 싫어요."
전씨는 손님에게 옷을 추천할 때 자신의 취향보다 상대방이 평소 어떤 옷을 입는지 먼저 살핀다. 아무리 아름답고 잘 어울리는 옷이라도 손님이 실제로 입지 않을 것 같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옷을 고르는 기준은 판매자의 안목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취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빈티지 옷을 고를 때 아무런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씨는 옷의 디자인과 소재, 착용감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옷일수록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눈에 꽂히는 옷 있잖아요? 그런 옷들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해요. 꽂혀서 중요한 핏, 원단 등과 같은 요소들은 순간 흐린 눈 하게 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산 옷들은 결국 손이 많이 안 가게 돼요."
옷이 예쁘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 옷을 즐겨 입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전씨는 빈티지 옷을 구매하기 전에 평소 자신의 옷차림과 어울리는지, 실제로 자주 입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누구나 예쁘다고 평가하는 옷이라도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으면 옷장에 걸어두기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재 역시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전씨는 특히 폴리에스터 함유량을 살펴본다. 폴리에스터는 석유를 원료로 만드는 합성섬유로, 비교적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어 패스트패션을 비롯한 다양한 의류에 사용된다. 다만 폴리에스터가 들어갔다고 해서 무조건 품질이 나쁘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옷의 형태를 살리거나 특정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경계하는 것은 소재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단순히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폴리에스터를 사용한 옷이다. 전씨는 개인적인 구매 기준으로 폴리에스터 함유량 약 20% 안팎을 마지노선으로 삼는다. 캐시미어와 울, 모헤어, 실크 같은 소재를 사용한 옷이라면 좋은 소재의 빈티지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만 폴리에스터 함유량만으로 옷의 품질이나 제작 목적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빈티지 옷이라고 해서 반드시 새 옷보다 저렴한 것도 아니다. 일부 제품은 새 옷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전씨는 그 이유를 희소성과 소재, 디자인에서 찾는다.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 독특한 디자인이나 과거의 봉제 방식, 좋은 소재를 사용한 옷은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하기 어렵다. 특히 일본 빈티지 가운데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매입 가격부터 높은 제품들이 있다고 전씨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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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소은 씨(오)가 모델과 의상 스타일링 및 촬영 방향을 논의하는 모습. |
| ⓒ 손민제 |
그녀가 빈티지에서 발견한 시간의 가치는 가게 이름에도 담겨 있다. 프리즈프레임(Freeze Frame)은 영화에서 움직이는 장면을 정지 화면처럼 보여주는 연출 기법이다. 배우를 지망하던 시절 이 기법을 배운 전씨는 빈티지 옷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지만, 옷은 만들어진 시대에 머물며 그 시대를 대변하잖아요. 그런 의미를 담아 가게 이름을 지었어요."
사람이 입고 생활하면서 시간을 보낸 옷에는 그 시대의 디자인과 소재, 제작 방식이 남는다. 시간이 흘러 유행이 바뀌고 옷을 입던 사람도 달라지지만, 옷에는 만들어진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씨는 그 흔적을 새로운 사람의 취향과 결합하는 것이 빈티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만들어진 옷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전씨는 최근 패션 브랜드 '시타(CITTA)'와 협업해 새 옷으로 빈티지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빈티지 편집숍과 새 옷을 만드는 브랜드의 협업이 다소 의외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패션 철학을 시험할 기회였다.
시타 측은 전씨가 옷을 조합하고 연출하는 방식을 좋게 평가해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고른 옷도 아니고 평소 취향과 다른 제품으로 프리즈프레임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결국 빈티지든 새 옷이든 중요한 건 어떻게 연출하느냐잖아요. 원래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협업을 통해 그걸 직접 증명한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전씨는 패션뿐 아니라 영화와 책, 가구,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감각을 넓혀간다. 여러 작품과 사물을 접하면서 발견한 색과 형태, 분위기를 옷의 조합과 스타일링에 활용한다. 그렇게 쌓아온 경험은 프리즈프레임의 공간 구성과 옷을 고르는 기준에도 반영된다.
요즘 전씨는 빈티지 옷을 직접 선별하고 공수하는 일부터 손님들과 소통하고 패션 스타일링과 디렉팅을 맡는 일까지 대부분의 업무를 직접 한다. 가게 운영과 외부 협업을 병행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는 일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자신의 취향을 담은 패션 브랜드를 직접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제 취향을 담은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싶어요. 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패션이니까요. 빈티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빈티지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일할 거예요. 저에게 일은 곧 삶의 동력이거든요."
시간이 멈춘 옷들 사이에서, 그녀는 지금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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